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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아방가르드부터 단색화의 응축까지… 70여 점 소장품으로 추적한 현대미술의 물질성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대림문화재단 소장품전

대림문화재단 전경 [사진=대림문화재단]
대림문화재단 전경 [사진=대림문화재단]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림미술관 전시장. 파블로 피카소의 거친 판화 에칭 선묘를 마주한 관람객들의 시선이 백남준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뿜어내는 전자 빔의 잔상, 그리고 김창열의 극사실적 물방울 표면으로 차례로 이어진다. 대림문화재단이 오랜 기간 구축해 온 현대미술 컬렉션을 집약해 선보인 이번 소장품전은 국내외 거장들의 주요 작품 70여 점을 3개 층에 걸쳐 유기적으로 배치하며 현대미술의 매체적 전환사를 조망한다.

현장에서 확인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명품 나열식 회고전의 문법을 벗어났다. 20세기 초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의 태동기부터 후기 모더니즘,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적 성취로 꼽히는 물성(Materiality) 탐구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캔버스와 오브제를 다루는 조형적 기법의 진화 과정을 한 동선 안에 밀도 있게 엮어냈다.

2층 첫머리에 배치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에칭 및 리소그래피 판화 연작은 회화의 평면적 환영을 해체하던 작가의 초기 조형 실험을 생생히 증언한다. 금속판을 강산(Nitric Acid)으로 부식시켜 얻어낸 깊고 예리한 선묘는 인체의 볼륨을 기하학적 파편으로 분할한다. 잉크가 종이 섬유에 침투해 안착된 미세한 요철은 판화가 복제 수단을 넘어 독자적인 회화적 저항성을 지닌 매체임을 드러낸다.

3층 중앙 홀을 점유한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은 아날로그 텔레비전 케이스와 브라운관(CRT) 내부의 전자총이 쏘아 올리는 주사선(Scan line)의 동세를 조각적 실체로 환원한다. 음극선관 모니터의 RGB 전자 빔이 뿜어내는 가변적 빛과 철제 프레임의 차가운 금속성이 충돌하며, 비물질적 시간성과 물리적 하드웨어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영상 속 분절된 이미지 시퀀스는 관람객의 물리적 이동과 맞물려 전시 공간 전체를 전자적 파동의 장으로 탈바꿈시킨다.

이어지는 섹션에서 단연 시선을 붙잡는 것은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Oil and acrylic on hemp cloth)이다. 캔버스가 아닌 성근 마포(麻布) 위에 극도로 정제된 유화 안료로 구축된 물방울은 극사실주의적 묘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작가는 물방울 자체에 흰색 하이라이트와 짙은 그림자를 부여해 완벽한 입체적 응결 상태를 시각화하면서도, 주변 바탕의 거친 마포 결에는 안료를 스며들게 하는 탈채색 기법을 병치했다. 이로 인해 솟아오른 듯한 물방울의 촉각적 환영과 물감을 거칠게 빨아들인 천의 평면성이 화면 위에서 팽팽한 물질적 대치를 이룬다.

이번 대림미술관 소장품전은 '시각적 재현의 붕괴'에서 출발한 20세기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오브제와 매체의 물성 자체'로 귀결되었는지를 입증하는 자리다. 거장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선, 빛, 안료의 물리적 실체는 디지털 스크린에 익숙해진 동시대 관람객들에게 원작(Original)만이 지닌 아우라와 물질적 감각을 강렬하게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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