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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미술계가 ‘물질성(Materiality)’에 다시 주목한 이유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디지털 가상성의 피로와 아날로그의 역습

한국 미술계는 최근 하나의 뚜렷한 조형적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미술 시장과 전시장을 지배했던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 실감형 미디어 파사드, 가상현실(VR) 중심의 디지털 시각 언어가 남긴 피로감을 뒤로하고, 작가와 비평가들의 시선이 캔버스 표면의 두께와 안료의 촉각, 사물의 물리적 저항성으로 급격히 회귀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성(Materiality)의 복권’은 올가을 전국 미술관과 갤러리 현장에서 일제히 목격된 공통된 현상이다. 20세기 거장들의 소장품을 재조명한 기획전에서는 피카소의 깊게 패인 에칭(Etching) 동판 선묘와 김창열 화백의 성근 마포(麻布) 위 물방울 삼투 효과가 디지털 복제물에서는 절대 체감할 수 없는 원작의 아우라로 관람객을 압도했다.

또한, 14세기 고려 말 제작된 '구례 천은사 금동불감'의 국보 승격 예고는 얇은 동판을 뒤에서 수만 번 두드려 3차원 입체로 밀어 올린 타출(打出, Repoussé)과 수은 아말감 도금이라는 극한의 장인적 물리 노동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현대에 다시금 환기시켰다.

동시대 현역 작가들의 조형 실험 역시 스크린 너머의 가상 데이터가 아닌, 손끝에서 다뤄지는 물질의 물리적 역학에 집중됐다. 평면 회화에서는 고점도 유화 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페인팅 나이프로 밀어 올리는 임파스토(Impasto)와 마른 표면을 긁어내며 시간의 지층을 노출시키는 스그라피토(Sgraffito)가 주된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조각과 입체 미술에서는 공예적 규범을 탈피해 흙과 불의 화학적 수축을 조각적 부피로 치환한 고온 소성 석기(Stoneware), 레이저 커팅과 아노다이징(Anodizing) 산화 피막 공정을 거친 산업용 알루미늄이 전시장의 공간을 묵직하게 점유했다. 심지어 사진 예술에서조차 디지털 프린트를 거부하고 젤라틴 실버 프린트(Gelatin Silver Print) 기반의 암실 수작업 은염 입자를 통해 대지의 상흔을 촉각적 질감으로 인화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미술비평가 시각에서 바라본 이러한 흐름은 가볍게 휘발되는 디지털 이미지 과잉 시대에 대한 시각예술의 정당한 방어 기제이자 본질적 저항이다. 클릭 한 번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매끄럽게 정제된 픽셀 화면은 인간의 신체적 지각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관람객들은 이제 매끄러운 유리 액정 너머가 아니라, 안료가 굳어 생긴 요철에 빛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미세한 그림자, 금속의 서늘한 무게감, 흙이 머금은 열기의 흔적에서 진정한 예술적 실재를 찾고 있다.

기술적 화려함에 가려졌던 '재료와 도구, 그리고 작가의 육체적 노동이 빚어내는 마티에르(Matière)'의 가치를 재확인한 한국 미술계는 비물질성의 환영에서 벗어나 물질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단한 대지 위에 새로운 현대미술의 문법을 다시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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