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님, 작가님은 작업을 통해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예술가로서 주변부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 아트바젤과 같은 세계적인 미술시장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작가들을 보면서, 그들은 중심에 있고 나라는 초라한 작가는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주변부가 중심이 될 수는 없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계속 하면서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현재 작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2. 작품을 고민하시던 과정에서 작업의 주인공이 화면 중앙이 아닌, 측면의 주변부가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작업 과정에서 ‘코너’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나 의미를 발견하신 순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코너를 중심으로 삼게 된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대부분 벽면의 중앙에 작품을 걸고 있죠. 구석이나 모서리는 사실 작품을 걸지도 않고, 관심을 끄는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 당연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러한 구석과 주변부에 시선을 두고 보니, 그곳은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예컨대 중간을 비워 두고 구석에 그림을 걸어둔다고 생각해보죠. 새로운 구도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서리를 감싸고도는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구석을 채우는 형태의 그림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들을 연이어 하다 보니 여러 가지 구성의 새로운 조합들이 떠올랐습니다. 프레임에서는 프레임을 넘어가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가 이루어졌고요. 그림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 프레임의 외곽, 그러니까 캔버스의 옆면을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3. 작가님, 작가님 작품을 처음봤을 때 색색형형 가로줄무니가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 가로줄무니가 작가님의 시그니쳐로 보이는데요. 이런 작품을 구상하실 때, 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작업하시고 또 작품을 구체화 시키시는지, 작가님의 작품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 아이디어가 떠오르고는 바로 목공소에 가서 나무 판넬을 주문 제작했어요. 판넬의 측면에 전사를 해보기도 하고, 형광색으로 측면만 페인팅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의 글자판 같은 형태의 글자꼴이나 색색 유리타일 등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시도해 보았고요. 그러다가 작품 앞면 중앙부에만 쓰던 레진에 색을 넣어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투명 레진 자체만 써봤기에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하며 시도하다가 이제는 레진이 제 작업의 주재료가 됬어요.
초기 작업할때는 프레임의 측면을 화려하게 형형색색의 레진을 짜서 흘려 표현하고, 화면의 중앙은 모노톤으로 거칠게 갈아내고 지워내는 작업으로 시작했는데요. 이는 작품 화면에는 세계적인 아트페어나 예술관련 신문과 잡지를 수집하여 텍스트와 이미지를 전사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전사를 통해 반전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거대 자본에 잠식당한 듯한, 그런 기존 현대미술을 부정하는 의미였고요
그런데 주변부를 장식했던 레진의 흐름인 ‘아름다운 줄무늬들’이 점점 중앙으로 진출하게 됬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주변부가 중앙부를 뒤덮는 결과가 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색에 대한 감정으로 제 관심이 일부 옮겨갔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의 색을 표현할 때에도, 그 색에는 수많은 색감이 주는 다양한 느낌과 일종의 스토리텔링과 같은 여러 이야기들을 담아 보았어요. 예를 들면 푸른 숲을 표현한다고 할 때, 녹색 빛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듯, 이는 단순한 녹색이 아니고 하늘마저도 숲의 일부를 이루는 그런 녹색 빛이 되는 거죠. 일상생활이나 자연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감들에 잠겨서 작업을 하는 것은 제게는 매우 큰 행복인 것 같습니다.
4. 앞에서 작가님께서는 캔버스 끝에서 레진과 함께 섞인 물감이 중력에 따라 흐르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작업하시는데요. 이런 물리적 과정에서 작가님의 의도가 물감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 궁금합니다.
프레임을 따라 흐르는 물감과 안료를 머금은 레진은 우리들 인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중력은 자연의 힘과도 같은, 어쩌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섭리와 같은 것이에요. 그 섭리에 따라서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고.... 또 그 끝은 프레임에서 멈추지 않고, 프레임을 벗어나 외부의 세계로 우리의 정착지를 찾아 떠나가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끝없이 자연의 힘에 맞서, 한계에 부딪치며 그 과정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치 ‘물감이 중력에 의해 흐르는 것과도 같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삶의 군상들, 다양한 모습들이 모여서 살아간 궤적을 모아보니, 아름다운 색의 궤적이 된 것이죠. 처음부터 물감에서 우리들 모습을 찾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작업을 해나가면서, 표면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감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묽었다, 진했다가 변해가는 모습들이 마치 세상을 극복해가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렇듯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너무도 다양한 색감들을 고르고 알맞게 배열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아름답게 삶을 꾸려가는 하나의 판을 꾸며간다고 생각합니다.
5. 작가님 작품들 중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기억 남으시거나 작가님께서 작업하시면서 특히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로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은‘Convex Memory’라는 작품인데요. 뉴욕 맨하튼의 도시 이미지를 도로반사경 안에 그렸던 작품입니다. 제가 현재 컨셉의 작품으로 전환하기 전에 도로반사경, 유리반구 또는 볼록한 화면 등을 통해 도시풍경이나 이미지의 실체를 왜곡하는 작업들을 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실체들은 진짜 실체가 아니고, 사실은 실체가 왜곡되어 보인다라는 나름의 뜻을 담았던 작품인데요. 현재는 이 작품이 정부미술은행(2016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