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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진실은 없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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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끝났다. 질문은 이제 시작된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데미안/데이미언 표기 선언, "예술은, 통하면 된다"    ⓒ엄미영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데미안/데이미언 표기 선언, "예술은, 통하면 된다"    ⓒ엄미영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자이기도 해서, 이름 하나에도 표기법을 따진다. 정식 표기는 '데이미언 허스트'. 그런데 검색창에 사람들이 치는 이름은 온통 '데미안'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데미안이라 부르며 쓰려 한다 - 정확한 이름보다 통하는 이름으로. 어차피 이 글이 하려는 말도 그것이니까. 예술은, 통하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지하1층 로비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으로 꾸며진 허브공간      ⓒ엄미영
국립현대미술관 지하1층 로비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으로 꾸며진 허브공간      ⓒ엄미영

숫자부터 적는다. 54만. 지난 6월 28일 막을 내린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의 최종 관람객 수다.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 이 전시는, 열리기 전부터 닫힌 뒤까지 한 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말들은 잇따랐다. 철 지난 작가에게 국립미술관이 왜 이 돈을 쓰는가. 동물권 진영은 작가의 작업에 쓰인 동물이 상어부터 나비까지 수십만 개체에 이른다고 규탄했다.

그리고 개막일, 작가는 카메라 앞에서 거침없는 쇼맨십을 보였으나 정작 기자들의 질의응답은 받지 않았다. 진실은 없다고 제목 붙인 전시에서, 질문마저 없었던 셈이다.

논란 정리: 왜 시끄러웠나, 논란이라는 포름알데히드의 상어작품            ⓒ엄미영
논란 정리: 왜 시끄러웠나, 논란이라는 포름알데히드의 상어작품            ⓒ엄미영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비판이 전시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는 사실이다. 논란이 궁금증이 되고 궁금증이 줄이 되었다. 허스트에게 논란은 사고가 아니라 재료에 가깝다. 포름알데히드가 상어의 부패를 멈추듯, 논란은 작가의 소멸을 멈춘다.

 그렇다고 전시장이 소문으로만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니다. 수조 앞에 서면 상어는 삼십 년 넘게 벌린 입을 다물지 않은 채 관객을 향해 있다. 죽은 것이 이렇게 오래 마주 본다는 사실 앞에서 발이 잠시 멈춘다. 나비 날개로 짜 올린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의 창처럼 빛났고, 그 아름다움이 수천의 죽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죽음을 사유가 아니라 경험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

데미안 허스트 작품 세부. 논란은 작품 밖에서 이어졌지만,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엄미영
데미안 허스트 작품 세부. 논란은 작품 밖에서 이어졌지만,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엄미영

그것이 이 작가가 해온 일이라는 걸 전시장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납득시켰다. 논란은 시끄러웠으나, 작품은 조용히 제 일을 하고 있었다.

팜플렛: "진실은 있다"로 다시 걷기   국립현대미술관 진입전시 카피       ⓒ엄미영
팜플렛: "진실은 있다"로 다시 걷기   국립현대미술관 진입전시 카피       ⓒ엄미영

 기자는 전시장에서 팜플렛으로 제목의 끝 두 글자를 가려 보았다. '진실은 없어'가 '진실은 있다'로 바뀌는 데 종이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들고 전시를 다시 걸었다. 수조 안의 상어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죽은 동물이다.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덮고 있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가장 화려한 표면 아래 가장 오래된 질문이 놓여 있었다.     ⓒ엄미영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덮고 있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가장 화려한 표면 아래 가장 오래된 질문이 놓여 있었다.     ⓒ엄미영

해골을 덮은 다이아몬드 8,601개는 은유가 아니라 실제 가격이다. 전시에 투입된 예산은 담론이 아니라 실제 세금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명제가 가리는 것은, 가능해진 모든 것에 어김없이 붙는 실재의 청구서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노트 앞. 작품보다 먼저 관객을 멈춰 세운 것은 작가의 문장이었다.     ⓒ엄미영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노트 앞. 작품보다 먼저 관객을 멈춰 세운 것은 작가의 문장이었다.     ⓒ엄미영

그리고 전시장 벽에서 작가의 말을 만났다. "삶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다." 진실은 없다고 선언한 작가가 자기 입으로 하나의 진실을 못 박고 있었다. 상대주의자의 전시장 한가운데 단언 하나가 걸려 있는 이 풍경 앞에서, 팜플렛을 들 필요조차 없었는지 모른다. 제목을 배반한 것은 기자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먼저였으니까.

아카데미 시즌2 강좌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7회차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강연자는 설치미술가 최정화, 그가 내건 명제는 '당신이 예술이다'    ⓒ엄미영
아카데미 시즌2 강좌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7회차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강연자는 설치미술가 최정화, 그가 내건 명제는 '당신이 예술이다'    ⓒ엄미영

 전시를 본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기자는 전시실을 나와 같은 층의 다원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십 미터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그곳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아카데미 시즌2 강좌 '한국미술의 실험, 현실, 혼성'의 7회차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강연자는 설치미술가 최정화, 그가 내건 명제는 '당신이 예술이다' 였다. 한쪽 벽은 진실이 없다 했고, 벽 하나 건너 다원공간은 당신이 예술이라 했다. 54만 명이 박제된 죽음을 보려 줄을 서는 동안, 같은 층의 수강생들은 살아 있는 자신이 작품의 자리에 호명되는 것을 들었다. 미술관은 이 두 문장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죽음을 팔던 손과 삶을 돌려주던 손은,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알았을까?

진실은 있다.당신은 무엇을 진실이라 믿는가?  예술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엄미영
진실은 있다.당신은 무엇을 진실이라 믿는가?  예술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엄미영

삶과 죽음이 불가분이라던 작가의 말이 옳다면 - 그 오십 미터야말로, 전시가 끝난 이 한여름에도 여전히 걸어볼 만한 거리 아닐까.

진실은 있다.

당신은 무엇을 진실이라 믿는가?

예술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글·취재·사진 | 엄미영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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