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담의 '다시 돌아온 편지' 35년 만의 귀환과 안착
- 김수근의 가학적 폐쇄성, 예술로 허물을 벗다
건축가 김수근이 발주처의 은밀한 요구에 따라 철저히 '고립'과 '공포'를 목적으로 설계했던 검은 벽돌 건물,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나의 거대한 봉인이 해제되었다. 인간의 존엄을 옥죄던 그 가학적 폐쇄성이 이제 '민주화운동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허물을 벗고, 홍성담 작가의 독일 유배 작품 <다시 돌아온 편지>를 품에 안은 것이다.
필자는 이날 전시를 위해 22일 부산에서 아침 7시 40분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정오 무렵 목포에서 올라온 작품들과 합류해 본격적인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몸살 기운이 급격히 악화되더니, 이튿날 아침에는 도저히 움직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단순한 과로였을까, 아니면 이 공간 특유의 음습한 기운 때문이었을까. 혹은 작품들이 뿜어내는 역사의 무게감에 압도된 것일까. 결국 인근 병원에서 주사와 약의 힘을 빌려 간신히 설치를 마쳐야 했다. 수많은 현장을 경험해온 기획자로서도 이번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며 고통스럽게 설치를 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 공간의 가학적 폐쇄성을 허물기 위해 치러야 했던 작은 통과의례였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35년의 유랑, 그리고 역사적 회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엄혹했던 시절 구명 운동과 후원을 위해 독일로 반출되었던 판화 작품들이 35년이라는 긴 유랑 끝에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난 9월, 독일에서 도착한 나무 상자 세 개가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처음 열리던 순간의 전율을 나는 기억한다.
특히 1989년 당시 광주 외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홍성담의 판화가 전시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첫선을 보인 것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역사적 회귀'였다. 홍성담 작가를 비롯해 신용철 전 부산민주공원 학예실장, 정면 전 부산가톨릭센터 기획실장 등 부산의 현장을 지켜온 기획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첫 번째 과제 역시, 이 역사의 층위를 어떻게 두텁게 쌓아 올릴 것인가 하는 점이였을 것이다.
역시 신용철, 정면 두 선배는 베테랑이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아온 내공은 이번 전시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낸 결과, 현장에는 작품 배치뿐만 아니라 근대 유산에 가까운 오래된 소품과 과거의 포스터 등 귀중한 기록물들이 짜임새 있게 채워졌다. 이번 전시를 성사 시키기 위해 쏟은 선배들의 노력과 열정에 다시 한번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홍성담 다시돌아온 편지 작품 박스 개봉행사 영상 2025년 9월 27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있었다.
독일에서 보낸 작품 박스 개봉 영상 2025년 9월 27일 부산 가톨릭센터
고통을 설계한 공간, 고통을 승화한 예술의 만남
부산과 울산을 거쳐 마침내 서울에 상륙한 이 작품들이 안착한 곳은 다름 아닌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었습니다. 이곳은 홍성담 작가가 1980년대 직접 겪어야 했던 참혹한 고문과 비명의 기억이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영화 <1987>로도 잘 알려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의 현장이다. 당시 경찰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내놓았던 바로 그 비극의 장소이다.
홍성담 작가를 비롯 민주인사들이 젊은 날 탄압받았던 고통의 시간들과 공간이 35년이 흐른 지금, 그의 예술을 오롯이 품어내는 전시장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은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아이러니이다. 권력의 은밀한 요구에 따라 고통을 설계했던 폭력의 공간과,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만남은 예술이 시대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하는지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홍성담작가는 장소적 상징성을 극대화하고자 '국가 폭력'을 주제로 한 신작 2점을 새롭게 제작해 전시하였다. 물고문과 칠성판 고문을 직관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들은 실제 고문의 현장이었던 이곳에서 관람객들과 마주하며, 예술가의 치열했던 삶과 우리 민주화 운동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