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연작.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소개된 작품으로, 민중의 체온을 다룬 작품. 한인물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과 삶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낸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 MMCA 아카데미 시즌2 ‘대담 & 청중과의 대화’ 순서.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민중미술의 역사적 위치와 리얼리즘, 검열, 동시대적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 비평가의 기억, 1980년대를 호출하다
5월 13일 저녁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원공간.
강연자가 달랐다. 오늘 무대에 오른 사람은 연구자도, 해설자도 아니었다. 1980년대를 직접 지나온 증언자였다.
무대에 선 사람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한국 미술계에서 40년을 비평가로 살아온 사람이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나의 체험적 1980년대 민중미술의 증언."
증언. 강연이 아니라 증언이었다.
▲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그는 오래된 동료를 소개하듯 말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과 시대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그는 오랜 친구를 소개하듯 말했다. 임옥상, 오윤, 신학철, 이종구, 강요배, 황재형. 같은 시대, 같은 공기를 마신 사람들. 그리고 선언했다.
"난 비평적으로 쓰겠다. 민중미술의 사건 속에 난 빠진 적이 없었다."
■ 잠깐 — 민중미술이 뭔데?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시대적 맥락과 당시 검열·오해 속에 놓였던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무값 파동 시 그렸던 작품”이라는 슬라이드 문구가 당시 한국 사회와 미술의 긴장 관계를 환기시켰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 “너의 고통을 내가 어쩔 수 없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 작품과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평범한 삶의 장면이었던 그림들은 당시 사회 속에서 검열과 오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1980년대 한국. 어떤 작가들이 농촌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광부의 땀을 새기고, 어머니의 등을 화폭에 담았다. 지금 보면 그냥 우리 주변의 평범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 시대는 그 그림들에 딱지를 붙였다. 불온하다고. 위험하다고. 전시를 막고, 작가를 끌고 갔다.
민중미술이란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짓밟혔다.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시대가 문제였다.
■ 1980년 이전 — 그 시대가 어땠길래
민중미술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태어난 토양을 먼저 봐야 한다.
1969년 삼선개헌. 1972년 유신헌법. 1974년 긴급조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농업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도시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국민소득은 올랐지만 삶은 팍팍했다.
그 시절 한국 미술계는 어땠나. 미술대학은 사실주의·추상미술·동양화 중심이었고, 국전은 아카데미즘의 벽이 높았다. 1975년 미술사학자 김윤수가 선언했다. "리얼리즘 미술이 없다." 이 한마디가 씨앗이 됐다.
1980년, 현실과발언(현발)이 출범했다. 기존 아카데미즘과 제도권 미술의 문법을 거부하고 현실 참여적 리얼리즘을 지향한 작가 집단이었다.
■ 리얼리즘? 쉽게 말하면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다.
유홍준은 이날 명확히 정의했다.
"리얼리즘은 기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세계관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세상이 이렇게 생겼다고 그리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그리는 것. 그것이 리얼리즘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가 1980년대 한국에서는 위험한 것이 됐다.
임옥상(1950~) 은 리얼리즘과 상징미술을 넘나든 작가다. 〈보리밭〉은 상징미술이었고, 〈땅〉 연작의 강렬한 붉은 대지는 시대의 압박을 그대로 담았다. 〈아프리카 현대사 1부〉는 2000×150cm 대작. 인사동에 단 한 번 전시되고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이라 말하였다.
오윤(1946~1986) 은 목판화로 시대를 새긴 작가다. 〈애비와 아들〉, 〈무호도〉, 〈춤〉, 〈원귀도〉. 민중의 삶과 민속적 에너지를 강렬한 선으로 표현했다. 1986년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장에서 이애주의 춤이 그를 배웅했다. 유홍준은 그 묘 사진 앞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신학철(1943~) 의 〈모내기〉(원작 1987)는 지금 보면 농촌의 평범한 일상이다. 모내기하는 사람들, 소, 들판. 근데 당시엔 북한 찬양 그림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시대가 그림을 재단했다. 유홍준은 이날 민중미술을 둘러싼 검열과 오독의 사례로 이 작품을 언급했다.〈한국근대사〉 연작은 높이 390cm의 대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 푸대자루에 동네 사람들을 담아낸 작가, 이종구. 농촌의 얼굴과 삶을 화면으로 옮긴 그의 인물화는 1980년대 한국 현실의 기록이 되었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소개한 이종구 작품 슬라이드. 이종구는 쌀포대를 캔버스 삼아 농촌 사람들의 얼굴과 시대의 풍경을 기록했다. 는 실제 인물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도 알려져 있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이종구(1954~) 는 인물화를 가장 잘 그린 작가로 꼽힌다. 쌀포대를 화면 삼아 농촌 사람들의 얼굴을 담았다. 〈황복할머니〉는 그림 속 할머니를 직접 모셔와 함께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푸대자루에 동네 모든 사람들을 담았던 작가.
▲ 강요배 〈호박꽃〉(1992).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 중 소개된 작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작품에서 80년대 리얼리즘의 감각과 생명성을 읽어냈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강요배 의 〈호박꽃〉(1992) 앞에서 에피소드가 나왔다. 유홍준이 물었다. "너는 왜 숫꽃만 그리냐?" 강요배가 답했다. "암꽃이 펴야 보고 그리지." 강연장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무거운 역사 한가운데 그런 순간이 있었다. 유홍준은 덧붙였다. "싱싱함, 굳건함. 80년대 리얼리즘을 표현한 상징적 그림이 아닌가?"
▲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연작.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소개된 작품으로, 민중의 체온을 다룬 작품. 한인물의 얼굴에 새겨진 시간과 삶의 흔적을 강하게 드러낸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황재형 은 탄광촌에 직접 들어가 광부들의 삶을 그린 작가다. 〈식시〉(1985). 어둠 속 광부들이 서로의 헬멧 불빛을 비춰주며 밥을 먹는 장면. 유홍준은 그의 작품 앞에서 말했다. "그림이 사진보다 위대하다."
▲ 황재형 작품 슬라이드. 어둠의 노동 현장과 광부들의 삶을 화면에 담아낸 그의 작업은 1980년대 현실참여 미술의 한 축으로 언급됐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 1985년 - 경찰이 그림을 검열하다
1985년, 민중미술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경찰이 민중미술 전시에 첫 제재를 가했다. 신문 1면에 실렸다. "警察, 民衆미술에 첫制裁." 전시는 폐쇄됐고, 작가들은 끌려갔다. 그들은 그냥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 1985년 〈힘〉 전 관련 신문기사와 전시 포스터.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민중미술 제재의 역사적 사례로 소개됐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1985년 〈힘〉 전. 한국미술 20대의 힘을 모은 전시였다. 그 전시 폐쇄 장면 사진이 슬라이드에 떴을 때 강연장이 조용해졌다.
■ 기자의 눈
황재형의 광부들이 서로의 불빛을 비춰주는 장면 앞에서 강연장이 조용해졌다.
▲ MMCA 아카데미 시즌2 강연에서 소개된 민중미술 작품 이미지. 1980년대 현실참여 미술의 다양한 시선과 표현 방식이 함께 언급됐다. ⓒ엄미영미술전문기자
작가들은 그냥 그림을 그렸다. 농촌의 일상을, 광부의 땀을, 어머니의 등을. 그런데 시대가 그 그림에 딱지를 붙였다. 끌려가고, 전시가 막히고, 작품이 묻혔다.
지금 우리가 그 그림들 앞에서 뭉클한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 없음은 시대를 건넜다. 1980년대 광부의 불빛은 2026년 MMCA
다원공간에서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붓을 드는 사람이라면, 캔버스 앞에 서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림 한 장을 오래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_이 강연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유홍준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20세기 세계미술사의 사각지대로 버려졌던 것들이
이제 당당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검열됐고, 폐쇄됐고, 때로는 왜곡됐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20세기 한국 사회가 밀어냈던 이미지들은 결국 미술사의 한 장면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예술의 생존 방식인지도 모른다.
■ 다음 4편 예고
다음 4편에서는 오늘의 강연 속 이름 하나를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신학철. 그저 농촌의 일상을 그렸을 뿐인데, 시대는 왜 그의 그림에 다른 이름을 붙였을까.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