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저녁 7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원공간. 이번 2회는 강연이 아니었다. 형식 자체가 달랐다. 무대 위 두 개의 소파, 마주 앉은 두 사람. 미술가 이건용과 미술사학자 조수진 이화여대 교수의 1대1 대담이었다. 사회는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맡았다.
이건용은 1944년생. 올해 82세다.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단체 ST(Space & Time 조형미술학회)의 창립자이자, 몸으로 그리는 행위미술 〈신체 드로잉〉 시리즈로 한국 현대미술사에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작가다.
이건용(왼쪽)·조수진(오른쪽) 대담 현장 -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1963년의 일기 _ 20세 청년의 질문
대담은 뜻밖의 자료에서 시작됐다. 스크린에 손으로 빽빽하게 쓴 일기가 떴다. 1963년 6월 6일자. 이건용이 만 19세에 쓴 〈피로의 스켓취〉다.
"그렸다. 과연 너는 그렸을까?" "너는 알고 있니.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해방, 전쟁, 분단, 군사쿠데타를 모두 겪은 청년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물음은 단순한 10대의 고민이 아니었다. 이후 60년 작업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근원적 질문이었다.
스크린에 투영된 〈피로의 스켓취〉(1963년 6월 6일자 일기) 원본 _ 이건용·조수진 두 분이 아래 앉아있는 장면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쉽게 말하면 이렇다. 이건용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무엇인지 묻는 작가’였다.
■ 나무를 통째로 전시장에 _ 〈신체항〉(1971)
1971년 이건용은 흙에 뿌리 내린 나무를 지층째 뽑아 전시장으로 옮겼다. 작품명은 〈신체항(身體項)〉. 제8회 한국미술협회전,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전시장이었다.
왜 나무인가. 나무는 살아있는 신체다. 뿌리와 흙, 줄기가 하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건용은 이 자연물 자체를 '신체'로 정의했다. 미술에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오랜 관습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 소장돼 있다. 작가가 직접 기증했다.
[사진4] 스크린 _ 〈신체항〉 시리즈(1971) 흑백 사진 3컷. 경복궁 전시장 설치 현장 및 작가와 함께한 모습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천으로 그린 회화 _〈포(布)〉(1974)
1974년 이건용은 또 다른 실험을 했다. 군청색, 주황, 녹, 청 천을 벽에 걸었다. 〈포(布)〉 시리즈다.
이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그림이 아니다. 천 자체가 작품이다. 당시 이건용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회화란 무엇인가? 그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스스로 답했다. "회화의 본질은 일루전(환영)에 있다."
쉽게 말하면 -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실제로 보는 건 물감과 캔버스인데, 우리는 그것을 '그림'이라고 믿는다. 이건용은 바로 그 믿음, 즉 환영 자체를 질문한 것이다.
스크린 -〈포(布)-주황, 녹, 청〉(1974) 두 슬라이드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스크린 - 〈포(布)-군청색 A,B,C〉(1974)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몸으로 그린다 _〈신체 드로잉〉(1976)
1976년, 이건용은 마침내 자신만의 언어를 완성했다. 〈신체 드로잉 76-1(뒤에서)〉. 벽을 등지고 선 채 뒤로 손을 뻗어 선을 긋는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방향으로. 그 결과물이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간단하다. 보통 그림은 작가가 화면을 눈으로 바라보며 그린다. 이건용은 그 상식을 뒤집었다. 신체가 지각자이면서 동시에 표현자가 된다. 그리기와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퍼포먼스 과정 사진을 찍은 이는 다름 아닌 성능경이다. 실험미술
동료들의 연대가 그대로 담긴 기록이다.
스크린 - 〈신체 드로잉 76-5 (다리 사이로 선 긋기)〉(1976)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신체 드로잉 76-1(뒤에서)〉(1976) 퍼포먼스 연속 사진 및 결과물. 촬영: 성능경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달팽이처럼 _ 〈달팽이 걸음〉(1979)
이건용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1979년 남계화랑 〈이건용 드로잉 이벤트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온몸을 낮춰 바닥을 기듯 천천히 이동하며 선을 긋는다. 그리기와 지우기가 동시에 일어난다.
(1979) 상파울루 비엔날레 전시 및 가서 직접 현장에서 준비한 작품설명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같은 해 이건용은 이 작품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무대에서 펼쳤다. 대담 중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신체만 있으면 되니까. 가서 직접 그렸다."
작품 운반도, 설치도 필요 없다. 몸 하나면 됐다. 그것이 이건용의 미술이었다.
스크린 -〈달팽이 걸음〉(1979) 남계화랑 퍼포먼스 흑백 사진 3컷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AI 시대에 던진 마지막 선언
대담 말미, 조수진 교수가 물었다. "AI 디지털 시대에 이건용의 art는 개념미술로서 어떤 의미인가?"
이건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인간은 감자이고, 이차원은 인간이다. AI는 반복적이고, 감재이고, 대자하다. 오차가 생길 수 있다. 난 다 인정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 AI로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마지막 말을 했다."
82세 거장의 선언이었다. 객석은 조용해졌다.
이건용 작가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서 발언하는 장면 — MMCA 로고와 함께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뜻밖의 인연 _ 1975년 대전역에서 2026년 서울까지
대담이 끝난 후 기자는 이건용 작가에게 다가갔다. 대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화가 정장직을 아느냐고 물었다. 작가의 얼굴이 환해졌다.
기자의 명함에 직접 "정장직"이라고 써주며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 만남이 가능했던 것은 기자가 작가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만이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다. 미술은 결국 작가와 작가 사이에서 이어진다.
정장직 작가가 보내준 구겐하임 도록 《Only the Young》과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53페이지에는 1975년 대전역에서 이건용·정장직이 함께한 퍼포먼스 사진이 담겨 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공교롭게도 2023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발행한 도록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53페이지에는 1975년 대전역 광장에서 이건용과 정장직이 나란히 앉아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사실은 정장직 작가가 직접 도록을 펼쳐 기자에게 전해주었다. 50년 전 대전역 광장의 두 청년. 그 사진은 반세기가 지나 뉴욕 구겐하임 도록에 실렸고, 2026년 봄 서울에서 다시 이어졌다.
정장직 화백이 보내준 구겐하임 도록 《Only the Young》과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두 권. 53페이지에는 1975년 대전역광장에서 이건용·정장직이 함께한 퍼포먼스 사진이 담겨있다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 기자의 눈
이건용의 작업은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몸으로 말했다. 뒤로 손을 뻗어 선을 긋고,
바닥을 기며 흔적을 남겼다. 그 단순한 행위 안에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이 담겨 있다.
이날 기자는 단순히 취재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작가로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19세 청년이 일기에 남긴 "과연 너는 그렸을까"라는 질문은, 지금도 붓을 드는 모든 작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건용 작가가 기자에게 건넨 자료집에 남긴 자필 서명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에, 82세의 작가는 말했다. "신체만 있으면 된다."
이 한 문장이 이날 밤 다원공간에서 가장 강렬한 작품이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오늘 꽤 값진 것을 얻었다. 19세 청년의 질문, 82세 거장의 선언, 그리고 50년을 건너온 두 작가의 인연.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교과서를 펼치지 않아도 한국 실험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를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