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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시오타 시하루 "가장 힘들었던 건,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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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기억의 빛 속으로》 대전 개막

▲ 헤레디움 아트사이트 소제전시장에서 시오타 작가(좌)와 본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헤레디움 아트사이트 소제전시장에서 시오타 작가(좌)와 본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헤레디움 전시장 진입부 벽면.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헤레디움 전시장 진입부 벽면.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붉은 실, 100년 된 건축에 스미다

붉은 실이 그물처럼 공간 전체를 뒤덮는 압도적 설치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시오타 치하루(塩田千春, b.1972)의 개인전 《시오타 치하루: 기억의 빛 속으로(Chiharu Shiota: In the Light of Memory)》가 지난 8월 29일 대전 헤레디움에서 개막식을 갖고, 30일부터 일반 관람에 들어갔다. 전시는 헤레디움과 아트사이트 소제 두 공간에서 2027년 2월 21일까지 이어진다.

▲ 헤레디움 전시장. 붉은 실의 궤적을 담은 붉은 실 설치 공간이 열린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헤레디움 전시장. 붉은 실의 궤적을 담은 붉은 실 설치 공간이 열린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본지는 개막 당일 현장을 찾아 전관을 취재하고 작가를 단독으로 만났다.

이번 전시는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이 주최하고 하나은행이 대표 협력사로 참여했으며, CNCITY에너지·에너넷·인큐버스가 후원, 가나아트가 협조했다. 전시장인 헤레디움은 1922년 건립된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근대건축유산이다. 식민 수탈의 거점이었던 이 건물이 2022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지 4년, 이제는 기억과 부재를 다루는 작가의 작업을 품는 그릇이 되었다.

▲ 실 끝에 매달린 드로잉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 끝에 매달린 드로잉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오사카에서 베를린으로, 그리고 대전으로

시오타 치하루는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해 온 현대미술가다. 붉은 실과 검은 실이 거대한 그물처럼 공간을 뒤덮는 압도적인 설치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는 수없이 얽히고 이어지는 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과 부재,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같은 감정과 관계를 실재하는 '존재'로서 눈앞에 펼쳐 보인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며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이후 세계 주요 미술관과 도시를 무대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선보여 왔다.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시작된 대규모 개인전 《The Soul Trembles》 역시 부산과 상하이, 파리 그랑 팔레 등으로 이어지며 전 세계 관람객을 매료시켰다.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서문에서 작가가 오랫동안 사물에 깃든 '부재 속의 존재(Presence in Absence)'를 탐구해 왔다고 소개하며, 시오타가 옷을 '제2의 피부'로, 인간을 감싸는 집과 문과 창문을 '제3의 피부'로 정의한다고 설명했다.

▲ 붉은 실로 짜인 집 형태 오브제 연작과 그옆 집안 시계작등 검은 실로 엮인 작품이 나란히 놓여 대비를 이룬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붉은 실로 짜인 집 형태 오브제 연작과 그옆 집안 시계작등 검은 실로 엮인 작품이 나란히 놓여 대비를 이룬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두 공간, 그리고 그 사이의 도시

이번 전시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은 전시가 하나의 전시장에 갇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헤레디움(동구 대전로 735)과 아트사이트 소제(동구 철갑3길 17), 두 공간이 도보 동선으로 이어지면서 관람객은 두 곳을 오가는 그 걸음 자체를 전시의 일부로 경험하게 된다.

대전역 동광장을 사이에 두고 근대건축유산과 원도심의 골목이 하나의 관람 경로로 묶이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도시 자체를 하나의 설치처럼 읽게 만든다. 총 28점의 출품작은 대형 설치부터 영상, 유리 오브제, 회화와 드로잉까지 작가의 작업 스펙트럼을 폭넓게 아우른다.

헤레디움 1층에는 전시 표제작인 대형 설치 《In the Light of Memory》(2026)와, 작가의 활동 궤적을 담은 디지털 영상 《The Chronology of Chiharu Shiota》(2024, 28분 51초)가 배치됐다. 2층으로 올라가면 금속 프레임과 책, 거울, 실로 구성된 《State of Being (Book)》(2026), 유리와 철사를 엮은 《Cell》 연작(2022·2025), 열쇠와 램프와 시계를 실로 감싼 《Inner Home》 연작, 그리고 집 형태 오브제 《Strange Home》 연작이 이어진다.

▲ 붉은 실 아래 놓인 신발과 오래된 문들. 대전에서 수집한 버려진 문과 신발이 '부재 속의 존재'로 되살아난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붉은 실 아래 놓인 신발과 오래된 문들. 대전에서 수집한 버려진 문과 신발이 '부재 속의 존재'로 되살아난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실과 잉크로 그려진 회화 연작 《Connected to the Universe》.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관람객의 기억이 작품이 되는 자리

전시의 백미는 관객 참여형 설치 《Remembering the Forgotten》(2026)이다. 흰 밧줄 위로 무수한 드로잉 이미지가 투사되는 이 작업 앞에서, 관람객은 자신의 기억을 종이에 적거나 그려 붉은 실 사이에 매단다.

▲ 관객과 함께한 설치미술.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관객과 함께한 설치미술.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취재 중 마주한 종이들에는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 집은 어디일까? 가족이 있는 곳?" 신발 위에 매달린 한 손편지에는 "정말 잘 신고 다닌 신발, 이젠 보내줘야 할 것 같아요"라고 쓰여 있었다. 작가가 만든 구조 안으로 관람객 개개인의 기억이 흘러들어와, 전시 기간 내내 작품이 계속 자라나는 셈이다.

▲ 두곳에 설치된 영상설치로 관계를 이어갈수 있도록 돕는 자리.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두곳에 설치된 영상설치로 관계를 이어갈수 있도록 돕는 자리.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또 하나 눈여겨볼 작업은 영상 설치 《Memories Resurface》(2026, 12분 23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부치는 노트에서 올해 83세가 된 시어머니 '할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일곱 살에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을 조각조각 들려주는 할머니,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이 끝내 나누지 못한 복잡한 이야기들. 작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 건강한 것, 오늘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의 무게를 그 관계 속에서 배웠다고 적었다. 아트사이트 소제에서는 집 모양 금속 프레임에 밧줄과 메모, 드로잉을 결합한 《The Home Within》(2026)이 관람객을 맞는다.

▲ 헤레디움 아트사이트 소제전시장에서 시오타 작가(좌)와 본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헤레디움 아트사이트 소제전시장에서 시오타 작가(좌)와 본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 인터뷰] "시간이요. 시간이 저에게 가장 힘들었어요"

개막 당일, 붉은 실 아래에서 작가를 만났다. 이번 대전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시오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짧게 답했다.

"시간이요. 시간이 저에게 가장 힘들었어요."

- 시오타 치하루

수십만 가닥의 실을 손으로 엮어 공간을 채우는 작업, 그리고 기억이라는 주제 자체가 시간의 문제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한마디는 그녀 작업의 핵심을 정확히 관통한다. 과장도 수사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건넨 대답이었다.

▲ 개막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한 시오타 치하루.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개막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한 시오타 치하루.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인터뷰 내내 작가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를 건넸다. 그 몸짓 앞에서 함께 있던 이들도 자연스럽게 무릎을 함께 굽히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개막 리셉션과 만찬 자리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남아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기자의 눈 — 실로 잇는 사람, 글로 잇는 사람

기억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기억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기억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달라질 때마다 기억은 계속 형태를 바꾼다. 시오타 치하루는 그 변화하는 순간을 붉은 실이 얽히고 풀리는 물리적 과정으로 붙잡아 둔다. 물감과 붓 대신 실이라는 물성을 택한 것은, 표현보다 '연결'을 앞세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실로 관계를 잇는 사람과, 글로 그 관계를 기록하는 사람. 서로 다른 매개를 택했을 뿐 결국 사람과 사람, 순간과 기억을 이어 붙이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완성된 결과보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관계에 방점을 찍는 작가의 태도가, 개막 당일 현장에서 마주한 짧은 대답 하나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100년 된 건물 안에서, 세계적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여섯 달 가까이 이어진다. 지역 미술 생태계에 이 전시가 남길 흔적 또한 오래 이어질 붉은 실 한 가닥이 될 것이다.

■ 전시 정보

· '시오타 치하루: 기억의 빛 속으로'

(Chiharu Shiota: In the Light of Memory)

· 기간 2026년 8월 30일 ~ 2027년 2월 21일

· 장소 헤레디움(대전 동구 대전로 735)

아트사이트 소제(대전 동구 철갑3길 17)

· 관람시간 11:00~19:00 (입장 마감 18:30) *매주 월·화요일 휴관

취재·사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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