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미연부터 1990년대 이불·김수자까지 - 한국 페미니즘 미술, 40년의 기록이 돌아왔다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 루시 리퍼드
MMCA 아카데미 시즌 2 - 6강 「한국 페미니즘과 미술: 시작과 확장」 강연 타이틀 슬라이드. 2026. 6. 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페미니즘,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페미니즘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미술사는 그 당연함을 기록하지 않았다. 누가 그렸는지보다 누가 인정받았는지가 역사가 됐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 사람들이 있었다. 1987년 서울, 여성미술연구회가 처음 전시장 문을 열었을 때부터.
한국미술신문을 읽는 독자라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페미니즘 미술은 어떤가? 1987년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전시가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 지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홍희는 그 질문에 40년치 답을 들고 단상에 섰다.
2026년 6월 3일 오후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다원공간. MMCA 아카데미 시즌 2 여섯 번째 강연 「한국 페미니즘과 미술: 시작과 확장」이 시작됐다. 강연자는 미술사학자이자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현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김홍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채연이 진행을 맡았다.
김홍희 미술사학자(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전 서울시립미술관장)가 강연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여성주의'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다
김홍희는 첫머리부터 개념을 바로잡았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여성주의'로 번역돼 온 페미니즘은 그 정치사회적 실천의 측면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젠더 정치학의 관점에서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오늘날의 흐름을 고려할 때, '페미니즘'이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이론적 흐름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미술의 역사에서 이 전환점은 1971년 린다 노클린의 논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래 미술사의 형식주의·남성 본위·천재 중심 구조를 해체하는 출발점이었다. 루시 리퍼드는 말했다.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김홍희 미술사학자(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전 서울시립미술관장)가 강연하고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시간표
김홍희는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를 다섯 단계로 정리했다. 1970년대 비모더니즘(non-modernism), 1980년대 반모더니즘(anti-modernism), 1990년대 탈모더니즘(de-modernism), 200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그리고 2010년대 넷페미(Net-Femi)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전 세대와 차별화된 새로운 페미니즘이 등장했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그 기폭제가 됐다.
1971년 표현그룹을 설명중인 강연자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1970년대 — 모더니즘에 맞선 최초의 여성들
1971년 결성된 '표현그룹'이 출발점이다. 형식주의 추상화 대신 이야기 있는 형상화를 선택하고 여성성과 여성 이슈를 작품에 담으려 한 최초의 여성 그룹이었다. 유연희, 윤효준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김홍희는 이들의 양식 실험이 여전히 모더니즘 어법에 의존한 '소박한 페미니스트'였다고 평가했다.
시월모임의 근원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1980년대 — 시월모임에서 여미연으로
본격적인 전환은 1985년 '시월모임'에서 시작됐다. 김인순, 윤석남, 김진숙 세 사람이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이듬해 두 번째 전시 〈반(半)에서 하나로〉는 가부장제, 성차별, 가사노동, 여성의 몸과 재현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미술전으로 기록된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늦깎이 화가였다는 것. 차이점도 분명했다. 김인순은 여성 억압, 윤석남은 모성, 김진숙은 무속적 상상력이 각자의 작업을 이끌었다.
1987년 이들은 더 넓은 연대로 나아갔다.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 정정엽 등이 모여 '여성미술연구회(여미연)'를 결성했다. 여미연의 첫 전시 〈여성과 현실, 무엇을 보는가〉를 통해 한국 페미니즘 미술은 공식적인 막을 올렸다.
김인순의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 두 명의 딸들이 죽다〉(1988, 천에 아크릴, 150×190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는 그 시대가 요구한 그림이었다. 불길 속에서 쓰러지는 여성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기록했다.
김인순의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 두 명의 딸들이 죽다〉작품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모성의 두 얼굴 — 윤석남의 '어머니' 연작
윤석남 〈빛의 파종-999〉 1997 전시 전경.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90년대로 접어들며 윤석남의 작업은 깊어졌다. '회화적 조각'이라는 독자적인 형식으로 발전한 그의 작업은 1993년 〈어머니의 눈〉전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모성 담론을 촉발시켰다.
김홍희는 에이드리엔 리치의 이론을 끌어들여 모성의 양면성을 설명했다. 모성은 부계 중심 사회를 존속시키는 제도인 동시에, 그 체험 속에 남성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빛의 파종-999〉(1997)에서 〈자화상〉(2018, 한지에 채색, 93×70cm, OCI미술관 소장)까지 이어지는 윤석남의 긴 여정은 한 작가의 생애 전체가 페미니즘의 실천이었음을 보여준다.
■ '미친년'은 누구인가 — 박영숙의 전복적 시선
〈Mad Woman Project 미친년 프로젝트〉-박영숙작품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페미니스트 사진가 박영숙은 같은 시대를 다른 언어로 기록했다. 1999년부터 이어진 〈Mad Woman Project 미친년 프로젝트〉는 '미친년'이라는 말이 품은 사회병리학적·정신분석학적 함의를 끄집어내 강렬한 전복의 언어로 바꾸었다. 〈그림자의 눈물〉(2020)까지 여성과 타자, 주변부에 대한 일관된 비판 의식이 그의 작업을 관통한다.
■ 포스트민중 페미니즘과 '입김'의 행동주의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90년대 또 다른 축은 포스트민중 페미니즘이었다. 서숙진, 조경숙, 류준화 등이 사진, 광고, 만화 등 대중매체를 차용하며 새로운 미학 실험으로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97년 결성된 페미니스트 콜렉티브 '입김'은 집단적 행동주의로 나아갔다. 2000년 〈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가 절정이었다. '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으로 의역한 아방궁이 유교문화의 상징 종묘를 점거한다는 발상 - 자궁터널〉과 치마 설치로 구현된 이 작업은 가부장제의 요새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정신을 수용한 신세대 작가들이 등장했다. 이불, 김수자, 김주현, 이수경, 강애란, 장영혜가 그 중심이었다.
이불의 누드퍼포먼스로 삶의 예술로 여러 측면에서 일깨워 주는 무브먼트- 〈낙태〉(1989) 퍼포먼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이불은 〈낙태〉(1989) 퍼포먼스를 비롯해 누드를 강행하면서까지 몸으로 질문을 던졌다. 김홍희는 이를 플럭서스(Fluxus)적 맥락 - 삶의 예술, 경계의 해체 - 으로 읽어냈다. 〈사이보그 W1-W4〉(1998, 베니스 비엔날레 1999)에서 〈나의 거대서사〉(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파리, 2007)까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적 사례를 만들어 냈다.
김수자는 보따리로 이동의 언어를 만들었다. 〈떠도는 도시들 – 2727km 보따리 트럭〉(1997)은 한국의 여성성과 이동, 노마디즘을 세계 무대에 연결했다.
■ 기자의 눈
정정엽의 [최초위 만찬] 에 대해 강연을 이어가는 김홍희 강연자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예술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잊혀진 것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가 역사를 기록하는가. 그리고 누구의 이름이 기록에서 사라지는가.
그 시대 작가들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들이 오늘 내놓는 작품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결국 이 강연은 페미니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떠나 -- 시대의 부조리 앞에서 예술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부르짖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실험, 현실, 혼성. MMCA 아카데미 시즌 2가 그 이름을 내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작가들이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있다. 윤석남이, 이불이, 김수자가, 박영숙이 오늘도 작품을 낸다. 그렇다면 그들의 지금 작품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 '그 시대의 작가'로 고정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동시대 작가로 볼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미술사의 문제가 아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실험미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하고 나누어야 할 살아있는 질문이다.
무궁화꽃을 생각했다. 하루에 피고 지지만 일주일을 질기게 버티는 꽃. 한국 페미니즘 미술도 그렇게 질겼다. 1987년 여미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피고 또 피었다.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