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공기는 쌀쌀해진 어느 화창한 가을 낮, 박혜원 작가를 만났다.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작가의 인상과 분위기는 굉장히 오래 알고 지낸 언니 같기도, 한창 붐비는 동네 카페에서 자주 만나 함께 보내는 옆 집 젊은 엄마 같기도 했다. 박혜원 작가와 인가희 대표, 우리 셋은 작은 카페에서 수다 떨 듯 소란스럽게 그러나 조금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박혜원 작가에게 죽음은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주제이자 삶의 일부 였으며, 생명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삶의 시간 속에서, 작가는 죽음에서 생으로 이어지는 '거꾸로 가는 삶의 여정'을 빨간 실로 이어가고 있었다. 실제 작가의 삶은 죽음에서 시작되어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었기에, 작가의 작품 여정이 죽음에서 시작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Q. 안녕하세요, 박혜원 작가님. 현재 진행 중인《MY Dear Little Home》 전시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MY Dear Little Home》시리즈는 저희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작품 중에 스테인리스 스틸과 붉은 실로 만들어진 집은 모두 32주~35주 가량된 여성의 자궁 크기로 되어 있어요. 안의 조명은 태아의 생명을 상징해요. 켜진 것도 있고 꺼진 것도 있는데 이 역시 생명을 상징해요. 같은 공간이지만,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어요.
- 태아는 40주가 만삭이고, 보통 39주면 출산을 하게 됩니다. 제가 만든 집(자궁)은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의 집 크기"에요. 둘째를 조산했던 경험이 담겨있고,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입원을 했을 때, 아이가 담겨있던 바구니를 상징하기도 해요.
- 이번 전시에는 저희 첫째 딸이 그린 가족상도 있어요. 6명의 가족이 그려져 있는데, 저희 반려묘와 첫째 아이가 5살 때 유산되었던 쑥쑥이가 함께 있어요. 저희 딸한테 우리 가족 수를 물어보면 6명이라고 해요. 그 때 기억을 갖고 있더라고요. 쑥쑥이까지 포함한 우리 여섯 명이 가족이에요.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가 저희 딸의 그림에도 그대로 녹아 있어서,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Q. 네 말씀하신대로, 전시의 메인 주제 '집'에는 생명의 탄생(자궁)과 죽음의 마지막 공간(묘지)이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네, 맞아요. 과거에 집은 다 '궁'이라고 불렀대요. 근데 그 궁'宮'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자궁'과도 같은 한자를 써요. 그래서 생명이 탄생하는 자궁, 집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그리고 집이라고 했을 때, 저는 묘지는 죽은 후에 가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고 봐요.
- 또 한 번 생명과 죽음의 동시성을 느꼈던 곳은 신생아실이에요. 저희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면회하려고 우리 가족들은 기다리면서 설레고 기쁜 마음이었죠. 그런데 저 반대편에서 한 분이 서 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거예요. 아이가 잘못되서 수술을 해야되는 데, 사인을 하셔야한다는 이야기가 오가더라고요.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애기가 잘못되서 죽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생명이 탄생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죽음이 언제나 공존하죠.
Q. 죽음에 대한 작가님의 성찰에는 '자살생존자'로서의 개인적 경험도 담겨있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작품에는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자살생존자 :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살자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
- 저에게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닌 삶과 늘 공존하는 삶의 다른면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살 생존자였던 저에게는 삶의 아주가까운 다른면이 죽음과 같았거든요. 자살한 사람의 주변 사람을 '자살생존자'라고 하는데, 제가 그 자살생존자였어요. 자살생존자들은 자살한 사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돌볼 대상 1순위 이자, 치료 대상 1순위 인거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해요. 저 또한 그로 인해서 괴로웠던 사람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았고, 귀한 인연으로 치료도 받을 수 있었어요. 회복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고, 그 와중에 작품 활동을 계속 해왔어요. 저의 경험이 그대로 제 작품에 담길 수 밖에 없었죠. 초기 저의 작품들을 보면 많이 어두운 편이죠. 죽음에 대한 성찰이라기 보다는 제가 겪은 '죽음'이라는 것을 말로 풀어 내기엔 마음이 힘드니까, 작품으로 표현하고 풀어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무덤가를 자주 가기도 했고, 제를 지내는 형식이나, 죽음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그래서 과거의 제 작품을 보면, 제를 지내는 듯한 애도의 방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Q. 꽤 오랜시간 괴로운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으셨나요?
- 사실, 초기에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울면서 작업을 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계속해서 아픈 기억이 떠오르니까, 그 심정을 조금이라도 잊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올한올 바느질을 하고 실을 엮었어요. 작업을 하는 그 순간 만큼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저에겐 작업 자체가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거든요. 10시간 이상을 작품에 매진할 때가 많았어요. 돌이켜보면 수행을 하듯이 했던 것이 었고, 작품에 몰입하던 행위 하나하나 그 자체가 명상이었어요. 예술을 통해 치유를 얻었죠.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붉은 실'이 강렬하게 눈에 띄는데요. 붉은 실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붉은 실'하면 떠오르는 전통적 의미의 '인연'을 뜻 해요. 붉은 실을 가지고 여러가지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어떤 작품에는 바느질은 했는데, 매듭이 없어요. 인연의 끈에 왠지 모르게 매듭을 짓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르지도 않고 딱 한 줄로 만들어져서 매듭이 없는 거죠. 뭔가 '끝'이 나는게 싫어서 '끝'내지 않으려고. 말 그대로 '매듭짓다'의 매듭이 싫어서, 계속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거죠. 매듭이 없어서 더 매끈하게 떨어집니다. 매듭이 없으면 그냥 툭 떨어지거든요. 누가 만지거나 당기면 빠져버릴 수도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