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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아카데미 현장기록 ④ - "진짜 고향은 고조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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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60년의 형상 - 민중의 역사를 살아있는 그림으로

▲ 신학철 작가.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가 작품과 시대, 역사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MMCA 아카데미 시즌2 대담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가 작품과 시대, 역사 인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MMCA 아카데미 시즌2 대담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그가 말한 고향

"내 고향은 본래 김천인데, 그것만이 고향이 아닌 것 같다. 진짜 고향은 고조선이
아닌가."

5월 20일 저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원공간. 신학철이 말했다. 웃음기 없이,
그러나 담담하게.

▲ 신학철 작가.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김천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전위미술의 흐름을 지나 민중미술의 중심으로 들어선 작가. 신학철에게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었다. 고조선부터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 그 역사적 감각이 그의 작업 세계를 이루는 뿌리였다.

〈한국근대사〉 연작은 역사 재현보다 자신의 근원을 탐색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개인과 시대, 현실과 기억에 대한 질문이 캔버스 위에 축적됐다.

유혜종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신학철의 작업 세계를 중심으로 대담을 이어갔다.
국제학술지 발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들은 작품의 제작 배경과 시대적 맥락을
차례로 짚어갔다. 이날 현장은 한 작가의 60년 작업세계를 따라가는 시간이었다.

■ 1967년, 신문지와 오브제

슬라이드가 켜졌다.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

▲ 신학철 대담 현장. 작품 세계의 변화와 작업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대담 현장. 작품 세계의 변화와 작업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작업 재료와 조형 언어의 변화, 회화와 오브제를 넘나드는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작업 재료와 조형 언어의 변화, 회화와 오브제를 넘나드는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추상-2〉, 〈추상-3〉. 신문지를 캔버스에 붙이고 유화를 덮었다. 162.1×112.1cm. 오브제를 설치했다. 당시 화단은 단색화와 앵포르멜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스물넷의 신학철은 이미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그 언어의 출발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어느 날 키우던 식물이 죽었다. 강연 중 신학철은 일상의 경험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화분은 사람의 환경과 같다.” 사물이 보내는 메시지를 작업으로 옮기는 방식, 그 지점에서 그의 오브제 작업이 시작됐다.

▲ 작품 이미지와 함께 회화·설치·현실 인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세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작품 이미지와 함께 회화·설치·현실 인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세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지성〉은 그 감각의 결정체였다. 대칭적이면서 원시적인 형태. 실을 감는 행위 — 그것은 장식이 아니었다. 사물과 캔버스를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작업이었다. 회화인가, 설치인가. 경계가 없었다. 신문지 위의 현실이, 죽은 식물의 뿌리가, 감긴 실이 — 모두 그림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순환-2〉는 물질 중심 사회를 향한 비판적 응답이었다. 사람들은 물질을 욕망하고 그 흐름을 따라간다. 그러나 신학철은 다른 방향을 응시했다. 그에게 동학은 저항 이전에 받아들이고 순환하는 생명의 사상이었다.〈순환-2〉는 그러한 동학적 에너지와 긍정의 세계관을 시각적 구조로 번역한 작품이었다.

■ 시대가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 대담 중 공개된 작품 이미지. 1970년대 한국 사회와 현실 인식이 신학철 작업 세계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됐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대담 중 공개된 작품 이미지. 1970년대 한국 사회와 현실 인식이 신학철 작업 세계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됐는지 설명이 이어졌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71년. 〈버스 추락사고〉. 〈메이 퀸 투신자살〉. 캔버스에 유채,130.3×89.4cm.

▲ 작품 이미지와 문학·시대적 참조가 교차한 대담 장면. 작업 배경과 조형 언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작품 이미지와 문학·시대적 참조가 교차한 대담 장면. 작업 배경과 조형 언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사회면 뉴스를 캔버스에 옮겼다. 사건. 죽음. 도시의 균열. 그 무렵 신학철의 책상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있었다. 어둠과 역사의 관계성. 인간이 죄를 짓고, 역사가 그것을 덮고, 그 아래서 민중이 살아간다. 그 굴곡진 내면을 캔버스에 올리려면 — 근육질의 몸이 필요했고, 뒤엉킨 형상이 필요했다.

▲〈피난길〉(1978)을 비롯한 신학철 초기 작업. 전쟁의 기억과 인간 존재의 긴장이 응축된 화면이 시대의 상처를 환기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피난길〉(1978)을 비롯한 신학철 초기 작업. 전쟁의 기억과 인간 존재의 긴장이 응축된 화면이 시대의 상처를 환기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1977년 〈전쟁(원년전)〉. 1978년 〈피난길〉. 쓰러진 몸, 황량한 언덕. 전쟁은 끝났지만 그림 속엔 끝나지 않았다. 1979년 〈순환-2〉와 〈명상〉. "내그림은 조각이다"라고도 했는데 — 지금으로 보면 반가사유상이 아닌가. 긴장감이 형태로 굳어지고 있었다.

■ "이것도 그림인가" — 그 말이 후련했다

〈한국근대사 III〉를 완성했을 때, 누군가 말했다. "이것도 그림인가?"

▲ 신학철 작가 대담 현장. ‘한국근대사’ 연작과 시대·역사·이미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 대담 현장. ‘한국근대사’ 연작과 시대·역사·이미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신학철은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고.

▲ 역사·민중·현실의 문제를 다뤄온 신학철의 작품 세계.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역사·민중·현실의 문제를 다뤄온 신학철의 작품 세계.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돼지머리, 근육질의 인간, 굴곡진 역사, 내면의 문제. "힘찬 에너지의 합성이 아닌가!" 그림이 아니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신학철이 원한 것이었다. 그림의 경계를 넘는 것. 역사의 무게를 그 경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것.

▲ 신학철 〈한국근대사 Ⅲ〉 연작. 역사·현실·개인 서사가 중첩된 화면 구성과 시대 인식이 드러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한국근대사 Ⅲ〉 연작. 역사·현실·개인 서사가 중첩된 화면 구성과 시대 인식이 드러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한국근대사 III〉는 개인적인 처형의 기록이기도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기도 했다. 초현실적이고, 기대감으로 가득한 그림. 그것이 신학철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 포토몽타주, 그리고 〈한국근대사〉

1982년. 서울 구기동 서울미술관. 〈프랑스 신구상회화전〉이 열렸다. 신학철은 거기서 포토몽타주를 만났다. 사진과 회화가 충돌하는 화면. 역사의 층위가 겹쳐지는 방식.

▲ 신학철 작품과 ‘포토몽타주·한국근대사’ 관련 대담 현장. 역사, 현실, 이미지의 관계를 짚는 시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품과 ‘포토몽타주·한국근대사’ 관련 대담 현장. 역사, 현실, 이미지의 관계를 짚는 시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그리고 책 한 권을 펼쳤다. 《사진으로 보는 한국 100년》. 동아일보가 만든 기록지였다. 개항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불쌍하고,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 포토몽타주와 사진 이미지, 시대의 기록과 회화의 충돌. 신학철의 작업 방식이 현장에서 소개되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포토몽타주와 사진 이미지, 시대의 기록과 회화의 충돌. 신학철의 작업 방식이 현장에서 소개되고 있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신학철은 그 사진들을 잘라 붙이고 그 위에 그렸다. 흑백으로. 이유는 단순했다.
"사진 자체가 흑백이었다." 그 시대를 그대로, 그 분위기를 다 나타내기 위해서.
흑백의 선은 끊겼다가 나타났다가 가장 가깝게 그 시대를 담아내는 방식이었다.

"저는 사진을 실제라고 본다. 사진과 식물은 같다.
사진과 식물은 나와 같다."
그러니 그가 쓰는 사진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었다.
"제가 쓰는 사진은 실명제다!"

익명의 역사가 아니었다. 이름 있는 얼굴들. 이름 있는 고통. 그것이 〈한국근대사〉 연작의 바탕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높이 390cm의 대작. 한 화면 안에 식민지와 전쟁과 산업화와 민중의 얼굴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1987년. 〈모내기〉. 모내기하는 사람들, 소, 들판. 평범한 농촌 풍경이었다. 검찰은 북한 찬양이라는 혐의를 씌웠다. 국가보안법. 구속. 징역 10월 선고유예. 구치소 3개월.

작품은 A4 크기로 접힌 채 수십 년을 검찰 창고에 있었다. 훼손된 채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신학철은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 훼손된 것도 역사라고.

■ 기자의 눈

MMCA 아카데미 시즌2도 이제 반을 넘겼다. 8강 중 4강. 그 시대적 흐름 속에 작가들을 생생한 현장에서 만나고 기록한다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취재가 아닐지 모른다.

▲ MMCA 아카데미 시즌2 현장 취재 자료와 메모. 기록은 현장에서 시작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MMCA 아카데미 시즌2 현장 취재 자료와 메모. 기록은 현장에서 시작된다.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이날 신학철은 화창한 언변도, 거창한 예술론도 없었다. 앞서 유홍준은 신학철을 두고 "뼛속까지 농민"이라 했다. 그 말이 이날 밤 무대 위에서 그대로 증명됐다. 꾸밈없이, 진솔하게. 이 시대를 함께 살아온 작가로서의 이야기. 이것이 동시대를 기록하는 같은 작가로서의 시선이 아닌가 한다.

내가 그냥 그리는 거, 편하게 그리는 게 점점 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참 따뜻한 밤이었다.

▲ 신학철 작가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2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신학철 작가와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아카데미 시즌2 현장.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MMCA 현장기록 ④ - 오늘의 한 문장]

"진짜 고향은 고조선이 아닌가."

- 신학철

글·취재·사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Gree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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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5편 예고

다음 5강은 5월 27일(수). MMCA 아카데미 시즌2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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