국립현대미술관(MMCA) 청주 미술품수장센터 전시장. 관람객들의 동선 사이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공산품, 유리, 금속 구조체, 그리고 파편화된 건축 부재들이 낯선 균형을 이루며 거대한 설치 공간을 장악하고 있다. 노정주와 정현석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듀오 로와정(RohwaJeong)의 기획전 현장은 미술품을 ‘수장’하고 ‘보존’하는 미술관 본연의 물리적 장소성과 부딪히며 현대 설치 미술의 매체적 경계를 탐색한다.
이번 전시는 조각과 설치를 완결된 고정물로 규정하던 전통적 문법을 전면 해체한다. 듀오는 두 사람의 물리적·개념적 관계성에서 출발해, 사물이 놓이는 맥락과 위치를 교란하는 '관계적 조각(Relational Sculpture)'의 방법론을 청주관 특유의 개방형 수장고 환경에 밀도 있게 투영했다.
전시 공간 중심에 자리 잡은 대형 설치 작업은 산업용 철제 앵글과 비정형 유리 패널의 긴장감 넘치는 결합을 전면에 드러낸다. 작가들은 공업용 철골 프레임의 규격화된 수직·수평 구조 위에 정밀하게 재단되지 않은 유리의 파편을 지지대 없이 맞물리게 하는 볼팅(Bolting)과 중력 평형 기법을 적용했다. 금속의 하중과 유리의 취성(脆性, Brittle property)이라는 상반된 물리적 물성이 아슬아슬한 임계점에서 정지 상태를 유지하며, 관람객의 이동에 따라 미세한 진동을 공간에 전달한다.
벽면과 바닥을 연결하는 오브제 연작에서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의 표면을 변형하는 작가 특유의 개입 방식이 두드러진다. 일상적인 문손잡이, 거울, 조명 부속 등의 표면에 아크릴 레진을 얇게 도포하거나 특정 마감재를 인위적으로 박리(剝離)시켜 사물이 지닌 본래의 용도와 촉각적 기억을 소거했다. 매끄러운 크롬 도금과 거칠게 노출된 산화 피막의 대비는 사물이 생산되고 유통되며 겪는 시간의 퇴적을 시각화하는 조형적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전시장 한편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변 설치물은 공간에 드리우는 그림자와 인공조명의 굴절 각도를 치밀하게 통제한 공간 드로잉(Spatial Drawing) 기법을 취한다. 얇은 와이어와 금속 봉으로 공중에 부유시킨 오브제들은 실체와 그림자의 경계를 흐리며 전시장의 3차원 볼륨을 2차원적 선형 구조로 분할한다. 이는 완성된 형태를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관람객의 시선 위치에 따라 오브제의 외곽선이 끊임없이 재조합되도록 유도한다.
이번 로와정 전시는 ‘보존과 축적’을 전제로 하는 미술관 수장 시스템에 대항해, ‘유동성과 가변성’이라는 비결정론적 상태를 조형화한 실험이다. 사물의 기능을 박탈하고 물성 간의 위태로운 역학적 균형을 물리적 실체로 구축함으로써, 동시대 설치 조각이 어떻게 공간의 공기를 긴장시키고 관계의 본질을 물질화하는지 명확히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