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에 제주도로 이주한 후 숲과 섬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을 인간 삶의 에너지와 조화, 치유에 초점을 맞춰 그리는 현대 미술가 신재은 작가를 만나보았다.
Q1. 작가님, 제주도로 이주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전 서울에서 살 때부터 마음이 답답하면 제주도로 자주 갔었어요. 사람도 건물도 인공적인 것 아무것도 없이 자연이 확 펼쳐진 곳에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육지와 다른, 해양성 기후의 제주 식물과 자연 식생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작가로서 살아가려면 서울에 거주하는 것이 작품 활동에 좀 더 편리하겠지만, 인간 신재은으로서의 건강한 삶에 대한 갈구가 더 강렬했어요. 그래서 제주로의 이주를 선택했습니다.
Q2. 제주도의 자연을 통해 무의식적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게 되었나요? 자연 속에서 발견한 치유와 온전함이 작가님의 예술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혼자서 올레길을 걸었을 때....
사람 없이 바다와 숲, 들판만 펼쳐져 있는 풍경이 너무 무서웠어요. 분명 사람 사는 곳인데 왜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화창한 날씨, 새파란 하늘, 새파란 바다를 옆에 두고 검은색 돌담길 따라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마치 귀신이라도 볼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길을 걸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동안 제주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름답던 제주 풍경이 그리워 다시 제주에 갔어요. 그때 완전히 제주 풍경에 빠져버렸고 열대의 식물이 보여주는 낯선 풍경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사람 없는 깊은 곶자왈*을 처음 걸었을 때, 맨정신에 혼자 숲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맥주 한 캔을 한 번에 들이키고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용기 내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취기는 미약했을 뿐, 곶자왈의 식생과 화창한 날씨에 매료되어 깊은 숲에 대한 두려움이 깨어졌어요. 그러고는 내 안의 두려움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곶자왈 : 제주의 숲. 덤불과 자갈이라는 의미의 곶자왈에는 북방한계 남방 식물과 남방한계 북방 식물이 섞여서 살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육지와 달리 봄에 낙엽이 짐
명상과 마음 탐구를 하면서 사람 없는 자연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축적된 두려움이 자연에 투사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또한 두려움이 있어도 내면의 강렬한 이끌림을 따라 용기를 내면 두려움 너머에 축복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요.
내 안에 억눌린 감정이 대단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에너지의 한 종류이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도 해소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붓을 움직이면 억눌린 에너지가 밖으로 발산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숲을 산책하며 나무와 온갖 식물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하나 보았을 때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함께 공존할 때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좋다’, 라고 하듯, 모든 것이 불완전해 보여도 전체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이 메시지가 제 마음 깊이 억눌린 무언가를 치유 해주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3. 오랜 시간 꿈에서 본 암호 같은 풍경을 탐구하셨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꿈들이 작업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영되나요? 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제는 아니지만 저는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거의 평생을 꿈에 시달려 왔어요. 꿈에서 나타나는 모든 풍경과 사물은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한 컬러였고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여파가 너무 커서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따금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도 나타났는데.....
음, 그렇지만 대체로 해석 불가한, 두렵거나 분노, 슬픔, 절망, 답답함을 전해주는 꿈이었죠.
시기별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형태와 이야기가 달리 나타났습니다. 동굴, 지하실, 계단, 건물, 방, 창문, 호수, 바다, 숲은 아주 오래 반복되어 나타났던 꿈의 요소였는데요, 덕분에 저는 칼 융의 꿈의 해석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을 읽으며 제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저 요소들은 대체로 자아와 무의식을 나타내는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도 대부분의 그림 속에 계단이나 물이나 식물이 항상 등장하고, 컬러풀한 색을 유지합니다.
이런 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중 두 점을 소개하자면 '나는 내가 찾는 것을 찾고 있다 2'와 'innerscape 2'가 있는데요. innerscape 2는 꿈에서 본 황홀한 풍경의 느낌을 캔버스에 옮기려 시도한 작품입니다.
Q4. 작업을 통해 무의식적인 감정을 의식화하는 과정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러한 작업이 개인적으로 어떤 치유나 성찰을 가져왔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생각의 개입 없는 무의식적 손의 움직임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환호하고 신날 때 와! 하고 소리 지르며 가슴과 등을 활짝 펴고 팔을 위로 쭉 뻗는데 이것은 가슴 속의 에너지가 밖을 향해 발산되는 상태라고 느껴요. 슬프고 비통할 때 몸을 웅크리며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는 것은 에너지가 응축되는 듯 느껴지구요. 저는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로 붓을 움직일 때 이런 에너지의 움직임이 캔버스에 펼쳐지거든요
작품 <빨간 마니푸라>를 예로 들어보자면,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빨간색을 주조 색으로 쓰고 싶었거든요. 또 붓을 힘차게 휘두르고 싶었습니다.
왜 '휘두르고' 싶었을까? 생각해 보면 무언가 내면에 억눌려 있던 것을 분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 왜 빨간색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빨간색이 전해주는 에너지와 내면의 에너지가 공명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적인 상태에서는 알기 힘든 무의식적 감정 상태와 에너지인 것이죠.
참고 억누른 에너지가 내면에 축적되면 의식적인 상태만으로 자신을 제어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우울증이나 무기력, 번아웃과 같은 것이 예가 될 수 있죠. 그 무의식적인 측면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좋은 방법이 내가 무엇을 회피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감각하는지 지속해서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떠오르면 무심결에 떠오른 것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이것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Q5. 작업하신 작품 중 특히 애착이 가거나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 궁금합니다.?

![[사진=신재은 작가] 나는 내가 찾는 것을 찾고 있다 2, oil on canvas, 162.2x130.3cm, 2022](/_next/image?url=https%3A%2F%2Fimg.kmisul.com%2Flegacy%2F202409%2F3960_11359_2052.jpg&w=384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