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MCA 아카데미 현장기록 ⑤ 들에 몸을 던진 50년 - 임동식이 도달한 '본래미술'의 세계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스스로 그러한 것들 앞에서 - 임동식이 50년간 지켜온 자연을 대하는 태도

MMCA 아카데미 현장기록 ⑤ 들에 몸을 던진 50년 -  임동식이 도달한 '본래미술'의 세계

"길이 법받은 제절로(道法自然)"

- 노자 《도덕경》 25장

캡션: 2026년 5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대담 현장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캡션: 2026년 5월 27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대담 현장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5월 27일 저녁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원공간. 무대 위에는 두 개의 소파와 작은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어린 화분 하나. 흙에서 막 돋아난 듯한 작은 식물이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 오늘 밤의 주인공을 닮은 자리 배치였다.

미술가 임동식과 미술평론가 김종길의 1대1 대담. 사회는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맡았다. MMCA 아카데미 시즌 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다섯 번째 밤이었다.

임동식은 1945년생. 올해 81세다. 1980년 국내 최초의 야외미술제인 〈금강현대미술제〉를 기획하고, 이듬해 야외현장미술연구회 야투(野投)를 창립한 한국 자연미술의 선구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스스로의 예술을 '자연미술'이라는 이름마저 내려놓고 '본래미술'이라 부른다.

■ 1975년 안면도 _ 알 서른 개를 해변에 놓다

대담은 1975년 서해 안면도 꽃지해변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유신 체제의 겨울 한복판, 임동식은 석고로 직접 빚은 길이 70cm, 지름 40cm가량의 알 서른 개를 드넓은 백사장 위에 흩어놓았다. 전시장이라는 사각 상자를 박차고 탁 트인 자연 현장으로 나아간 선구적 행보였다.

왜 하필 알이었나. 임동식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속 신 아프락사스(Abraxas), 불교의 '공(空)', 공룡알과 원시 생명체를 동시에 품은 형상으로 이 알을 빚었다고 했다. 탄생·죽음·순환이 하나의 형상 안에 깃든 '원초 생명의 징후'였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그는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 속으로 나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이후 50년 임동식 예술 여정의 첫 장면이었다.

■ 1981년 금강 _ 야투(野投), 나비가 되다

1980년 8월, 공주 금강 백사장. 임동식과 동료들은 서울 중심의 화단과 해외 사조의 무분별한 추종에 등을 돌리고 고향의 강으로 내려왔다. 〈금강현대미술제〉였다. 이듬해 1981년 야투 창립전이 열렸고, 첫 도록 표지에는 나비 한 마리가 실렸다.

'들(野)에 몸을 던진다(投).' 그것이 야투였다. 유충이 허물을 벗고 하늘로 날아오르듯, 닫힌 전시장의 예술을 풀어 대자연의 시공간 속으로 부활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김종길 평론가는 그 나비 도상을 두고 "야투 미학의 가장 위대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 1981~1990년 함부르크 _ 수만 리를 가로지른 기(氣)의 순환

"자연은 과잉도 결핍도 없이 필요한 것을 만든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야투를 창립하자마자 임동식은 독일 함부르크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공주와의 연결을 놓지 않았다. 공주에 남은 후배들은 계절마다 금강 변에서 작업하고 그 기록을 슬라이드 필름에 담아 함부르크로 보냈다. 임동식은 함부르크미술대학 교수·학생들과 그 이미지를 함께 영사하며 토론했다. 동시에 자신도 독일의 숲과 자연 속에서 작업한 기록을 한국으로 보내 야투 작품집을 함께 편집했다. 10년간 이어진 기적 같은 순환이었다.

1985년 함부르크, 자연 속에서 작업 중인 임동식. 한국과 독일을 오간 슬라이드 필름 교환은 10년간 지속됐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85년 함부르크, 자연 속에서 작업 중인 임동식. 한국과 독일을 오간 슬라이드 필름 교환은 10년간 지속됐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이것은 노자 《도덕경》의 위무위(爲無爲), 다석 류영모 선생이 순우리말로 번역한 '함없함'의 세계다. 억지로 소유하거나 자연을 도구화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우주 섭리에 자기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태도. 한국과 독일의 자연이 하나의 기(氣)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 1993년 원골마을 _ 농사가 곧 예술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 노자

 1993년 봄, 임동식은 공주 신풍면 원골마을로 들어갔다. 맨손으로 작업장을 짓고
군불을 때며 인간 생존의 1차적 문제를 몸소 익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를 펼쳤다. 그의 선언은 간결했다.
"농사가 곧 예술이고(農卽藝), 예술이 곧 농사다(藝卽農)."

1993년부터 10년간 공주 원골마을에서 진행된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 도록. 주민 스스로가 자연미술 작가로 나선 공동체 예술의 기록이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93년부터 10년간 공주 원골마을에서 진행된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 도록. 주민 스스로가 자연미술 작가로 나선 공동체 예술의 기록이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대담 중 임동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마당에 콩을 심는 할머니. 평생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그 할머니가 이른 아침 흙을 고르고 손가락으로 구멍을 파 콩을 심는 행위 안에, 이미 대지와 완벽하게 감응하는 미적 본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주민 스스로가 자연미술가였음을 확인하는 경이로운 환류(還流)의 세계. 임동식은 바로 그것을 '본래미술'이라 불렀다.

■ 2000년대 _ 친구 우평남이 이끄는 대로

우평남이 이끄는 대로 여러 풍경을 그린 임동식. '친구가 권유한 풍경 시리즈'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지운 동아시아적 합일의 회화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우평남이 이끄는 대로 여러 풍경을 그린 임동식. '친구가 권유한 풍경 시리즈'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를 지운 동아시아적 합일의 회화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2000년대에 들어서며 임동식은 오랜 친구 우평남을 만났다. 평생 산을 타며 대지의 날것을 온몸으로 감각해 온 사람이었다. 우평남은 산과 들에서 마(薯)·약초·미꾸라지·우렁·민물고기를 채취하러 다니면서, 운전을 못 하는 임동식을 이곳저곳 데려다 줬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그려라."

임동식이 대담에서 직접 한 말이다.

"내가 만약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나는 그림을 그리겠다,
마음이 드는 것 그리고 싶다. 우평남이 알려줘서
여기 그리라고 ~ 응 하면난 그렸다.
나를 그림으로 그리게 동기부여하게 한 사람이 바로 저 친구이다."

서구 미학에서 예술가는 강력한 선택의지와 조형의지를 가진 주체다.
임동식은 그 권력을 내려놓고 친구의 시선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장자 철학의
물아일체(物我一體) - 내가 곧 사물이며 사물이 곧 나인 세계가 캔버스 위에 펼쳐진 것이다.

■ 17년째 그리는 그림 _ 야물어 가는 우주의 시간

임동식은 2009년에 시작한 단 한 점의 작품을 지금도 캔버스 위에서 이어가고 있다. 무려 17년이다. 넓적한 붓이 아니라 가느다란 세필(細筆)로, 마치 바느질하듯 한 땀씩 결을 채워나간다.

 이것은 '재현'이 아니다. 그 풍경이 품은 다층적 시공간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대지에서 온몸의 촉수로 느꼈던 모든 감각의 총체를 화면에 정착시키는 일이다. 애초에 단숨에 끝낼 수 없는, 일종의 우주적 수행이다.

씨알 하나가 심어져 싹이 나고 마침내 단단한 열매를 맺는 과정을 우리 옛말로 '야물어 간다'고 했다. 임동식의 회화는 그 '야묾(妙)'의 미학이다. 자본과 속도 문명에 중독된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하는 시간 - 자연이 스스로 순환하는 그 우주적 시간을 세필 끝으로 받아 적고 있다.

■ 비단박람회 _ 고치실로 짠 우주 만다라

대담의 마지막 장면.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 한 점이 떴다. 〈비단박람회〉(2011-2015). 181.8×227.8cm 캔버스에 유화. 화면 가득 펼쳐진 빛의 소용돌이는 우주 삼라만상을 하나의 신성한 도상으로 응축해 놓은 만다라(Mandala)처럼 보였다.

임동식의 고향이자 활동 무대인 공주 유구읍은 예로부터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 해방 전후 전국 각지의 피난민이 모여들어 집집마다 직조기를 들여놓고 비단을 짰다. 1970년대 유구읍은 전국 섬유·비단 생산량의 70%를 담당했다. 임동식은 그 기억을 소환했다. 시멘트와 철근의 거무튀튀한 '양복지 세계'에 맞서, 우리 기후와 토양 속에서 자생한 화려한 비단문화의 색채를 화폭에 복원한 것이다.

임동식, 〈비단박람회〉, 2011-2015, 181.8×227.8cm, 캔버스에 유화. 고치실의 미세한 결들이 우주적 만다라로 화한 역작.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임동식, 〈비단박람회〉, 2011-2015, 181.8×227.8cm, 캔버스에 유화. 고치실의 미세한 결들이 우주적 만다라로 화한 역작.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 모든 형상이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진리가 다시 만물로 화현한다는 세계관이 회화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1981년 야투 창립 도록의 나비가 허물을 벗고 하늘로 날아올랐다면, 2015년 〈비단박람회〉의 빛살무늬는 그 나비가 마침내 우주와 합일한 풍경이다.

■ 기자의 눈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내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 파울 클레

이날 기자는 단순히 취재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자연을 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로서, 같은 길 위에 선 사람으로서 임동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QA 시간, 기자도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자연 앞에서 작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무게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연미술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금강의 백사장에서, 독일의 숲에서, 원골마을의 마당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 스스로 그러한 것들 앞에 몸을 세우는 모든
작가의 것이다.

대담이 끝난 후 임동식 작가에게 다가갔다. 환하게 웃는 그 얼굴에는 들에 몸을 던져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에서 받은 여유였다.

 자본의 속도로 달리는 시대에, 81세의 작가는 17년째 같은 캔버스에 세필을 댄다.
야물어 가는 시간을 기다리며. 그것이 '본래미술'이었다. 예술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늘 거기 있었다는 것 - 임동식은 50년의 몸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오늘 꽤 값진 것을 얻었다.
안면도 백사장의 알, 금강의 나비, 함부르크의 슬라이드 필름,
원골마을 할머니의 콩 심는 손, 그리고 17년째 야물어 가는 캔버스.
 한국 자연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를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만난 것이다.

MMCA 아카데미 시즌 2 대담 종료 후 임동식 작가와 함께.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 대담 종료 후 임동식 작가와 함께.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다음 6편에서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린다.

MMCA 아카데미 시즌 2 - 6강 '한국 페미니즘과 미술: 시작과 확장'(6월 3일)이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 2 - 6강 '한국 페미니즘과 미술: 시작과 확장'(6월 3일)이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글·취재·사진 / 미술전문기자 엄미영 Greeni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