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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훈, 50년의 붓끝으로 다시 처음에 서다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사실에서 추상으로, 15년의 변화가 만든 새로운 동양화

작품 설명 중인 주훈 작가 (사진.강혜영)
작품 설명 중인 주훈 작가 (사진.강혜영)

50년 작업 끝에 ‘다시 시작’을 선택한 한 동양 화가의 결심

경주에 머무르며 한국의 풍경과 정서를 화폭에 담아낸 주훈 작가를 만났다. 첫인상은 작품과 닮아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처럼, 그의 말과 태도 역시 차분하고 다정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쌓아온 고민과, 스스로를 뒤엎는 선택이 있었다.

 주훈(ZhuXun), 도원몽, 162cmX450cm, 2026
 주훈(ZhuXun), 도원몽, 162cmX450cm, 2026

"제가 느낀 경주는 무릉도원이었습니다. 특정 장소를 재현했다기 보다는 경주와 주변을 다니며 제가 본 여러 마을 풍경에서 받은 인상을 하나의 화면에 담은 것입니다. 실용적인 지도가 아니라, 작가로서 느낀 풍경에 대한 인상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 중인 주훈 작가(사진. 강혜영)
작품에 대한 설명 중인 주훈 작가(사진. 강혜영)

50년 작업, 15년 전부터 시작된 변화의 여정

주훈 작가는 자신의 작업 인생을 담담히 풀어냈다. “작품을 거의 50년 가까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달라진 건 15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가 오랜 시간 몸담아온 중국이라는 환경은 자유로운 예술 실험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연, 사회, 그리고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작업은 자연스럽게 ‘사실성’과 ‘기술’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테크닉이나 실경, 사실적인 것을 많이 원합니다. 저도 그 영향을 받았죠"

김홍신 작가의 삽화 작업을 맡았던 주훈 작가 (제공. 주훈작가)
김홍신 작가의 삽화 작업을 맡았던 주훈 작가 (제공. 주훈작가)

그러던 중 약 10여 년 전, 한 계기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느 날, 한 컬렉터로부터 제 작품에는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한 마디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제 작품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 순간에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미 제 안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꽤 고통스러웠죠. 지금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방황했습니다.

"변화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색'입니다. 단순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 훈이라는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을 유지하는 것이 작가로서 목적해야 하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수정이 아니었다. 기존의 작업 방식을 과감히 내려놓는 선택이었다. 

 주훈(ZhuXun), 연화유월(Lotus in Jun No.6), 80.3cmX116.8cm, 2026
 주훈(ZhuXun), 연화유월(Lotus in Jun No.6), 80.3cmX116.8cm, 2026

한국에서 본 충격… 표현의 자유

변화의 계기에는 한국에서의 경험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을 다니면서 작가들이 표현하는 방식, 소재의 다양함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굉장히 개방적이더라고요. 기존에 제가 취하던 전통 방식으로도 충분히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화가로서 이대로 안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상하이 인근 소주(쑤저우)에 작업실을 두고 있지만, 한국을 오가며 작업의 방향을 확장해왔다. 그 결과, 기존의 사실 중심 작업에서 벗어나 점차 추상적 표현으로 나아가게 된다.

주훈(ZhuXun), 연화유월(Lotus in Jun No.4), 2026 (사진.강혜영)
주훈(ZhuXun), 연화유월(Lotus in Jun No.4), 2026 (사진.강혜영)

연꽃이지만, 연꽃이 아니다

연못, 연꽃, 물결—익숙한 소재지만 화면은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연꽃을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꽃잎이나 물결, 물방울 같은 요소를 다시 재구성합니다. 그래서 꽃 같으면서도 아니고, 그렇지만 연못의 느낌은 남아 있는 그런 작업입니다.”

눈 앞의 이미지가 추상으로 재 구성된 작품 앞에서 관람자는 구체적인 형상을 찾기보다, ‘느낌’을 따라가게 된다.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서양식 표현과 동양적 사고의 혼합

그의 작업에는 독특한 혼합이 있다. 

“표현 방식은 서양화적인데, 재료는 동양화입니다. 먹, 한지 같은 것들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의 철학을 담다보니, 자연스럽게 먹을 사용하게 되면서 동양화 재료로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양적 구성과 동양적 질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화면이 만들어졌다.

"동양화는 철학입니다. 주로 서양화는 꽉 차 있지만, 동양화는 여백이 존재하죠.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숨 쉴 틈이기도 합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기 보다는 일부러 비워두고, 그 자리에 관람자의 해석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합니다. 저의 그림은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여지를 남겨둡니다."

작품 설명 중인 주훈 작가 (사진.강혜영)
작품 설명 중인 주훈 작가 (사진.강혜영)

가장 높은 예술은 단순함

인터뷰 내내 반복된 그의 핵심 철학은 ‘단순함’이었다.  

“가장 격조 있는 예술은 단순입니다. 복잡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핵심만 남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더 간소하고, 더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을 제 작업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전시전경 (사진.강혜영)

한옥, 호작도… 한국을 다시 해석하다

가장 단순하게, 핵심 만을 남기며 '한국적임'을 유지한다. 한옥을 한옥으로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만을 남긴다. 단순해보이지만, 작가의 진중한 고민이 굵직한 선에 담긴다. 

“한옥을 그릴 때 모든 것을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대들보와 기둥만 있어도 한옥의 느낌은 살아납니다.”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삼천리 금수강산을 그리고 싶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활동해왔으나, 그 뿌리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강원도부터 여수, 제주까지 다니면서 삼천리 금수강산의 인상을 하나의 화면에 담고 싶습니다. 제 작품을 보는 관람자가 산책하듯 따라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걸으며 본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국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그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다. 50년의 시간 끝에, 그는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전시 전경 (사진. 강혜영)

29일까지 도산대로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주훈 작가와 오묘초 작가의 콜라보 전시인 《경계 너머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주훈 작가는 자연을 탐색하면서 형상을 너머 자연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추상화에 담았다. 작가 선사하는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피곤한 생활 속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무릉도원 같은 아름답고 평안한 이상세계를 즐겨보기 바란다. 

전시포스터 (제공. 프로젝트 스페이스)
전시포스터 (제공. 프로젝트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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