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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직업을 없애는가,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는가 - 사라질 목록이 아니라, 이동하는 일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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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관건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남아 있는가다

캔버스 앞에서 작업 중인 엄미영 작가.   ⓒ엄미영
캔버스 앞에서 작업 중인 엄미영 작가.   ⓒ엄미영

내 직업은 안전할까?

엄미영 작가

인공지능이 일상의 도구가 된 지금, 이 질문은 더 이상 특정 직업군만의 고민이 아니다. 번역과 디자인, 법률, 회계, 개발, 사무 업무까지 AI가 수행하는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도 개발한다. 현재 운영 중인 안내 로봇 ‘큐아이’에 수어 해설과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이 하던 어떤 일이 AI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도 개발한다. 현재 운영 중인 안내 로봇 ‘큐아이’에 수어 해설과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이 하던 어떤 일이 AI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문화체육관광부

그러나 AI 시대를 단순히 '사라질 직업의 목록'으로 바라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이 없어지는가보다, 그 직업 안에서 인간이 하던 어떤 일이 AI로 이동하고 있는가이다.

■ 탑10을 꼽자니

 이 글을 쓰며 '사라질 직업 10선' 같은 목록을 넣어볼까 생각했다. 신문이라면 숫자와 순위가 있어야 설득력이 생긴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자료를 찾아볼수록 그 목록이 오히려 질문을 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는 인용되는 과정에서 자주 절반만 옮겨진다. 세계경제포럼이 2023년 보고서의 8,300만이라는 소멸 전망은 널리 인용됐지만, 함께 제시한 6,900만이라는 창출 전망은 그만큼 옮겨지지 않았다. 어느 쪽도 틀린 숫자가 아니지만, 한쪽만 떼어내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세계경제포럼이 2025년 발표한 미래 일자리 보고서는 2030년까지 약 1억 7천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9천2백만 개가 사라져, 순증 기준으로는 약 7천8백만 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2개 산업에서 1400만 명을 고용한 1000여 개 글로벌 기업을 조사한 결과다. 없어지는 쪽만 보면 9천만 개고, 전체를 보면 오히려 늘어난다.

같은 보고서의 다른 대목은 더 흥미롭다. 가장 빠르게 감소하는 직업 상위 10위 바로 바깥에 그래픽 디자이너와 법무 비서가 나란히 놓였다는 점을 두고, 보고서는 이전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던 예측이라고 짚었다. 생성형 AI가 지식 기반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같은 보고서는 이 기술의 주된 영향이 완전한 대체보다 '인간-기계 협업'을 통한 인간 역량의 증강에 있다고 진단한다.

10위 안에 들었는가 밖에 있는가로 안심하거나 불안해하는 일은,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 순위는 매년 바뀐다. 바뀌지 않는 것은 각자의 일 안에서 어떤 부분이 옮겨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 이동하는 일

반복적인 자료 정리와 검색, 문서 초안 작성, 번역, 이미지 제작처럼 일정한 패턴을 가진 업무는 이미 AI가 상당 부분 수행할 수 있다. 전문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변호사는 판례 검색과 문서 검토에서, 디자이너는 시안 제작에서, 개발자는 코드 작성과 오류 탐색에서 AI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안전할까.

AI는 몇 초 만에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쓰며 음악까지 생성한다. 기술적인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인간보다 빠른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오히려 예술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등장한다.

'무엇을 만들었는가' 보다 '왜 만들었는가.'

■ '!' 하나를 두고

엄미영의 기호 작업. 은사시나무 톱밥으로 구현한 ‘!’는 하나의 기호가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읽히는 순간을 보여준다  ⓒ엄미영
엄미영의 기호 작업. 은사시나무 톱밥으로 구현한 ‘!’는 하나의 기호가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읽히는 순간을 보여준다  ⓒ엄미영

나는 작업에서 은사시나무 톱밥과 기호를 사용한다. 톱밥은 나무가 쓰이고 난 뒤 남겨진 것이고, 기호는 짧지만 그 안에 수많은 의미와 관계를 품는다. 같은 '!' 하나를 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놀람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고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AI 역시 '!'를 그릴 수 있다. 나보다 더 매끄럽고 완벽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호를 왜 선택했는지, 어떤 관계와 감정에서 시작되었는지, 그것을 바라본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투영하는지까지 하나의 정답으로 생성할 수 있을까.

나는 바로 그 지점에 인간의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AI보다 빨리 계산하거나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질문하는 능력, 관계를 만드는 능력,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쟁은 '인간 대 AI'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인간과 그 안에서도 자기만의 질문을 가진 인간 사이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술가 역시 AI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미지 시안을 만들고, 자료를 조사하고, 번역하고, 기록을 정리하는 데 AI를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도구가 작품의 주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회화가 사라지지 않았듯, AI의 등장만으로 인간의 창작이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 그래서 예술가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이 논의의 진짜 관건은 누가 살아남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가다.

기술은 한 번도 한 방향으로만 간 적이 없다. 필름은 디지털에 밀려 사라지는 줄 알았으나 지금 다시 현상소 앞에 줄이 선다. LP는 CD에 자리를 내주고 창고로 들어갔다가, 이제 스트리밍 시대에도 새 바이닐은 다시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기다린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것이 넘쳐날수록, 손이 지나간 자리가 남은 것에 값이 매겨지는 순간이 온다.

톱밥을 다루는 손 클로즈업  ⓒ엄미영
톱밥을 다루는 손 클로즈업  ⓒ엄미영

톱밥은 나무가 다 쓰이고 남은 것이다. 제재소 바닥에 쌓이는, 쓸모가 끝났다고 여겨지는 부스러기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점 때문에 이 재료를 택했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에는 내가 말하는 의미의 '남겨진 것'이 없다." 어딘가에서 쓰이고 남은 흔적도, 잘려나간 시간의 이력도 없다. 그것이 결함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다른 종류의 물건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생성된 이미지가 화면을 채운다. 그러나 화면이 포화에 이르면 사람들은 반대편을 더듬기 시작할 것이다. 손으로 오래 붙든 것, 실패한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것, 시간이 물질에 그대로 새겨진 것. 그 순환이 한 바퀴 도는 데는 몇 년, 어쩌면 몇십 년이 걸린다.

문제는 그때까지 남아 있느냐다. 사라진 예술가에게는 회귀할 자리가 없다. 다시 호명되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AI 시대에 예술가가 겨뤄야 할 상대는 AI가 아니라 시간이다. 버티는 일이 곧 작업이 되는 시대이고, 끈기가 기법의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다.

AI는 빠르다. 그런데 오래 하는 일은 본디 빠를 수가 없다.

캔버스 앞에서 작업 중인 엄미영 작가.   ⓒ엄미영
캔버스 앞에서 작업 중인 엄미영 작가.   ⓒ엄미영

20년을 견딘 붓질을 20초에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

글·취재·사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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