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스케치나 에스킷(미술용어로,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그려 보는 일종의 콘티)은 따로 없고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 그냥 감각이 시키는 대로 그려나가요. 그것이 선천적 기억인지(예를 들면 전생이라던가) 후천적 반응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이끌린 듯 그림을 그려나가요. 아마도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에고(무의식)인 것 같아요. 예술이 꼭 이성적 사유의 결과물일 필요는 없잖아요. 제 감각과 무의식의 세계가 마티에르 기법(작품이 만들어내는 화면의 질감)에 어우러져 작품화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유희예요.”
류제봉 화가의 부친은 육군 대령 출신이다. 류제봉 화가는 서너 살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엄마 손 잡고 시장에 갔다 온 날이면 이런저런 시장 풍경을 실감 나게 그려내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에는 한때 연극 무대에 오른 적도 있었으나 왠지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해 그만두고 그림에만 전념했다.
어느덧 류제봉 화가의 그림 인생도 4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미술대전, 경남미술대전, Korea Art Net Competition Festival(21C 미술관), 2004 부천 테크노파크 공모전, 2019 피카디리 국제아트페스티벌 등 수많은 대회에 입상해 화가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현재 한국미협, 한국 전업작가회, 이후회, 신구회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의 그림은 삼진미술관(마산), 인천 과학고등학교, 중경고등학교, 국방부, 마산 파티마병원, 부천 테크노파크 SK社 외 다수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좀 더 우월한 점은 마음의 능력일 것이다. 자연과 생명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과 아름다움. 나의 그림은 그것들을 마음으로부터 되새겨낸다. 내 마음 속 세계가 캔버스에 종이에 색채로 형상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남겨지는 작품들. 그것이 나의 삶 인 듯하다."
류제봉 화가는 이미 60을 넘긴 나이지만 외모는 여느 20대 못지않다. 성격은 밝고 쾌활하며 자유분방하지만, 또한 절제가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음도 젊다. 젊다는 것은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매주 한 번씩 이 땅 위에 살다 죽어간 모든 영혼을 위한 미사를 올린다. 생명은 축복이다. 그 축복을 다 누리고 간 자는 간 자 대로, 또 그것을 다 누리지 못한 자는 못 한 자 대로 감사와 위로의 기도를 올린다. 그녀는 인천 계양산의 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으로도 유명하다. 벌써 7년째, 이삼십 마리의 고양이들 먹이를 챙겨주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계양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영감이 떠오르거나 그림에 대한 욕구가 발동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가세한 듯. 나의 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민첩하게 색채로 흐른다. 마음이 평안할 때도 마음이 힘들 때도 그림으로 승화되어진 작품들은 내 눈에는 모두 순탄할 뿐이다."
류제봉 화가는 정물, 풍경, 누드 등을 즐겨 그린다. 그녀의 풍경화 속에는 수많은 집이 등장하는데 마치 초등학생의 그림을 보는 듯,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그 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리움인지 고독인지, 또는 어떤 기원인지 열망인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그림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진한 전율을 느낀다. 누드화도 자주 그리지만, 그녀의 누드화는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오히려 그림 속 인물의 삶 속 깊이 감정이입이 되는 듯하여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화가 모딜리아니를 좋아합니다. 그의 삶은 짧고 강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남겼지요. 인물표현에서의 단순성과 절제의 미,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동공 없는 눈빛, 기다란 얼굴과 목은 그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듯해요. 작품 속에 아무도 풀 수 없는 작가만의 세계를 간직하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과 다른 해석들을 지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음에 예술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과 교감의 통로를 공유할 수 있어 매력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 다음은 류제봉 작가와 인터뷰>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만3,4세 정도일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본 적이 있다.
그 때 시장에서 본 것들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즐겁게 표현하였던 부모님과 나의 기억 속 추억이 남아있다.
그 후로 눈에 보여지는 사물들.. 사람들, 주변의 동물들을 크로키로 스케치로 그려내고는 했었던 어린시절. 타고난 재능이었음에 감사한다.
하늘의 구름 속에서. 같은 문양이 반복되는 벽지의 무늬 속에서도 난 나름대로의 또다른 형상들을 지어내고는 했다.
無에서 有를 창조해내는 혼자만의 넋 나간 멍때리는 시간들은 늘 즐거운 유희다.
마음 속 세계가 캔버스에 종이에 색채로 형상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남겨지는 작품들. 나의 삶인 듯.
젊은시절 이렇게 끄적여진 작품들은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한 전국공모전에서 좋은 성과와 결과를 얻으면서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구체화시켜 2022년 현재 300여회의 국내외 그룹전과 34회의 개인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