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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갤러리스트 아카데미 “변화하는 전시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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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스트 아카데미 2022 중급과정 7강 “변화하는 전시 트렌드”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강연

[강연] 갤러리스트 아카데미 “변화하는 전시 트렌드”

2년이 훌쩍 넘어 버린 코로나의 세상, 그에 따른 언택트 문화가 빠르게 전파되면서 공간적 특성과 원본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 산업이 전반적으로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형 미술관들은 운영 자체의 기반을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예술 기획이란, 기본적으로 예술가들이 구축한 <세상>을 어떻게 관람자들이 즐기는 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개개인 간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비대면의 세상’입니다. 언택트를 넘어선 새로운 예술, 새로운 교감의 예술 경험의 설계가 더욱 간절히 필요한 때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는 “인간은 그 본성에서부터 예술가이다. 그는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의 생활에 미를 도입하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은 궁극적으로 ‘미’를 추구하며, 그 ‘미’의 종착지는 ‘예술’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인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모호하고 정의 내리기 힘든 단어인 ‘예술’을 우리는 너무나도 흔하게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경기 완전 예술이었어’, ‘어제 네가 끓여준 라면 맛 정말 예술이던 걸?’,‘오늘 날씨 예술이다’... 등등 이렇게 ‘예술’이라는 단어는 ‘예술 작품’을 벗어나 우리들이 즐겨 쓰곤 하는 ‘일상 단어’가 되어있습니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인 ‘예술’. 과연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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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고대 상형 문자에서도 우리는 인류의 ‘미감’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어떠한 방식으로든 외부로 표현하고자 하지요. 그 표현에 소위 ‘예술적 행위(글쓰기, 그리기, 표현하기 등)’가 더해지면서 예술은 탄생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독창적이며 인상적으로, 멋진 미(美)로 성취한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르지요. ‘예술’에 대한 편견을 잠시 접어둔다면, 우리가 유, 무형적으로 만들어내는 대부분은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좋은 예술’과 ‘부족한 예술’, 혹은 ‘예술성이 떨어지는’ 결과물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대중 전시에 대한 큰 오해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대중성이 있는 전시’가 ‘예술 전시가 아니다’라는 오해 말이지요. 전시에도 위의 예와 동일하게 ‘기획력이 떨어지는’, ‘부족한 전시’만 존재할 뿐, 가치가 없는 전시란 없습니다. 예술은 모든 개념을 포용하듯, 그 예술을 담는 ‘전시’라는 그릇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떻게‘진화’ 해왔을까요. 그리고 거기에 따라 ‘전시’는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요. 물론 여기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의 진화 방식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합니다. ‘종’의 진화는 진화 후 앞의 ‘종’이 퇴화함으로 완성되곤 하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렉투스 -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등등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예술의 진화는 이전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남아있고(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가 진화-확장합니다) 다른 예술로 그 특성을 ‘파생-전이’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번식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지요. 이제 예술과 전시가 어떻게 ‘진화’되어왔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술과 전시의 ‘진화’

‘이미지’는 인류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문자의 발명 이전 ‘상형문자’가 존재했듯이 ‘이미지’는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담은 ‘그림’은 문자의 발명 이후 ‘회화’라는 형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지 않는 ‘그림-회화’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요?

단순하게 ‘시간을 담아 보존하는’ 기록물로서의 회화 시대를 지나, 그림은 그 안에 이야기를 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2차원의 평면 속에 많은 내용을 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로 평면 예술의 한계를 넘고자 합니다. 그 시도에는 시간성에 대한 실험이나, 매체(캔버스)의 한계를 넘는 전위적인 시도, 그리고 표현되는 도구(물감, 붓 등)의 다양화 등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바로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회화’가 어떤 시도로 ‘기록성’을 넘어’ 예술성’을 지니게 되었는지입니다.

<그림 2> 산드로 보티첼리, ‘수태고지’

날개 달린 천사와 한 여인이 그림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여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네요. 이 작품의 제목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입니다. 신약성서에 기록된 내용인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 잉태를 예고’한 부분을 그린 이 작품은 수없이 많은 예술가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보티첼리에 의해 그려진 이 작품은 손을 살짝 세워 앞으로 내밀고 있어 언뜻 보아서는 거절하는 것 같은 마리아와 아이가 태어났음을 고지하는 천사의 동작이 대비되어 그 감정선이 독특합니다. 단순히 성경에 나온 상황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분할을 이용해 두 인물의 손을 출입문의 수직선에 의해 명확하게 반으로 나누어 두 등장인물 사이에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거리를 말해주고 있고, 거기에 마음을 알 수 없는 마리아의 표정이나 목적만을 응시하고 있는 천사의 눈빛을 더해 긴장감을 가져다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상황 외에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줍니다.

 

<그림 3> 퐁텐블로 파(작가 미상),’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만큼 유명한 이 그림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인데요. 그림 속의 두 여인 중 오른쪽이 가브리엘입니다. 그녀는 왼손에 반지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욕조에 걸치고 있습니다. 왼쪽 인물은 그녀의 누이 빌라르(Villard) 공작부인으로 왼손으로 가브리엘의 오른쪽 유두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여인의 뒤에는 하녀가 옷을 만들고 있고 그녀의 오른쪽에는 벽난로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벽난로 위에는 누드의 남성이 하체를 가린 모습의 그림이 보입니다. 이 한 장의 도상 위에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이유를 흥미롭게 상상하게 되죠. 언뜻 보기에 동성애로 보이는 이 작품은 가브리엘의 임신과 그걸 축하하는 자매의 상황을 여러 가지 단서로 묘사하고 있지요. ‘기록’이 아닌 ‘생각하는 이야기’로 ‘이미지’가 진화한 좋은 사례입니다.

‘좋은 예술’이란 이렇게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의도적인 연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수행했느냐가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의도적인 연출은 ‘무언가를 더해서’ 얻어지기보단 ‘잘 빼내었을 때’ 더 잘 성취됩니다. 어떠한 상황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감상자가 잘 메워서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억지스럽지 않게 감상자가 긍정적인 ‘예술 감상’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예술성이 높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예술 감상자들의 등장

이는 다른 예술(책, 회화, 영화….)들이 주는 감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용방식과 감상의 형식인지를 뿐, 그것이 주는 ‘예술 경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용방식과 감상의 형식이 달라진 건, 단지 기술의 발전에 의한 매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상자의 ‘진화’에 발맞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체험’하고 ‘경험’을 공유하길 더 좋아하는 새로운 ‘예술 감상자’들의 등장 말입니다.

 

사용자 경험을 말하는 UX(User Experience)나 브랜드 경험을 이야기하는 BX(Brand Experience)처럼 예술 역시 단순한 감상을 넘어 ‘경험’하기를 원한다. 이걸 우리는 ‘예술경험’ AX(Art Experience)이라고 말한다.

‘예술경험’이라는 단어는 새 시대의 새 대중(예술 향유층)을 위한 접근법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예술적 상황’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박제되어서 나름의 독해법을 강요함에 피로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미술은 점점 대중과 유리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인구의 증가, 문화 향유 계층의 확대 등의 사회적-인구 통계적인 현상이 벌어지며 이는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됩니다. 제한된 인원이었던 ‘예술 소비’가 확대되며 다층의 예술 감상층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특히 새로 유입된 예술 감상층은 보다 자세한 설명과 친절한 독해법, 그리고 그 안에서 ‘경험’하기를 전시 기획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가 대중화의 지점을 거쳐 ‘대중음악’으로 확장된 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대중음악’이란 ‘산업화’를 이룬 결과물을 말합니다) ’ 대중음악’의 가장 큰 변화는 ‘대중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독해하기 쉽다는 것 이외에 ‘쉽게 내가 가질 수 있는’ 예술 창작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LP나 CD 등으로 소유할 수 있는 ‘내 것’. 물론 지금은 이마저도 ‘온라인’이라는 초월적 공간 개념으로 조금 수정되어야지 싶습니다.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해주는 기술에 기반한’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중 전시를 기획하는데 중요한 요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대중 전시를 기획해온 경험을 기반으로 몇 가지 조건을 제안해 봅니다.

1. 관람객 최적화

2. 게이미피케이션

3. 컬러 라이즈

4. 시노 그라피

5. 작품은 어렵게, 인터페이스는 쉽게

6. 동시대성 / 동시대 감수성

 

1. 관람객 최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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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6> <고양 국제 어린이 영화제> 감각놀이 체험전 / 도록

2006년에 있었던 어린이 대상 전시였던 <고양 국제 어린이 영화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에서 가장 신경 써서 기획했던 것은 바로 ‘도록’입니다.  전시가 끝나면 그 결과물로 존재하게 되는 ‘도록’은 정작 그 도록의 대상인 어린이들이 소유하기에는 어렵고, 애매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과감하게 도록의 사이즈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희왕’ 카드 크기로 줄이고, 그 안의 레이아웃 역사 기존의 제품과 거의 유사하게 디자인하여 아이들의 호감도를 높였습니다.

 

2. 게이미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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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8>  ‘All (is) Vanity;모든 것이 헛되다’ 

콘텐츠에 게임 이론을 도입해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콘텐츠를 즐기게 하는 기법인 ‘게이미피케이션’은 전시기획에도 훌륭한 도움이 됩니다. 2015년에 기획했던 ‘All (is) Vanity;모든 것이 헛되다’ 전은 죽음의 이미지를 천천히 관조하게 하는 조금은 난해한 전시였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마치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관람객의 능동적인 전시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는데요.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에게 손전등을 제공하고, 관람객들은 전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어둡게 처리된 전시장 벽면을 탐색해 찾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로,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스테레오-타입화된 디스플레이 방식보다 능동적인 참여를 관람객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3. 컬러 라이즈

9k=<그림 9,10,11>  ‘미인’

2015년에 기획되었던 ‘미인’ 전은 말 그대로 ‘미인화’를 보여주는 전시였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여인의 삶을 따라 여인에게 강요되고 책임 지워지는 다양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꿈 등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전시된 작품들은 소녀의 초상에서부터 기생의 삶까지 다양한 면면을 담겨 있습니다) 관람 순서에 따른 다양한 감정선을 위해 해당 섹션마다 고유의 색을 부여하고, 그 색들의 흐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시의 맥락이 이해되도록 직관적인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4. 시노 그라피

2Q==<그림 12,13,14>  ‘이중섭은 죽었다’

국민화가 이중섭의 100주년 기념전 - ‘이중섭은 죽었다’를 준비하면서 이중섭의 일대기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인생과 생각을 마음속에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 시대의 신문이나 서적들을 찾아보며 꼭 그 사람의 이야기뿐만이 아닌, 그 시대의 공기를 느껴 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때 당시에 쓰였던 조판 스타일이나 광고, 그리고 거기에 쓰인 폰트, 어투… 이런 것들이 하나로 모여 거대한 정서(분위기)를 만들어 주게 말이지요. 자료를 찾고, 그의 도판을 정리하며 전시를 기획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전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과 정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구하고, 조금 더 깊숙이 그를 이해해 보고자 그의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실제로 재현하고, 그곳에 해당 작품을 거는 방법으로 연극에서 시도되는 기법인 ‘시노 그라피’를 도입해 보았습니다. 세트가 ‘배경’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닌, 거대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말이지요.

 

5. 작품은 어렵게, 인터페이스는 쉽게

9k=<그림 15,16,17>  ‘연애의 온도’

2016년도 전시였던 ‘연애의 온도’는 소위 말하는 ‘서울미술관 전시 스타일’의 시작입니다. 쉽지 않은 작품들을 대중이 잘 아는 주제로 녹여 맥락 안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파이’ 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기획이었죠. 누구나 다 아는 주제인 ‘사랑’, ‘연애’를 단순한 맥락으로 나누어(온도차) 부담 없이 전시에 접근하게 하였으며, 그 안에서 인증숏을 찍으며 전시에 대한 경험을 sns상에 마음껏 공유하게 한 첫 번째 전시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다행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연애의 온도’ 전시는 그동안의 서울미술관 관람객 동원수를 모두 갱신하며 이후 2021년에 열린 ‘연애의 온도-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6. 동시대성 / 동시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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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19>  ‘디어마이 웨딩 드레스’

‘디어 마이웨딩드레스’는 저에게도 ‘아픈 손가락 같은 전시’입니다. 야심 차게 준비했고, 제작비도 꽤 들었지만 가장 낮은 관람객 수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시장에 와주신 분들은 전시를 너무나도 좋아해 주셨고, 정성 어린 후기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자의 의도가 너무 큰, 그래서 마치 관람객을 가르치려 한 태도가 문제였다고 내부적으론 분석하고 있습니다. 늘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기획자로서, 이렇게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땐 조금 더 세심해야 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코로나 기간임에도 10만 명이 넘게 찾아주신 ‘보통의 거짓말’ 전은 여러모로 관람객들에 대한 배려와 주제에 대한 접근, 그리고 다루고 싶은 이야기의 보편성에 대한 균형을 잘 잡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 20>  ‘보통의 거짓말’

새로운 시대의 ‘변화한 대중’

요즘 많은 전시는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으며 전시실에서의 촬영이 불가할지라도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관람객들이 하다못해 ‘원본이 아닌 모작’을 배경으로라도 본인의 사진을 담아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관객은 그곳에서 줄을 지어 사진을 담고(Take), 그 기록을 SNS상에 공유(Share)합니다. 예술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누며,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함께 작품과 함께 있었다는 경험(!)을 공유하길 원하는. 새로운 대중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 그랬듯, ‘예술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디지털’을 만나 ‘발현’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경험과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 대중들은 쏟아지는 ‘이미지’들을 ‘경험’하며 몰입해 새로운 ‘즐거움’을 누립니다. 이는 과거의 전시가 ‘감상’으로 ‘독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기획되었다면 지금의 전시는 ‘경험’으로 쓰이고 읽혀야 한다는 것도 고려하며 기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대중은 ‘변화’했습니다. 과거의 대중이 수동적인 모습으로 예술 콘텐츠를 ‘감상’했다고 한다면, 이 시대의 대중은 직접 그 예술로 뛰어들어 온몸으로 그 감흥을 누리고 느껴서 그 경험을 ‘이미지화’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공유하여 타인과 예술적 감흥을 나누는 행위까지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이 ‘하이-테크놀러지화’ 된 이유도 있고,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환경이 ‘디지털화’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총체적인 새 예술을 만들 뿐 아니라 감상자의 형태(혹은 자세)에도 변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대중 역시 앞으로는 제도화된 교육 아래 학습해왔던 ‘감상’이라는 문자 중심적 수용 형태를 버리고, ‘경험’을 통해 새로운 ‘총체적 감흥’을 예술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대중들의 예술 경험(Art experience)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며, 이를 통해 더욱 풍성해진 새 예술(New-Art)의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출처=한국화랑협회

<편집자 주 : 본 원고는 2022년 7월 (사)한국화랑협회에서 주최/주관한 갤러리스트 아카데미 2022 중급과정 7강 “변화하는 전시 트렌드”에서 강의한 류임상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강연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본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은 강연자인 류임상에게 있으며 불법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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