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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의 몸들 ― 박정은의 《Afterm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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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로드아일랜드주 포투켓(Pawtucket)에 있는 전시 공간 Machines with Magnets에서 묵직한 주제의 전시 《Aftermath》가 열렸다. ‘여파’를 뜻하는 제목처럼, 되돌릴 수 없는 사건 이후에 남겨지는 몸과 감각들을 다루는 이번 전시는 리즈디(RISD)를 졸업한 작가 박정은이 기획한 4인전으로, 작가 본인과 캐리 카우츠(Carrie Kouts), 마하 모한(Maha Mohan), 나홈 게브레딩글(Nahom Ghebredngl)이 함께한다. 작가 박정은을 만나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정은 작가 (제공. 박정은)
박정은 작가 (제공. 박정은)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리와 도자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 박정은입니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거나 외면되는 몸과 생명의 흔적을 성찰적인 오브제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이번 전시 《Aftermath》에서는 참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공식적인 큐레이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Aftermath는 어떤 전시인가요?

‘Aftermath’는 한국어로 ‘여파’라는 뜻인데요, 이 전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의 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탄생, 노화, 죽음, 부상 등의 순간을 지난 뒤에도 남아 있는 몸의 상태를 바라보려는 시도예요. 참여 작가 네 명 모두 인간과 비인간의 몸, 버려지거나 외면된 물질,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감각들을 다룹니다. 작품들에는 차에 치여 죽은 사슴,버려진 가구, 인간에게 무자비하게 밟혀 죽은 중국매미, 생활 쓰레기와 음식물처럼 죽음이나 폐기 이후, 기능을 상실한 채 남겨진 대상들이 중요한 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몸에서 나와 버려지는 태반과 탯줄, 자궁 내막 등을 썩지 않는 유리로 재구성했습니다. 작품들은 죽임당하고 버려지고 잊히는 몸들을 통해 인간 중심적으로, 오직 효용성에 의해 결정되는 생명과 사물의 가치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 전시는 따로 개별 작품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데요. 설명보다 작품 자체에 시선을 둘 때, 관객이 스스로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이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온 일상의 장면들을 다시 바라보며, 삶과 윤리에 대해 각자의 질문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다가 작가로서 큐레이팅을 시도하시게 되었나요?

2018년부터 여러 전시에 참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참여자의 위치에서는 개입할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특히 작품 간의 의미적 연결이나 시각적 개연성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서, 언젠가 직접 전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 어떤 작품 옆에 있을 때 더 살아나는지, 어떤 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놓여야 효과적인지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제가 가장 신뢰하는 작가 친구들과 함께, 제가 해보고 싶었던 방식의 전시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열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전시를 열어야 했던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RISD의 다용도 전시 공간인 Tillinghast Place에서 《Chalice of Beings》라는 이름의 전시를 먼저 기획하게 되었어요.

당시가 논문 마감 시즌이라 저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 대부분의 작업이 아직 제작 중인 상태였는데, 그냥 그 상태 그대로 가져와서 꾸밈없이 전시를 열었어요. 페인트 자국이 가득한 접이식 테이블 위에 동네슈퍼에서 사 온 감자칩과 과일, 햄, 맥주와 음료수를 늘어놓고 사람들을 초대했고, 학교에서 빌린 작업용 스피커로 디제이들을 불러서 음악을 틀면서 신나게 춤추고 마시며 논문 기간의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그렇게 전시를 마치고 나니, ‘이게 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경험이 저에게 나도 멋진 전시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를 주었어요. 사실 이 전시는 여러 전시 공간에 전시 제안 메일을 보냈지만, 답신이 없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학교 공간을 빌려 진행했던 건데, 이후 Machines with Magnets 공간 측에서 전시 주제에 관심을 보이며 다음 해 전시를 제안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네 명의 작가가 다시 모여 약 9개월 뒤에 열게 된 전시가 바로 이 전시, 《Aftermath》입니다.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시간과 책임의 무게를 새롭게 체감했던 것 같아요. 작가로 참여할 때는 일정이 조금 밀려도 개인의 문제로 남지만, 제가 큐레이터가 되니까 작가 한 사람의 지연이 제 프로젝트 전체에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초안 정리, 일정 공유, 설치 계획 같은 것들을 구조적으로 관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전시가 단순히 작품을 모아두고 전시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제 작업을 포함해 참여 작가들의 작업이 모두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에서 출발하다 보니, 각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이들이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날 수 있을지, 어떤 위치와 동선이 가장 자연스러운지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작품이 어떤 작품 옆에 있을 때 더 빛나는지, 색의 흐름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마무리되는지까지 세심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보기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전시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하고싶은 작업이나 기획하고싶은 전시의 주제가 있으신가요?

앞으로는 몸을 다루는 방식을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어요. 그동안 유리와 도자를 통해 몸의 흔적을 치환하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다면, 최근에는 몸 자체를 매체로 사용하는 방향에도 관심이 커졌습니다. 흉터 같은 신체 요소를 1대1의 크기로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더 큰 규모의 설치로 확장하거나 몸이나 체액이 실제 재료가 되는 퍼포먼스와 회화 작업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흔드는 전시를 계속 기획하고 싶어요. 이번 전시가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다음에는 달팽이의 이동 패턴이나 철새의 이동 경로처럼 동물의 삶에서 출발한 시간과 움직임을 작업의 구조로 가져와 보고 싶습니다. 다른 생명체의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전시를 만들고 싶어요.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전시전경 (제공. 박정은)

《Aftermath》

기획: 박정은

참여 작가: 박정은, 나홈 게브레딩글, 캐리 카우츠, 마하 모한

전시 기간: 2026년 1월 23일 – 3월 29일

전시 장소: Machines with Magnets

주소: 400 Main Street, Pawtucket, RI, USA

오프닝 리셉션: 2026년 1월 23일 오후 6시–9시

※ 전시는 3월 29일까지 연장되었으며, 클로징 이벤트 일정은 추후 공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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