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1조 원대 미술시장의 기만, 연소득 603만 원 예술인들의 현실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예술인들의 붕괴를 막을 데이터 기반 정책 혁신안 필요성

한국미술신문 만평
한국미술신문 만평

미술시장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미술품 유통액은 1조 377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초로 1조 원의 벽을 돌파했다. 언론은 연일 K-아트의 글로벌 도약과 미술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쏟아낸다.

그러나 이 화려한 1조 원의 숫자는 철저한 기만이다. 시장의 몸집은 팽창했지만, 그 시장에 상품을 공급하는 1차 생산자인 미술 작가들의 생태계는 참혹하게 붕괴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계는 고질적인 기형적 분배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예술인의 생존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024년 발표한 '2023년 기준 예술인 실태조사'는 작금의 미술시장이 지닌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예술인 10명 중 7명 이상인 75.7%는 한 해 예술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인 개인 소득이 1,200만 원 미만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분야별 소득 격차다. 건축 분야 종사자가 연평균 4,216만 원을 기록한 반면, 미술 분야 예술인의 연평균 창작 소득은 불과 603만 원으로 집계됐다. 월 50만 원 수준이다. 이는 2023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미술품 유통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서며 갤러리와 경매사는 역대급 수수료 수익을 올렸지만, 정작 캔버스 앞에서 물감을 소비하는 작가들의 수입은 처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전체 예술인 중 23%가 경력 단절을 경험했으며, 이들 중 65.5%가 예술활동 수입 부족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1조 원이라는 시장의 과실이 창작자에게 전혀 흘러가지 않는 낙수효과의 완전한 실패가 데이터로 입증된 것이다.

이토록 기형적인 소득 구조가 고착화된 원인은 미술계 내부에 뿌리내린 승자독식 구조와 불투명한 유통망에 있다.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매출은 극소수의 유명 작가와 대형 갤러리, 양대 경매사에 집중되어 있다. 상위 소수의 블루칩 작가 작품만이 수억 원에 거래되며 전체 시장 규모를 끌어올리는 착시 현상을 유발한다. 반면, 대다수 작가는 전시 대관료와 도록 제작비, 재료비 등을 온전히 부담하는 착취적 구조에 놓여 있다. 미술품 거래 내역 역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어, 수익 분배 비율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검증할 수 있는 판매 데이터가 작가에게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다. 가격 산정의 기준은 객관적 데이터가 아닌 화랑의 권력에 의해 결정되며, 재고 리스크는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 정책은 지나치게 유통 시장의 볼륨 키우기에 편중되어 있었다. 대형 아트페어 지원 등 가시적인 실적을 내기 좋은 세일즈 정책이 주를 이뤘다. 유통 시장의 활성화는 필요하지만, 1차 생산자인 작가들의 창작 기반이 붕괴하는 상황에서의 팽창은 사상누각이다. 단발성 지원금이나 프로젝트성 공모 사업으로는 구조적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정책의 패러다임이 창작자 생존권과 공정 분배 중심으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추급권의 전면적인 법제화다. 추급권이란 저작권법에서 미술품 원본이 양도된 후 다시 전매될 때마다 작가가 그 매각 대금의 일정 비율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관련 제도를 1차 시장과 2차 시장에 연동하여 즉시 도입해야 한다. 경매사와 갤러리의 미술품 거래 실적을 국가 공인 시스템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법제화하여, 작품 가격 상승의 이익이 작가에게 정당하게 배분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단발성 프로젝트 위주의 지원을 창작 인프라 유지비 지원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복잡한 서류 작업을 요구하는 방식은 전업 작가들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막대한 재료비 지출과 작업실 임대료에 대한 면세 혜택을 부여하고, 바우처 형태의 월정액 지원 시스템을 신설하여 연 603만 원 수준인 실질 소득을 직접적으로 보전해야 한다. 또한 문체부 산하에 분산된 기능을 통합해 독립된 형태의 '미술품 불공정 거래 신고 센터'를 신설해야 한다. 악성 관행 적발 시 위반 화랑에 대해 정부 지원 사업에서 영구 배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1조 원이라는 한국 미술시장의 화려한 숫자는 데이터가 낳은 착시이자, 밑바닥에서 연명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고혈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탑이다. 시장의 파이를 키웠으니 언젠가 밑으로도 돈이 흐를 것이라는 안일한 시장 논리는 실패했다. 투기성 자본이 몰리는 옥션 하우스의 낙찰 총액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수치에 근거한 공정 분배 시스템 정착과 추급권의 강력한 법제화만이 대한민국 미술계를 살리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기초가 무너진 건축물은 가장 먼저 붕괴하기 마련이다.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