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귤이라고 합니다.” 라고 소개하면, 이름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요. 귤을 좋아해서 귤이라고 지었냐고 들 하시는데.... (웃음..) 맞아요. 귤나무 귤에, 기쁠 이, 귤을 좋아하는 기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귤의 맛이나 색깔뿐만이 아니라, 귤껍질을 벗길 때 나는 향, 손끝에 묻는 끈적끈적한 감촉.... 사소하지만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것들을 작업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김귤이’ 입니다.
Q2. 작가님, 작가님 작업은 표상, 기호와 통계 뒤에 있는 "놓쳐버리는 수많은 간극들"를 다루로 계신데요. 작가님의 그림에서 이러한 간극들에 대해 어떻게 구성하시고 해석하시나요?
저는 기호의 맥락에서 빚어진 의미와 이야기를 가볍고 친근하게 탐구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보려고 하는 ‘간극’은 통계나 기호에 가려진 ‘감각’, ‘잔여’들입니다. 예를 들면 도시의 건물이나 사람들, 사물들 같은 구체적인 존재가 제 작업 속에서는 추상의 형태로 재탄생 되는데요. 이때 한 점, 한 선이 새로운 이야기를 낳습니다. 또 그 붓질과 색의 흐름으로 이 간극을 감싸며 감각의 여지를 남기는데요. 저는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기억과 외부 풍경이 자연스럽게 얽히도록 해, 부딪침이나 스며듦을 관찰합니다.
Q3. 앞에서 말씀 하신 내용을 듣다보니, 작가님의 작품 스토리텔링은 색상과 붓놀림이 중심인 것 같습니다. 작품의 시각적 요소를 선택하실 때는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처음에는 개인적 일화나, 뚜렷한 기호를 떠올리면서 작품을 시작합니다. 어떤 그 기호가 너무 명확하고 구체적일 때는, 뭔가 불편한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느낌의 근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 감정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어떤 에너지나 파동으로 번져 나갈지를 상상해요. 에너지가 강하게 올라올 때는 빠른 붓질과 강렬한 색을 쓰고 또 반대로, 침잠하고 싶을 때는 채도를 조절하면서 붓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게 하기도 합니다. 계획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첫 느낌을 제공하고 나서는 붓이 움직이는 대로, 색이 섞이는 대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두는 편이에요. 일부러 덜 그리기도 하고, 과하게 미디엄을 얹기도 하면서요. 눈에 드러나지만, 구체적으로 보인다고 할 만한 것들을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결국 그 순간의 감각과 붓의 흐름 속에서 그려지며 화면을 완성해요
Q4. 또 점, 선, 면과 같은 기호들은 보이지 않는 사회질서에 얽매여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러한 규칙들에 대해 그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작가님께서는 작품으로 어떻게 표현하시나요?
그 질서들로부터 벗어난 다기 보다는, 살짝 비껴 나가는 거죠. 여전히 그 규칙 안에 있으면서도 규칙을 규칙답게 소화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이런 건 어때?” 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최근작 <시민의 노래>에서도, 도시가 원하지 않는 시민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도시가 원하지 않을 만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즉 제가 살았던 도시, 안양 같지 않은 안양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도를 했어요. 그 과정에서 중요치 않은 개인적 일화나, 심리상태 같은걸 덧씌우면서 목적성을 흐리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작품에 담습니다.
Q5. 앞에서 말씀하신 작가님의 철학이 담긴 작품 중 소개하고 싶으신 작품 몇 가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진=구의진@guujin.alf] '시민의 노래' art for lab 설치전경, 2024, 단채널 영상, 16분
최근 작업인 <시민의 노래>는‘계량화된 타자성’을 다룹니다. 쉽게 말해, 세상의 수많은 김씨 중 한 사람인 '김아무개'나 '김서방'처럼,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요. 이 작업은 동네 아파트를 산책하다가 유리창에 비친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잠시 감상에 잠겼던 경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네모진 창들 속에 살고 있을 사람들이 멀리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두 개의 쌍둥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와 ‘김아무개’를 설정해서 각자의 나레이션을 따라가는 영상 작업을 만들었어요. 도시 속에서도, 하물며 '나와 너'라는 가까운 관계에서도 쉽게 타자화 되고, 지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도시와 나라, 더 나아가 우주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기도 해요.
이 작품은‘테트리스처럼!’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랜덤으로 쌓이는 블록의 예상치 못한 형상을 상상하며 시작했습니다. 추상에도 셀 수 있는 단위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해졌어요. 블록과 블록이 떨어진 사이에 공간이 비고, 여지가 발생되는데 이는 놓이는 공간에 따른 변수로 작품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사소한 얽힘'이 유발하는 시각적 재미가 있어요.
[사진=김귤이]'유실된 데이터2',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54x120cm
[사진=김귤이]'유실된 데이터 1, 2022,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135x100cm
이 작품의 제목은‘유실된 데이터’인데요. 앞의 ‘테트리스 시리즈’와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됐습니다. 추상의 단위나 픽셀 같은 단어들을 회화로 끌어오게 된 계기는 포트폴리오 작업을 위해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면서였거든요. 그림을 찍고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보는’ 그림이 ‘읽히는’ 그림으로 바뀌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날씨, 빛,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고정되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 유실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질문을 품고 물감을 화면 위에 쌓아봤지만, 되직한 물질로 가득 찬 화면은 점점 답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화면을 잘라내어 데이터를 유실시키기로 했어요. 뚫린 형태 너머로 보이는 벽이 어떤 여지를 품고 있을지 상상하면서말이에요.
[사진=김귤이] '장생 조각보: 귀신 유조선, 복잡한 파이프, 공장들 그리고 고래의 흔적',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수성 페인트, 골판지, 아이소핑크 등, 가변크기
[사진=김귤이]‘장생 조각보: 귀신 유조선, 복잡한 파이프, 공장들 그리고 고래의 흔적’ 상세컷,2023, 캔버스에 아크릴, 수성 페인트, 골판지, 아이소핑크 등, 가변크기
마지막으로 소개시켜드릴 작품은‘장생 조각보’ 인데요.
제 작업은 주로 '기호'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항구 도시 ‘장생포’에서 한 ‘라이브 드로잉 프로젝트’는, 기호의 펼쳐짐을 과정 그대로 보여드릴 수 있던 좋은 기회였는데요. 장생포는 옛 포경의 기억, 사라진 고래의 흔적, 얽혀 있는 공장과 파이프들로 만들어진 독특한 풍경을 품고 있었습니다. 특히, 멀리서는 섬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는 ‘귀신고래’라는 존재는 마을의 뚜렷한 기호처럼 느껴졌는데요. 이방인인 제 시선으로 장생포를 바라보며, 사라진 것들을 감각하고, 흩어지고 고립된 것들을 이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장생 조각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을의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을 했는데요. 조각보처럼 이어지고 겹쳐지는 그 과정에서, 이 마을의 단면들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며 작업했습니다.
Q6. 작가님, 작가님의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그들이 어떤 메시지나 감정을 가져가기를 바라시나요?
저는 작품의 의도가 꼭 그대로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대신,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가 '익숙하지만 낯설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색과 형태에서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을 듯 하고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그 경험이 단순히 '좋다' 또는 '이상하다'와 같은 단일한 반응으로 끝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천천히 바라보고, 자신만의 생각이나 감정을 떠올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치 제이름 처럼 귤 껍질을 하나 하나 벗기며 향과 감촉을 느끼는 것 처럼요. 또 제 작업이 '간극' 속에 있는 여지를 남기는 만큼..... 관객들도 자신의 시각과 감각으로 그 간극을 채워나가는 경험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Q7. 앞으로 계획이나 바램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또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여전히 틈새에 머물러 있거나, 이야기 되지 않는 태도, 정신, 불명확한 정체성 같은 전시장 바깥의 서사들을 작품과 나란히 두고 싶어요. 전시<대충살자.jpg> 에서 결핍과 이를 채우려는 심리를 이야기로 풀어낸 것처럼, 비어 있는 공간이나 움직임을 암시하는 형상을 통해 각자의 서사를 떠올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렇게 작품에 덧붙여지는 이야기들로 완성되는 틈을 남기고 싶은데요. 그림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상할 수 있는 열린 존재로 남기를 바랍니다.
[사진=김귤이] '대충살자, 대충 끼워 맞추는 이 팩맨처럼' 외 설치전경2023, 켄트지, 아크릴 채색, 테이프, 아이 클레이, 스펀지, 혼합재료, 가변크기
[사진=김귤이] (화면상 왼부터) ‘부분이 되지 않은 2’, 2023, 린넨에 아크릴, 수성 페인트, 32x32cm/‘그 뒤로 펼쳐지는 화면’,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수성 페인트, 스프레이 페인트, 유채, 판지에 아크릴, 플라스틱, 251x180cm/‘수평선 기호 11-1였던 것’, 2023, 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수성 페인트, 75x89cm
딱히 제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아직 명확하지는 않아요.(웃음...)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작가는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런 작가요. 그 이야기가 지금의 흐름과 꼭 맞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중요한 건 진실을 마주하는 각자 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성 작가이고, MZ 세대인 90년대 생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여러 집단에 속해있죠.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지금 어떤 모습인지 묻는 것이 제 작업의 큰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쌍둥이 아파트를 마주한 경험이 두 개의 나레이션, 두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요.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어떤 작가로 기억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김귤이 작가 프로필>
2022 석사 |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치료 전공
2018 디플롬(중퇴) | Kunstakademie Duesseldorf, Fine Arts | Duesseldorf, Germany
2013 학사 |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서양화 전공
o 개인전
2024 <Synchronized Swimming 씽-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로이갤러리, 서울
2023 <대충살자.jpg>, 북구예술창작소, 울산
2023 <펼침의 기호들>, 아트 포 랩, 안양
2020 <솟아오름, 음…>, 석수시장, 안양
o 단체전
2023 <5 spoons of salt>, gallery wall+, 울산
2023 <라이브드로잉: 그려지는 흔적들>, 장생포고래로131 작은미술관, 울산
2023 <MOMENT>, MUP 기획전, 뎁센드2 갤러리, 서울
2023 <제 8회 마중물 아트마켓>, 김리아갤러리, 서울
2023 <Old and New>, 쇼앤텔 픽앤플레이스, 서울
2022 <1st Homecoming Day>,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22 <Tyble Assebled Part 1>, 신촌문화관, 서울
2021 <미래 유물전: 의왕, 두터운 현재>, 의왕도서관 책마루, 의왕
o 기금수혜
2023 안양신진예술가지원사업, 안양문화예술재단
2020 안양예술활동 지원사업, 안양문화예술재단
o 기타
2023 Artsy ‘Rising Artists of Asia & Its Diaspora’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