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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아카데미 현장기록 ⑦ "오늘 딱 2시간만 하는 쌩쑈! 일회용에 여러분은 초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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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 최정화 × 최미경, 40여 년을 버텨온 예술가들의 생존 보고서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오늘 딱 2시간만 하는 쌩쑈! 일회용에 여러분은 초대되었습니다. ❞

최정화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그냥 강연장이 아니다

2026년 6월 17일 오후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강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랐다. 무대 양쪽 긴 테이블 위에는 책과 파일, 도록, 종이들이 펼쳐져 있었다. 1991년 출판된 『상표모으기』, 쌈지 초기 브랜드 도록, 전봇대와 골목을 찍은 흑백 사진집. 최정화와 최미경이 지나온 수십 년의 흔적들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자료를 펼쳐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강연은 시작 전부터 이미 하나의 장면이 되고 있었다.

 최정화·최미경의 아카이브 자료 흔적.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최정화·최미경의 아카이브 자료 흔적.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강연 시작 전 테이블에 펼쳐진 최정화·최미경의 아카이브 자료들. 1991년 출판물 『상표모으기』를 비롯한 30여 년의 흔적이 관객을 맞았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강연 시작 전 테이블에 펼쳐진 최정화·최미경의 아카이브 자료들. 1991년 출판물 『상표모으기』를 비롯한 30여 년의 흔적이 관객을 맞았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무대 중앙에는 대형 인플레이터블 과일과 채소들이 가득했다. 무, 양파, 딸기, 레몬, 치커리, 배추. 강연장이 아니라 작품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강연 전경. 무대 위 대형 인플레이터블 과일·채소 설치물이 가득하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 - 7강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강연 전경. 무대 위 대형 인플레이터블 과일·채소 설치물이 가득하다. 2026. 6. 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실시간 인스타그램 라이브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실시간 인스타그램 라이브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실시간 인스타그램 라이브도 함께 돌아갔다. MMCA 아카데미 시즌 2 일곱 번째 강연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최정화(미술가)와 최미경(예술 제작자)이 말하고,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대화를 이끌었다. 강연이라기보다 살아있는 2시간의 현장 기록이었다.

■ 1984년, 그리고 1989년 - 난장판의 시작

최정화는 1984년 주한미술대전 대상을 받으며 미술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은 미술관 안이 아니었다. 인테리어 잡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디자이너로 불리기 시작했다. 명함에서 인테리어로, 인테리어에서 건축으로, 공간에서 거리로 ---- 그 경계를 그는 처음부터 무시했다.

1989년, 최정화와 최미경은 함께 인테리어디자인회사 에이포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이후 두 사람이 꾸린 복합문화공간 '오존', '살' - 이곳은 미술, 디자인, 사진, 무용, 음악, 영화를 넘나드는 창작자들이 모여 연대하고 경쟁한 즐거운 난장판이었다. 황신혜밴드도 그 에너지 안에 있었다. 예술과 대중문화, 순수와 상업의 경계가 처음부터 없었다.

최미경이 말했다.

"그때 20대에 정말 미친듯이 놀았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때의 힘인 것 같다."

쌈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패션 브랜드를 예술의 언어로 확장을 증명하는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쌈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패션 브랜드를 예술의 언어로 확장을 증명하는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91년에는 도시의 상표와 간판, 전봇대와 골목을 수집한 출판물 『상표모으기』를 냈다. 세상에 이미 넘쳐나는 것들 --- 그것이 이미 예술이라는 선언이었다. 같은 해 쌈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패션 브랜드를 예술의 언어로 확장했다. 네이밍, MD, 공간 디자인까지. 쌈지는 단순한 브랜드 협업이 아니라 대중의 일상 속으로 예술이 스며드는 실험이었다.

■ 1992년, 최미경의 고백

이날 강연에서 예상 밖의 장면이 나왔다. 최미경이 슬라이드에 띄운 것은 1992년의 자신이었다. 삭발한 채 파란색과 붉은색이 나뉜 긴 치마를 입고 서 있는 사진. 옆에는 그가 직접 쓴 손글씨 텍스트가 가득했다.

안은미가 드러나는 흔적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안은미가 드러나는 흔적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여자니 남자냐 / 여자엔 예뻐야, 남자면 어때서 / 쪼기 / 포기 / 예술가길 힘기차한 안은데가 되기위한 / 철저의도, 억압"

그리고 마지막 줄.

"안은미는 색깔이다"

무용가 안은미와의 연대, 젠더의 경계를 몸으로 흔들었던 시절의 기록이었다. 최미경은 예술 제작자로서 40년을 버텨오는 동안 자신이 무엇과 싸워왔는지를 이 한 장의 슬라이드로 말했다. 화려한 수사 없이.

■ "빨리 빨리. 대충 대충. 씨발. 하면 된다"

최정화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빨리 빨리 / 대충 대충 / 괜찮아요 / 씨발 / 하면 된 다" 슬라이드가 보인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최정화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빨리 빨리 / 대충 대충 / 괜찮아요 / 씨발 / 하면 된 다" 슬라이드가 보인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최정화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화면에 뜬 문장들.

"빨리 빨리 / 대충 대충 / 괜찮아요 / 씨발 / 하면 된 다"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이 가라앉고 나면 이 문장이 40년의 태도를 압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일단 하는 것. 두려움보다 실행. 그것이 그가 미술대학에 들어간 날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온 방식이었다.

현대미술을 설명하며 나오는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현대미술을 설명하며 나오는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그는 말했다. 미술대학에 들어갔고, 행위예술을 했고, 다원예술을 했고, 종합예술을 했고, 할 수 있는 시도를 다 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 현대미술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슬라이드에 문장이 떴다.

"그런데... / 신조어와 외계어가 뒤섞인 대화처럼 / 현대미술은 난해한 수수께끼 놀음이 갔고 /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은 더 희박해 질 뿐 / 나아 갈수록 단절과 고립을 느꼈어요."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어 표현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그래서 그는 방향을 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낮아지는 쪽을 택했다. 꽃을 만들고, 과일을 만들고, 광장을 만들고, 건설 현장 가림막을 예술로 덮었다. 서울문화재단의 가림막 예술, 서울여대 공사 가림막,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페스티벌의 〈Wish〉,
유럽 교회 천장에 매달린 형형색색 오브제 설치까지 --- 일관된 방향은 하나였다.
예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려는 것.

■ "다나다너다" - 맞춤예술의 선언

「다나다너다는 뭐냐? '맞춤 예술!'」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다나다너다는 뭐냐? '맞춤 예술!'」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최정화의 최근 집단적 실천 '다나다너다'가 소개됐다. 슬라이드에는 초록과 붉은 색 바탕 위에 세 글자가 겹쳐졌다.

나 · 다 · 너

그리고 아래.

"나는 너를 / 너는 나를"

'다나다너다'는 맞춤예술이다. 다 나다, 다 너다. 세상 모든 것이 이미 예술이고, 그 예술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맞춤으로 존재한다. 예술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되는 거다. 플라스틱이 재활용되는 것처럼 - 아우라, 온기, 관계, 그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기록       ⓒ엄미영 미술전문기자ㅈ
하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기록       ⓒ엄미영 미술전문기자ㅈ

강연 말미, 그가 직접 손으로 쓴 메모지 한 장이 공개됐다.

"누구나 예술은 이미 알고 있다. / 이 것은 내가 아니고 나의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장.

"AI를 이기려 하지 말고 - 우리끼리 즐겁게, 내가 유연하게, 불확실하지만 좋네! 하는 - 눈부시게 아름답게, 하찮은 일도 치밀하게!"

최정화, 최미경의 강연을 즐기는 모습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최정화, 최미경의 강연을 즐기는 모습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마지막 슬라이드 문장은 이것이었다.

"생존자! 반장다! - 2026.6"

■ 기자의 눈

강연이 끝난 뒤 텅 빈 무대에 인플레이터블들만 남았다. 배추, 딸기, 양파, 레몬.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도 그것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최정화의 작업이 늘 그래왔듯이.

이날 강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말은 화려한 슬라이드가 아니었다.
최미경이 조용히 한 말 - "저는 그 20대에 정말 미친듯이 놀았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때의 힘인 것 같다." 40년을 함께 버텨 온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건네는 말처럼 들렸다.

최정화와 최미경은 예술이 어렵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예술이 없다고 했다. 당신이 예술이라고 했다. 그 말이 수십 년의 실천 끝에 나온 것임을 이 강연은 증명했다.

좌에서 우로 채연 학예연구사, 최정화, 최미경, 진행 스태프. 뒤로 타이틀 슬라이드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가 보인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좌에서 우로 채연 학예연구사, 최정화, 최미경, 진행 스태프. 뒤로 타이틀 슬라이드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가 보인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그렇기에 이날 강연은 예술을 정의하는 시간이 아니라 예술로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시간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문장은 역시 이것이었다.

"그때 20대에 정말 미친듯이 놀았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때의 힘인 것 같다."

"예술은 없다. 당신이 예술이다."

강연 후 텅 빈 무대. 인플레이터블들 앞에서 기자와 최정화 한컷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강연 후 텅 빈 무대. 인플레이터블들 앞에서 기자와 최정화 한컷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글·취재·사진 / 미술전문기자 엄미영 Gree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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