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금박·숯 사용한 혼합재료 회화, 빛과 움직임으로 재해석
존엄의 의미를 상처와 회복의 시각적 흐름으로 표현
베니스 비엔날레 2024·2026 연속 초청된 현대 추상미술가 작품
현대 추상미술가 오지윤 작가의 대표 연작 'DIGNITY'가 서울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의 옥외 미디어월을 통해 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공개되었다. 이번 전시는 2024년과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연속 초청된 오 작가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며, 지난달 30일 오후 2시에 데몬스트레이션 형식으로 처음 선보였다. 이후 8월 6일까지 신세계 명동 본점 외벽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DIGNITY'는 단순히 회화 원작을 영상으로 변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캔버스에 축적된 재료의 밀도와 반복되는 구조, 인간 존재와 존엄에 관한 철학적 메시지를 빛, 움직임, 시간의 언어로 재구성한 작업이다. 오 작가의 'DIGNITY series'(2022)는 한지와 24K 금박, 숯 등을 사용한 혼합재료 회화로, 금빛과 흑색의 강렬한 대비, 반복되는 수직적 리듬, 중첩된 표면과 물질적 밀도가 특징이다.
작품에서 한지는 인간 삶의 시간과 흔적을 담고 있으며, 숯은 소멸과 상처, 기억의 잔여를 상징한다. 금박은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을 나타내며, 서로 다른 재료들은 화면 위에서 충돌하고 겹쳐져 질서와 균열이 공존하는 회화적 장을 형성한다.
이번 미디어아트에서는 이러한 조형 언어가 빛과 입자, 낙하와 부유, 응집과 분열, 해체와 재구성의 흐름으로 변환된다. 어둠 속에서 미세한 입자가 떠오르고, 수직의 형상이 형성됐다가 흔들리고 분리되며 새로운 구조로 수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정된 이미지를 반복하는 대신, 형상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간적 사건으로 제시하여 관람객들이 '존엄'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번 미디어아트는 원작에 잠재된 생성의 과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입자들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형상이 생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장면은 홍 박사가 언급한 '생산적 경계(Productive Edge)'와 연결된다. 이 개념은 완전한 혼돈도 확정된 질서도 아닌, 여러 힘과 가능성이 만나 새로운 형상이 출현하기 시작하는 불안정한 문턱을 의미한다.
영상 속의 'DIGNITY'는 이러한 문턱을 움직이는 이미지로, 형상은 처음부터 완결된 상태로 등장하지 않으며, 흔들림과 분열을 통해 하나의 방향과 밀도를 획득한다. 이는 오 작가가 탐구해온 인간 존엄의 의미와도 일치하며, 존엄은 상처가 없는 완전한 상태가 아닌, 훼손과 혼란 속에서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존재의 힘으로 나타난다.
특히 금빛은 영상 안에서 장식적인 광채가 아닌, 어둠과 파편 사이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내면의 빛으로 표현된다. 원작의 물질적 금박은 디지털 화면에서 빛의 입자와 움직임으로 변환되어, 존엄이 고정된 관념이 아닌 끊임없이 회복되고 다시 출현하는 생명적 힘임을 보여준다.
'DIGNITY'는 더 이상 벽에 고정된 한 점의 회화로 머물지 않고, 빛과 입자, 움직임과 시간으로 확장되어 서울 도심의 공간과 관람객들의 시선을 하나의 거대한 관계적 장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상영은 회화의 물질성과 디지털 기술, 인간 존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하나의 작품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오 작가의 'DIGNITY'가 지닌 조형적·철학적 가능성을 동시대 도시 환경 속에서 새롭게 제안한다.
이번 상영은 디지털미디어아트페스타 2026 초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백남준문화재단과 KOVACA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하나은행이 후원한다. 오 작가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존엄을 주제로 작업해 온 현대 추상미술가로, 한지와 옻칠, 금박, 숯 등 한국적 재료를 현대 추상의 조형언어로 확장하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2024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방글라데시 국가관에 참여한 데 이어, 2026년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탄자니아 연합공화국 국가관에도 초청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