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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ocus] ‘소멸’을 거슬러 ‘영원’을 칠하다… 장국철의 캔버스는 왜 ‘기억의 저장고’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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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철 작가 ⓒ 퍼블릭뉴스통신
장국철 작가 ⓒ 퍼블릭뉴스통신

강원도 속초의 작업실, 그곳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Stillness)이 흐르고 있었다. 캔버스 위로 시선을 옮기자 가장 먼저 에디터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낡은 대나무 바구니의 틈새였다. 대나무 살이 엮이며 만들어낸 그림자와, 그 옆에 놓인 무쇠 다리미의 묵직한 질감은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아니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초현실적 실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장국철 작가의 작품 세계는 ‘본다는 것’과 ‘만진다는 것’의 경계를 허문다. 30여 년간 강원예술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그는, 이제 계급장을 떼고 온전히 ‘화가 장국철’로서 캔버스 앞에 섰다. 본지는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민속 기물들이 단순한 정물(Still Life)이 아닌, 한국적 미의식의 원형이자 ‘기억의 아카이브’임을 주목하며 그의 조형 세계를 심층 진단했다.

◇ Aesthetic & Technique: ‘마티에르(Matière)’로 구현한 시간의 퇴적층

장국철 작가의 기법은 흔히 ‘극사실주의(Hyperrealism)’로 분류되지만, 미학적 층위에서 보면 이는 단순히 대상을 복제하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선다. 보내온 작품 자료 중 [청자와 돌] 연작을 보면, 매끄럽게 유약을 바른 청자의 표면광(Gloss)과 그 옆에 놓인 자연석의 거친 입자감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는 작가가 서로 다른 ‘물성(Materiality)’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정-2022-2-2022-oil on canvas-10호   [작품= 장국철 작가 ]
정-2022-2-2022-oil on canvas-10호   [작품= 장국철 작가 ]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구사하는 ‘파티나(Patina, 고색창연함)’의 미학이다. [Image 10]의 낡은 트렁크나 [Image 5]의 검은 항아리 표면을 보라. 그는 새것의 매끈함이 아닌, 세월의 풍파에 깎이고 산화된 흔적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붓끝으로 쌓아 올린 물감의 층위는 마치 시간의 퇴적층처럼 작용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캔버스에서 묵은 나무 냄새와 차가운 쇠 냄새를 환기시킨다. 이는 “기억은 과거를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기법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명징한 증거다.

◇ Market Trend & Context: 디지털 시대, 왜 컬렉터는 ‘아날로그’를 탐닉하는가

2024~2025년 글로벌 아트 마켓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물성의 귀환’이다. NFT와 미디어 아트가 범람하던 시기를 지나, 컬렉터들은 다시금 캔버스가 주는 묵직한 질감과 ‘손맛’을 찾기 시작했다. 장국철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시장의 니즈(Needs)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정-2006-5-oil on canvas-10호(좌) 정-담다 2023-oil on canvas-10호(우)  [작품= 장국철 작가 ]
정-2006-5-oil on canvas-10호(좌) 정-담다 2023-oil on canvas-10호(우)  [작품= 장국철 작가 ]

MZ세대 컬렉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빈티지 오브제’ 수집 열풍이나 ‘할매니얼’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피로도에 대한 반작용이자,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다. 장국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색동저고리, 놋그릇, 다듬이 방망이는 한국인의 DNA에 각인된 원형적 ‘향수(Nostalgia)’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촌스러운 회귀가 아니다. 현대적인 조명 연출과 과감한 ‘여백(Negative Space)’의 활용은 이 오래된 기물들을 세련된 현대 미술의 오브제로 격상시킨다.

◇ Philosophy & Narrative: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존중의 시선

“작업실에 있는 낡은 물건들이 서로 재잘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인터뷰 중 작가가 건넨 이 말은 그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그는 인사동 골목이나 길거리에서 수집한 낡은 물건들을 단순한 피사체(Subject)가 아닌 ‘대화의 파트너’로 대우한다. 커다란 독과 그 위에 무심하게 걸쳐진 오방색 천의 조화는 작가가 사물 하나하나의 위치와 관계성을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이야기-2022-2-oil on canvas-50호  [작품= 장국철 작가 ]
지난이야기-2022-2-oil on canvas-50호  [작품= 장국철 작가 ]

그는 화려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잊혀가는 것들, 박물관 유리장 안에 갇히지 못한 생활 속의 기물들을 캔버스라는 무대 위로 소환해 ‘주연’의 자리를 내어준다. 이는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연민이자, 그들이 지닌 역사성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헌사(Tribute)’다. 그의 그림이 편안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대상에 대한 이러한 존중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 Insight & Future: 지역 미술 생태계를 위한 원로의 제언

장국철 작가의 시선은 캔버스 밖으로도 확장된다. 그는 “재능은 있으나 경제적 여건이 부족한 작가들을 위한 공공 전시 공간 지원”을 강력히 주창한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 갤러리 위주로 편중된 한국 미술 시장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뼈 있는 제언이다.

속초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내년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 참여를 준비 중인 그의 행보는 ‘로컬 아트(Local Art)’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예술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며, 가장 지역적인 소재(민속품)가 가장 세계적인 미감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몸소 증명하고 있다.

[Editor’s Note] 장국철의 캔버스는 ‘기억의 저장고’다. 그가 붓으로 박제한 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정(情)’이라는 이름의 텍스처다.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그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따뜻한 쉼’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장국철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이자,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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