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와 논란을 불러온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보존된 상어, 시신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죽은 소의 머리를 탐하다 살충기에 의해 죽어가는 파리 떼까지. 전시장 곳곳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죽음'을 응시하게 한다.
, 1991, Glass, Painted steel, monofilament, shark and formaldehyde solution, 217 X 542 X 180 cm, Private Collection.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데이미언 허스트가 보여주는 죽음은 오히려 침묵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진다. 마치 거센 풍랑이 내면을 집어삼키듯,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밀려와 마음을 뒤흔든다.
, 2000, 채색된 MDF, 철, 칼, 송풍기, 비치볼, 74.5 X 249.5 X 249.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멈추는 순간 찾아오는 것은 죽음 뿐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라.매 순간 살기 위해 우리는 숨을 쉰다. 그러나 지금의 한 숨과 다음 한 숨은 다르다. 흡입하는 공기의 양도, 질도, 속도도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다.
형태도, 관계도, 감정도 예외 없이 내 안에서 머물다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내게 좋은 것은 계속 붙잡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들은 빠르게 지나가버리길 바란다. 그렇게 집착하고 외면하고 거부하는 순간,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마주하게 된다.
<Beautiful Exploding Hell Bent Mayhem and Madness Vortex of Rainbows and Death Volcano Painting, 1999, Household gloss on canvas with electric moter, Dia 365.8cm, Private Collection. (사진. 강혜영)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고정된 실체는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으며, 환경과 주변은 계속 변화하며,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 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움직임, 변화는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 남는 것은 생명이 아닌 죽음이다. 변화와 움직임은 삶이 '지금, 여기' 존재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움직임은 일종의 삶을 암시한다. 그것들은 멈추는 순간 곧 부패하기 시작하고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 데이미언 허스트 작가 노트 중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태어난 순간부터 약속된 죽음, 내재된 죽음의 공포
허스트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과 욕망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누구나 죽음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일상 속에서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자신에게도 반드시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우리는 그것을 먼 미래로 미루며 ‘언젠가’라는 이름의 시간 속에 유예시킨다.
영생을 향한 욕망,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 의학과 과학에 대한 신뢰, 그리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집착은 어쩌면 죽음의 불안을 견디기 위한 인간 만의 생존 방식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면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나비의 시체로 박제되어 있다. (사진. 강혜영)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어딘가 섬뜩한 감각이 스며든다. 당장의 현실이 아니라고 여겨왔던 ‘죽음’이 눈앞에 지나치게 가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언젠가 찾아올 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죽음의 공포 앞에서 우리는 생의 의지를 다진다
언젠가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죽음 또한 살아가는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일이니, 삶을 살아가듯 마찬가지로 대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죽음 또한 살아가듯 대한다는 말의 의미를 한참 동안 곱씹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건강검진 결과 수치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제서야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고, 생활 습관을 바꾸기 시작한다.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살기 위한 선택’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전시전경 (사진. 강혜영)
100년 남짓한 삶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국,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시적이고 연약한 존재다. 결국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반드시 맞이할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 현재를 나답게 잘 살아가는 것이 결국 죽음 또한 삶을 살아가듯이 대하는 하는 태도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보면 죽음은 유난히 심각하게 분리된 사건이 아니다. 숨 쉬듯, 밥 먹듯 삶의 여정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된 하나의 과정이다. ‘죽음을 삶을 살아가듯 대한다’는 말은 결국, 매 순간의 삶을 선명하게 살아낸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죽음을 섬뜩한 것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삶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다." / 데이미언 허스트 작가 노트 중
한 번은 꽤 위험한 산비탈 길을 운전한 적이 있다. 조금만 방향을 잘못 틀어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길이었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알아차렸다. '어차피 죽으면 나는 끝이다. 끝이날 뿐이다. 그러나 남겨진 가족들은 오래도록 나를 기억하며 슬픔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안전하게 운전에 집중하자'는 생각과 함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시선이 또렷해졌다.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데이미언 허스트가 보여주는 죽음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생을 위한 ‘각성’이 아니었을까. 죽음을 마케팅으로 소비하거나 자극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에 대해 얼마나 허상적으로 바라보고, 집착하고, 또 동시에 외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을 아니었을까. 눈 앞에 죽음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나 외면해 온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생의 의지’를 다시 다지게 된다. 결국 허스트의 죽음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다시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나를 마주하는 죽음 명상
명상을 한다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매 순간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명상의 한 방법으로 '죽음 명상'이라는 것이 있다. 죽음 명상은 나의 죽음을 미리 체험해보고, 지금까지의 나의 생을 돌아보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죽음 명상’은 언젠가 반드시 사라질 존재로서의 나를 조용히 마주하는 수행이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먼 미래의 사건으로 밀어두지만, 죽음 명상은 그 거리를 지금 이 순간으로 당겨온다. 사라짐을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현재의 삶은 더 또렷해지고,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결국 죽음 명상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를 더 깊이 살아내는 연습이다.
이번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감상을 통한 죽음 명상과도 같았다. 죽음을 바라보며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고 느끼게 되는 내 삶이라는 존재. 허스트의 작품 앞에서 마주한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 있는 순간으로 돌아온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6월 28일까지 진행되며, 종료를 앞둔 특별 이벤트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사전 예약 및 현장 발권을 통해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이번 마지막 주말, 삶과 죽음 사이의 질문을 직접 마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