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아트센터자인에서는 현재 박해수 작가의 개인전 《Life Story》가 한창이다. 그곳에서 작품을 통해 역사성을 쌓아올리는 1백 겹의 화가 박해수를 만났다.
"이거 다 물감이에요. 영국에서 온 박사도 이게 물감이라니까 놀라더군요." 캔버스의 표면을 따라 두껍게 솟은 무늬는 조각도, 스티로폼도 아닌 100% 물감이었다. 박해수 작가는 붓대신 칼날을 활용하여 마치 자수로 한 땀 한 땀을 새기듯 물감을 찍어내는 독자적인 기법으로 100호가 훌쩍 넘는 캔버스에 일 백여 겹이 넘는 물감을 쌓아올리며 그 만의 고집스러운 가치를 완성하고 있었다. 한 겹, 한 겹 쌓고 또 쌓아 올린 두께는 시간과 노동, 그리고 작가의 버티는 힘 그 자체다. 박해수 작가는 작품의 모든 과정에 자신의 '고통'을 기입한다고 말한다.
돌칼은 인류의 첫 생존 도구...나도 21세기 화가로서 같은 고통을 새긴다.
“우리 인류가 아무것도 없을 때,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만든 게 돌칼이에요. 맹수의 이빨을 본떠 만든 생존의 무기죠. 인류는 그것으로 짐승을 잡고, 나누고, 살아남고 결국 지금의 문명까지 왔습니다.”
“그래, 너희 원시인들이 고통으로 살았다면, 나도 21세기 화가로서의 고통으로 쌓아올려 보자. 끌칼로 100겹을 찍고 또 올리면서 내 생존을 그리는 거죠.”
박해수 작가는 원형적 '생존'을 자신의 창작 과정의 원동력이자, 역사의 전승으로서 작품의 의미로 담아내고 있었다. 작가의 <Stone Knife>작품은 멀리서 보면 돌칼의 윤곽이 선명해보이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배경과 합쳐지며 희미해진다. 작가는 작품의 질감과 색이 배경에 스며들 듯 혹은 사라질 듯 표현한 이유도 들려준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길이 안 보여요. 멀리서 봐야 윤곽이 보이죠. 그래서 작품도 가까이서는 잘 안 보이게, 멀리서 보면 길이 드러나게 만들었어요. 삶도 똑같습니다.”
아시아인의 끈기와 '도(道)'를 담은 해바라기
이어 등장한 해바라기 작품은 고흐의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르는 소재다. 하지만 박해수 작가는 “아시아인의 방식으로 해바라기를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고흐만의 꽃이 아니거든요. 전 세계에 있는 꽃인데, 고흐 때문에 그 이미지가 고정돼 버린 거죠. 아시아인의 인내·끈기·수행하는 마음으로 해바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육안으로 보기에는 단단한 표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백 겹의 점과 선이 쌓여 있다. 작품 하나에만 무려 6개월, 작은 점(‘머리카락’이라 부르는)들이 250개 이상 겹쳐 있다.
“내 기법을 보고 따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근데 다 포기하더라고요. 10겹만 쌓아도 힘드니까. 100겹을 쌓는 고통은 해본 사람만 압니다.”
다른 색이 뭉쳐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삶의 이야기
박해수 작가의 전시 타이틀은 《Life Story》이다. 보색인 빨강과 파랑을 소재로 작가는 '대립'이 아닌 '융합'을 말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