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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에서 비움으로… 조각가 김대성이 빚어낸 찬란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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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에서 비움으로… 조각가 김대성이 빚어낸 찬란한 여정

[한국미술신문=김승현 기자]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터널을 지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와 30대의 청년기는 누구에게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뇌로 가득 찬 암울한 시기다. 차가운 조각에 생동감을 채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무는 '조각의 스토리텔러'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조각가 김대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짓누르던 삶의 무게와 결핍을 외면하는 대신, 조각이라는 날카로운 칼날로 정면 돌파해 왔다. 그의 화려하고 에너지 넘치는 현재 작품들의 뿌리에는, 과거 그가 치열하게 통과해 온 고뇌의 시간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 조각가 김대성의 인생 여정과 그가 작품 속에 녹여낸 예술 철학을 깊이 있게 조명해 본다.

김대성 조각가
김대성 조각가

청년기 김대성의 초현실주의적 고뇌와 도피의 갈망

김대성 작가의 초기 예술 세계는 '초현실주의'라는 무거운 외투를 입고 있었다. 1999년과 2001년 인사동 경인미술관 초대전 등 그가 20대에 선보였던 초창기 작품들은 대단히 긴장되어 있고 불안한 정서를 뿜어낸다. 화면 속 형상들은 어느 하나 안정되게 서 있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거나 어디론가 날아가려 한다. 당시 그를 지배했던 감정은 죽음, 사후 세계, 그리고 끝없는 공간 속에서 헤매는 '몽상'이었다.

사실 조각가로서의 길은 그의 역동적인 기질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예술고등학교 시절, 그는 캔버스 앞에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는 행위보다 온몸을 사용하며 재료와 직접 부딪치는 조각의 육체 노동적 성격에 깊이 매료되었다. 사방을 돌아가며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입체 작업의 매력은 그를 평생 조각의 길로 이끌었으며, 훗날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는 '매너리즘'에 저항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역동적인 기질 이면에는 깊은 그늘도 존재했다. 그는 유년 시절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심리적 결핍을 안고 있었고, 좁은 방에서 가위에 눌릴 때마다 끝없이 펼쳐지는 기괴한 공간의 공포를 경험했다. 이 시기의 여인상들은 부모의 사랑에 대한 갈구이자 결핍의 표현이었고, 공중에 뜬 형상들은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싶었던 청년 김대성의 절박한 '도피의 욕망'이었다. 당시의 작업은 그야말로 치열한 고뇌의 탄생물이었으며,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사색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거울 속 나를 마주하다

현실을 도피하고자 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2000년대 초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계기는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에 찾아왔다. 작업실 거울 앞에 선 그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했다. '내가 이러려고, 버티려고 작업하는 것이 아닌데'라는 깊은 회의감이 그를 엄습했다.

괴로움과 어둠을 토해내던 예술에서 벗어나, 내가 가장 즐거웠을 때가 언제였는지 되짚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은 예고 시절 처음 미술을 시작하며 '색채'가 주는 짜릿한 쾌감에 전율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조형적인 형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회화적인 색채를 집어넣겠다는 다짐이 서면서 그의 '정물 시리즈' 1호가 탄생했다. 과감한 생략을 통해 손끝의 강렬한 느낌만 남기고 나머지는 덜어내는 등, 그의 조각은 점차 무거운 서사에서 벗어나 회화성을 입기 시작했다.

터널을 지나 외연을 넓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김대성은 어두운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와 거침없는 도전의 시기로 진입했다. 2006년을 전후로 그는 추상적인 조형미를 시도하는가 하면, 조각 내부에 조명을 장치하여 사람의 그림자를 표현하는 등 작품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혔다. 과거의 정물이 단순한 형태적 변주였다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보는 이에게 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2013년 무렵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미학에 깊이 매료되었다. 민화의 색채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상여를 장식하는 화려한 '꽃상여'의 장식미를 조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오방색의 강렬한 컬러와 전통적인 생동감은 그의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덜어냄'으로써 도달한 명징한 세계

현재 김대성의 조각은 초창기의 어두운 몽상과는 전혀 다른 궤도에 있다. 그러나 그의 현재 스타일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끊임없는 '비움과 덜어냄'의 결과물이다. 그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그림자'를 사랑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복잡한 형태와 내러티브를 지우고, 오직 핵심적인 포인트와 명확한 색채만을 남겨두는 방식은 그가 오랜 방황 끝에 도달한 예술적 정착지다.

그의 머릿속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입체 작품에는 20대부터 해온 오만가지 상상과 고뇌의 편린들이 여전히 녹아 있다. 단지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유연하고 밝아졌을 뿐이다. "20대, 30대, 40대가 겪는 고민은 누구나 똑같다. 나는 예술가이기에 그것이 작품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의 조각은 곧 평범한 인간 김대성이 시대를 살아내며 성숙해간 인생의 기록 장부와도 같다.

내년 1월로 예정된 '2027 국제조각페스타'를 비롯해 오는 8월 뱅크아트페어, 10월 개인전 등 굵직한 전시를 앞두고 그는 다시금 신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랜만에 빛바랜 초창기 개인전 팜플렛을 들쳐보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미소 짓는 김대성 조각가. 암울한 터널을 뚫고 나와 찬란한 색채의 세계를 구축한 그의 조각 예술이 향후 어떤 비움의 미학으로 향할지,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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