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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억과 감정의 탐구자, 박현호 작가를 만나다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도암갤러리 《불타오르는 살갗: 박현호 개인전》 개최

지난 10일부터 열린 서울아트센터 도암갤러리에서 박현호 작가의 개인전 <불타오르는 살갗>.

지난 기사에 이어 박현호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심도있게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박현호이고요. 현재 그림을 그리고 있고, 이전에는 미디어 설치작업을 했었습니다. ‘기억과 감정의 시각적 탐구자’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감정에 대한 기억을 붓질과 물감이라는 매체를 통해 물리적으로 붙잡고, 이를 내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박현호 작가 / 사진_김현정 기자
박현호 작가 / 사진_김현정 기자

Q. 작품의 주제가 기억과 감정의 탐구인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 5년 전쯤 'Creamy Catastrophe'라는 개인전을 열면서, 트라우마 기억을 회복하기 위한 그림 시리즈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기억과 감정을 주 테마로 삼았죠.

2018년에 개인적으로 겪은 트라우마를 회복하기 위해 미술치료의 일환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논문 주제와 연구 주제로 트라우마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왜 그동안 트라우마를 마주하기 어려웠는지 알게 되었어요. 보통 사람은 특정 사건과 가까운 기억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일정한 단계를 거치고 난 뒤 본인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꺼내 놓고 일상적인 기억으로 변모시킨다고 하던데, 실제로 제가 경험해 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박현호 작가의 둘러싸인 포옹의 흐릿한 껍데기_캔버스에 유채_193x112cm_2023 (도암갤러리 제공)
박현호 작가의 둘러싸인 포옹의 흐릿한 껍데기_캔버스에 유채_193x112cm_2023 (도암갤러리 제공)

Q.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승화하신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

: 치료를 받던 시기에 그렸던 드로잉들이 시작이었어요. 그림이라는 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생각을 한 번에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간단히 그린 그림인데도 그 당시의 기억이 잘 살아 있어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도 애매한 감정들을 나를 위해서만 그렸죠. 나만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그림들이에요.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처음 1~2년 동안은 아주 힘들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과정 중에 저는 대학원에 들어갔고, 그림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대학원 시절 그림에서는 제 그림에 구체적인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 부분을 어려워하고 있구나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트라우마가 회복되고, 더 나은 단계로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상과 기억, 살갗에 대한 그림으로 지금까지 작품 활동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캔버스가 아닌 가죽에 그림을 그리시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캔버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화의 기름을 빨아들입니다. 기름이 스며들어 결국 안료만 남게 되죠. 그러나 제가 쓰는 인공 가죽은 캔버스나 동물 가죽보다 숨을 쉬지 않습니다. 인공 가죽의 표면에 유화를 그리는 순간, 이것이다 싶었어요. 가죽은 기름을 흡수하지 않고 표면에 머물러 있게 합니다. 또 유화는 마르는 성질이 수채화와 달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이 산소를 만나 경화되죠. 캔버스는 기름을 빨아들여 더 꺼지지만, 가죽은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물감이 표면에 떠 있는 상태로 남아, 표면과 합쳐지지 않습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억의 작용은 ‘표피적’입니다. 인식의 표피에 떠서 생생하게 굳어가죠. 기억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인상’단계로 잠깐 머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혔다가 떠오르고, 망각과 재분출을 반복하면서 기억이 된다고 생각해요. 또 기억이 뇌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의 표면이나 몸으로도 기억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상이 기억이 되는 과정에 몸의 표면인 ‘살갗’이 필수적으로 표현되고 있죠. 이러한 기억이 표면으로 표출되는 것이 저에게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기억과 표출, 인상의 관계를 표현할 때, 캔버스보다는 가죽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가죽 위의 물감들은 우리의 기억처럼 부유하는 것이죠.

 

박현호 작가의 생생 활활-생의 기쁨, 불타오르는 살갗_가죽에 유채_약 200x280cm_2024(도암갤러리 제공)
박현호 작가의 생생 활활-생의 기쁨, 불타오르는 살갗_가죽에 유채_약 200x280cm_2024(도암갤러리 제공)

Q. 가죽과 마찬가지로 유화를 사용하시는 특별한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저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한참 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마르는 속도가 느리고 한 번 정해 놓으면 잘 변하지 않는 유화의 특성이 마음에 듭니다. 이게 유화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아크릴은 그림을 그리면 바로 말라서 드라이해지고 수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유화와 많이 다르죠.

또한, 저는 어떤 이미지를 보고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경험한 것을 떠올리며 그리기 때문에 묘사에 한계가 있습니다. 뭔가 기억은 또렷하지 않고, 망각과 떠오름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계가 좀 더 분명한 이미지도 있지만, 흐릿하거나 부유하는 이미지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망각과 부유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위한 터치를 남기기 위해서는 스케치 라인대로만 그려서는 안 됩니다. 우연성이 더 자연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통제 밖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물감이 표면에 묻어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더 적합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항상 표면과 재료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표면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바르고 있는 물감의 농도는 어떤지 마주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길 원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처음 그려서 놔뒀을 때의 느낌을 관객이 봐줬으면 합니다.

이를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은 물감을 묻히는 행위입니다. 붓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성품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면 비슷한 터치와 굵기의 스트로크가 나오기 때문에,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라이프나 밀대 같은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은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보통 관람객은 작품이라는 결과만 보게 되는데, 작가님은 작업의 중간 과정까지 함께 나눴으면 하는 의도도 있으시네요.

: 그림을 처음 보는 관객은 작가 자신입니다. 그림을 처음 걸어놓고 보는 사람도 작가이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오롯이 작가죠. 물론 그 모든 걸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 그림을 그릴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어떤 기법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같은 것들을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위해서 그리는 것이죠. 결과물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즐거웠는지가 함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제가 사용하는 유화라는 매체는 밑에 층이 보이거든요. 수채화처럼 투명하기도 해요. 기름이 투명할수록 아래층이 보이기 때문에, 아크릴과는 다르게 아래층에서 무슨 작업을 했는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레이어가 드러나면서 "이 사람이 처음에 이렇게 그렸고, 그다음에 이렇게 그렸구나"라는 것이 관객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어요.

 

박현호 작가의 바닷속에 해가 있었다_캔버스에 유채_168x330cm_2021 (도암갤러리 제공)
박현호 작가의 바닷속에 해가 있었다_캔버스에 유채_168x330cm_2021 (도암갤러리 제공)

Q. 그렇다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어떤 점을 느끼고 갔으면 하시나요?

: 저에게는 카타르시스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는 어떤 사건을 통해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승화되는 것이잖아요. 처음 'Creamy Catastrophe' 개인전을 열었을 때, 별 기대 없이 관객들을 만났는데, 제가 정말 모르는 관객분들이 방명록에 많은 감상을 남겨주셨어요.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거나,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방명록에 감동을 적고 가는 걸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떤 작가분들은 그림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림을 보고 질문을 떠올리길 바라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말로는 전달되지 않더라도, 어떤 부분에서의 카타르시스나 좋은 방향으로의 환기, 리프레시를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그림을 통해 마음의 짐을 덜고, 새로워지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끝으로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네, 일단 이번 전시를 잘 마무리하고요. 한남동 갤러리에서 예정된 그룹 전시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목표는 해외에서 전시를 해보는 것과 여러 아트 페어에 참가해보는 것입니다. 사실 작가마다 겨냥하는 관객이 다르잖아요. 저는 지금 제 작품이 미술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아트 페어를 통해 더 많이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현호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오는 6월 1일 토요일 오후 다섯시 도암갤러리에서 열리는 아티스트 토크에서 보다 상세히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신청방법은 갤러리 공식 인스타그램을 참고하여, 전화 및 현장 신청 그리고 구글폼으로 신청할 수 있다.

 

▶ 관람안내

- 기획 및 주관: 도암갤러리

- 전시기간: 2024.05.10.(금)-2024.06.08.(토)

- 전시개막: 2024.05.10.(금) 4pm

- 전시장소: 도암갤러리 03011 서울시 종로구 평창문화로 70 서울아트센터 3F/ 02-2287-0512

                 doamgallery@gmail.com / www.doam.me /@doamgallery_official

- 운영일시: 화-토, 10am-6pm / 일, 월, 공휴일 휴관

- 관람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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