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도예 작가 신상호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가 전시 중이다. 작년 11월 부터 진행되어, 올해 3월 29일까지 열리는 신상호(b.1947) 회고전은 지난 60여 년 동안 사회와 미술의 변화에 부응하며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한 신상호의 작품을 총 5부에 걸쳐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통 도자에서 도자 조각, 건축 도자, 타 매체와 결합한 오브제, 그리고 도자 회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 스펙트럼을 만나게 된다.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신상호는 다양한 도자 형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탁월한 기술력으로 한국 현대 도예를 이끌어 온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자 제작으로 도예의 길에 들어선 이후, 도자의 경계를 확장하며 한국 도자의 전통적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는 동시에,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왔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
신상호와 김기창 작가 협업 (사진. 강혜영)
신상호는 1965년 공예학부에 입학한 해, 대한산업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입선하며 도예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에 도자 제작 시설이 없어, 직접 경기도 이천 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기를 제작했다. 그는 전통을 단순 재현의 대상이 아닌,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실천해야 할 개념으로 인식하였다. 정교한 디자인의 생활 식기 제작과 화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전통의 현대적 생활화'를 도모했다.
신상호 작가와 장욱진 작가 협업(앞 2점) / (사진. 강혜영)
2부. 도조의 시대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도자 조각을 의미하는 '도조'는 신상호가 1984년 미국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 교환교수로 출국하기 전 처음 사용한 용어로, 도자기를 용기의 기능에서 벗어난 조각, 회화, 건축적 요소가 결합된 예술로 확장하려는 그의 실험적 시도이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3부. 불의 회화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신상호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 가능성을 실험하며 대형 외벽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의 <밀레니엄 타이드>를 시작으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현 콘토디언 빌딩), 서초 삼성타운 등 외벽에 <구운 그림> 도자 타일을 설치하였다. 'Fired Painting'으로도 불리는 <구운 그림>은 흙 위에서 소성된 독특한 질감과 색채를 캔버스 물감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명칭이다. 신상호는 도자 타일 작업을 통해 도자의 회화적 색 표현의 범주를 확장하고, 건축 자재로서 흙의 기능적 잠재력과 예술적 가능성을 새롭게 확장하였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4부. 사물과의 대화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신상호는 1995년 영국에서 열린 <아프리카 : 대륙의 미술> 전을 관람하고 아프리카 미술의 강렬하고 원시적인 표현성에 깊은 감화를 받는다.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 공예품을 비롯해 유럽에 수출된 중국 청화백자, 오래된 산업 기기, 폐군용 물자 등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의 사물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수집 행위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서로 다른 사물들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존재성을 발휘하게 하는 창작의 한 과정이었다.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2018년부터 신상호는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 연작 <생명수>와 <묵시록>을 선보인다. 흙의 유기적 패턴과 중첩된 색의 층위가 한데 어우러진다. 도자의 물질적 깊이를 평면 회화로 구성하여 공간의 울림을 불러일으키며, 가시적인 현실 너무 보이지 않는 피안을 응시하게 하는 명상적 체험을 제시한다. 이는 도조 작업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조각과 회화의 통합'이라는 그의 오랜 예술적 탐구의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묵시록'의 근접 사진 (사진. 강혜영)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전시되는 《신상호: 무한변주》는 3월 29일까지 개최되며, 로에베의 후원과 무림페이퍼, 노루페인트, 동국씨엠의 협찬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최 하에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