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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걸린 그림 열네 점…알고보니 ‘고3 입시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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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시 원서 쓰는 지금, 정시까지 이어갈 ‘작가로 가는 길’

▲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담. 입시를 준비하는 동시에 전시와 공모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쌓고 있다. ⓒ정담 제공
▲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담. 입시를 준비하는 동시에 전시와 공모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쌓고 있다. ⓒ정담 제공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로비 2.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 번씩 멈추는 자리가 있었다. 가로로 긴 포스터 속, 낮과 밤처럼 섞일 수 없는 두 색이 한 화면 안에서 맞붙어 있었다.

제목은 〈초월: 어둠과 빛〉. 전시를 연 사람은 정담, 부산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3학년이다.

전시는 지난 10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열렸다. 기자는 전시 마지막 날 현장을 찾았다. 작품을 거두어들이는 손길을 거들며 지켜본 자리에서, 벽에 걸렸던 열네 점의 그림이 하나씩 내려오는 과정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 정담 개인전 〈초월: 어둠과 빛〉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로비 2 전시장. 전시는 2026년 10월 3일부터 4일까지 열렸다. ⓒ엄미영
▲ 정담 개인전 〈초월: 어둠과 빛〉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로비 2 전시장. 전시는 2026년 10월 3일부터 4일까지 열렸다. ⓒ엄미영

■ 국회에 걸린 열네 점

정담의 작업에는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서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요소를 한 화면에 세워놓고, 그 사이의 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대표작 〈Contrast〉는 제목 그대로다. 캔버스 절반은 주황빛 불꽃이 거칠게 타오르고, 나머지 절반은 짙은 나무의 결이 고요하게 서 있다.

〈The old man and the sea〉에서는 생기 없는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과 푸른 바다가 한 화면에서 맞선다. 서로 다른 두 풍경의 대비는 정담이 반복해온 ‘경계’라는 질문과 맞닿는다.

〈Ambition 4〉와 〈Ambition 5〉는 혼돈의 색채와 그 혼돈을 뚫고 나온 선명한 색면으로 마주 보는 2부작이다.

▲ 정담 개인전 〈초월: 어둠과 빛〉에 출품된 작품들. 서로 다른 색과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지속해온 ‘경계’의 화두를 보여준다. ⓒ엄미영
▲ 정담 개인전 〈초월: 어둠과 빛〉에 출품된 작품들. 서로 다른 색과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작가가 지속해온 ‘경계’의 화두를 보여준다. ⓒ엄미영

이 열네 점이 걸린 자리가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로비였다. 작가노트는 이렇게 요약한다.

“1년을 뜻하는 열두 작품과, 부조화를 초월한 예술을 드러낸 두 작품. 낮과 밤처럼 닿을 수 없는 요소들의 만남,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예술.”

■ 고3이 2년째 들고 있는 질문

이 문장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정담은 부산 엄궁갤러리에서 열린 안송예술제에 참여했다. 당시 주제는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예술”이었다.

같은 구조의 문장이 1년 가까운 간격을 두고 되풀이된 셈이다. 다만 그 사이에 내용은 바뀌었다. 삶과 죽음에서, 낮과 밤으로.

아직 고3인 정담에게 ‘경계’는 한 번 쓰고 지나가는 소재가 아니라, 계속 돌아와 다시 묻는 질문에 가깝다.

▲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담. 입시를 준비하는 동시에 전시와 공모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쌓고 있다. ⓒ정담 제공
▲ 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담. 입시를 준비하는 동시에 전시와 공모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쌓고 있다. ⓒ정담 제공

■ 입시미술과 작가로 가는 길은 다르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많은 학생은 대학별 실기 유형에 맞춘 반복적인 실기 훈련에 상당한 시간을 쏟는다. 대학 실기고사를 통과하기 위한 준비로, 입시 과정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작가로서의 이력’은 또 다른 트랙이다.

전시에 직접 참여하고,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자신만의 주제를 반복하며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대학 진학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담의 이력이 눈에 띄는 지점은 여기다.

고3인 지금까지 두 트랙을 함께 밟아왔다.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2024년부터 개인전과 단체전에 꾸준히 참여했고, 학교 밖 실기대회와 공모전에도 작품을 냈다.

‘경계’라는 하나의 주제를 안송예술제에서 이번 전시까지 반복해온 것도 단순한 입시용 기법 연습이라기보다 자신의 질문을 작업으로 축적해온 과정으로 읽힌다.

입시 실기 준비만으로 자연스럽게 쌓이는 이력은 아니다.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공모에 도전하고, 다시 자신의 작업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방향을 만들어가야 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 정담의 2년, 타임라인으로 보면

▲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진 정담 작가의 활동 기록. 정해진 길의 모범이라기보다,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온 한 학생의 과정으로 예술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엄미영
▲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진 정담 작가의 활동 기록. 정해진 길의 모범이라기보다,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온 한 학생의 과정으로 예술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엄미영

이 기록이 예술을 준비하는 하나의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입시라는 한 시기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질문을 작품으로 옮기고 세상에 내놓는 일을 꾸준히 이어온 한 학생의 과정이다. 같은 길을 고민하는 학생과 부모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 정담의 프로필 모습. 입시 준비와 함께 개인 작업과 전시 활동을 이어오며 자신의 화두를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정담 제공
▲ 정담의 프로필 모습. 입시 준비와 함께 개인 작업과 전시 활동을 이어오며 자신의 화두를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정담 제공

■ 기자의 눈

이 글의 시선은 정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지금 같은 길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지금 수시 원서를 쓰고 있는 예술계열 고3들, 그리고 곧 정시를 준비할 이들, 그 곁에서 자녀의 길을 함께 지켜보는 부모들이다.

예술을 하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흔히 따라붙는 걱정이 있다.

‘예술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막연하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 불안이다.

여기에 AI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또 하나의 질문이 더해졌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사라질 것인가, 인간이 하던 어떤 일이 기술로 대체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다.

그러나 이제 질문의 방향을 한번 바꿔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사라질지를 걱정하기보다, 무엇이 끝내 남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스스로 질문하고, 감각하고,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은 계속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단순히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 대상이라기보다, 앞으로도 인간에게 남을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역 중 하나일지 모른다.

정담의 이력이 그 질문에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는 보여준다.

2024년 작은 공간에서 연 첫 개인전부터 단체전과 개인전, 공모전과 실기대회를 거쳐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의 개인전까지.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이력이 아니라, 2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록이다.

▲ 정담 작가가 입시 준비와 함께 전시·공모 활동을 이어오며 쌓아온 수상 기록. ⓒ정담 제공
▲ 정담 작가가 입시 준비와 함께 전시·공모 활동을 이어오며 쌓아온 수상 기록. ⓒ정담 제공

주목할 것은 전시 한 번, 수상 한 번이 아니라 이 축적의 방식 자체다.

입시미술이 가르쳐주지 않는 또 하나의 트랙을 정담은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함께 걸어왔다. 매번의 전시와 공모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고, ‘경계’라는 하나의 화두를 반복하며 다듬어온 시간이 쌓여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 길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열리지는 않는다. 한 학생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로 가는 길이 막연한 재능이나 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질문을 찾고 작업하고 세상에 내놓고 다시 시작하는 기록 가능한 단계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만큼은 이 사례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입시 결과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작가로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합격은 한 번의 통과이고, 작가는 매번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다.”

수시 원서를 넣은 이들에게도, 정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부모들에게 이 한 문장을 전하고 싶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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