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질문은 분명하다. 사회라는 구조가 개인의 정신과 신체에 어디까지 스며드는가에 대한 탐구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작품의 출발점을 “사회 속 개인의 삶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다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에 잠기는 듯한 감각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삶에 잠기는 느낌을 파도처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현오, 〈첫 비행〉, 2025,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panel, 194 × 261cm. 인가희갤러리 제공. 사진: 최철림.
(작가노트 중)
"나는 순응하며 흘러가고 있나, 아니면 거슬러 저항해 날아가고 있나?" 모든 작업은 이 질문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이따금 삶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 이토록 자유롭고 어째서 이리도 무거운 걸까. 사회로부터 전가된 자유와 책임은 분리되지 못하고 개인에게까지 밀물처럼 떠밀려왔다. 삶의 주체자로 서 있고 싶었기에, 상황이 어디까지 개인을 압도할 수 있는지 주목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Q.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A. 이번 전시는 사회가 개인에게 어디까지 침투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습니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을 ‘바다’로 설정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특정 인물이 아닌, 우리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 익명의 인물 형상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푸른 새벽, 사유가 깊어지는 시간
현오, 〈야간 비행〉, 2025,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panel, 27.4 × 34.8cm. 인가희갤러리 제공. 사진: 최철림.
Q.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푸른색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A. 겨울 바다이면서 새벽의 톤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습니다. 제가 푸른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푸른색이 그림자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 색이라고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인물의 ‘그림자 면’을 조명하는 성격이 강해서 푸른색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바다의 이미지와도 잘 맞고요.
Q. 푸른 새벽의 톤이었군요, 작가님께는 '새벽'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A. 저에게 새벽은 두렵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보통 새벽 3~4시에 잠이 드는 편이라 늘 새벽에 깨어 있어요. 새벽이 주는 느낌에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다음 날이 버겁게 느껴질 때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새벽은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전경 (사진. 최철림, 인가희갤러리 제공)
Q. 작품 중 '그믐달'에 담긴 의미가 있나요?
A. 그믐달이 음력으로 따지면, 달의 가장 마지막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그믐달이 지고 나면, 다시 초승달부터 새롭게 시작이 된다고 해요. 제가 작업에서 다룬 모습이 '새벽에 잠겨 있는 사람들'처럼 어두운 시간을 나타내는데, 그 어두운 시간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메세지를 담고 싶어서 그믐달을 그렸습니다.
현오, 〈그믐달〉, 2025,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panel, 40 × 40cm. 인가희갤러리 제공. 사진: 최철림.
보통의 위로를 건네는 그림
현오, 〈그날의 바다〉, 2025,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panel, 130 × 194.3cm. 인가희갤러리 제공. 사진: 최철림.
Q.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A. 특별한 누군가라기보다, 정말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있습니다. 제 작품에 인물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제 작업실에 인물 그림이 많이 깔려 있는데, 그 인물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으면 서로 의지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Q. 작가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위로를 받고 있단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A. 제가 말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는 서툰 편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런 제 마음이 느껴지셨다면 다행입니다.
(작가 노트 중)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계속해서 화면 속 인물들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마주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구현하고 있는 대상에 대입과 타자화를 반복한다. 개별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는 각각의 얼굴들은 중심을 잃지 않고 작업해 나갈 수 있도록 준거점이 되며, 작업의 지속을 돕는다. 이 도움으로 인해 이러한 과정과 행위는 현대사회에서 생존해 나갈 수 있는 내 개인의 수단으로서도 작용한다.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이를 실제 관객의 감각과 연결 지어 작업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들은 서로 결함이 있다는 연결성을 가지며,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이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세지로 읽히고자 한다. 살아있다는 괴로움이 무한히 덮쳐온다 해도 언젠가 떨쳐내고 비행할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온다는 것을 안다. 저 멀리 있는 빛이 나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기를, 또 죽음이라는 닫힌 미래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만화적 컷과 회화의 결합 실험
현오, 〈물가로 가는 길〉, 2025, Acrylic on Korean paper mounted on wood panel, 162 × 112cm. 인가희갤러리 제공. 사진: 최철림.
Q. 만화적 프레임을 회화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흥미롭습니다.
A. 저는 회화 작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웹툰 그림 작업도 하고 있다보니 그러한 저만의 특색을 회화에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만화책의 특징 중 하나가 검은 컷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전체를 검은 테두리로 둘러싸거나, 그림 속에 검은 프레임을 두면, 그림에 더 집중되는 효과와 더불어 관람자의 시선에 시간 차를 둘 수 도 있어요.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죠. 현재는 가벼운 시도를 해보며 연구 중입니다. 앞으로 작업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고 싶습니다.
스며드는 감정의 층위
Q. 한지에 아크릴 물감을 얇게 쌓아올리는 작업 방식이 인상 깊어요.
A. 아크릴을 묽게 풀어서 여러 겹 쌓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두텁게 올리기보다는 맑은 층이 축적되는 느낌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화면이 탁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스며드는 재료에서 제가 원하는 텍스처가 더 잘 나온다고 느끼기에, 한지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한 번 스며들면 복구가 안 되기에, 처음부터 비워둘 공간을 계산하고 들어갑니다. 농도 조절과 밀도 조절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작가 노트 중)
감청색으로, 곱고 차분히 빛나는 남빛의 색이다. 남색의 아크릴 물감과 먹을 물에 아주 묽게 개어 장지 위에 수십 번 수백 번을 쌓아 올려 단단한 밀도를 만들어낸다. 차분하게 자신만의 밀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은 작업의 전반적인 구조를 이루며, 작업 태도에 대한 시각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
전시전경 (사진. 강혜영)
Q. 마지막으로, 올 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A. 현재 개인전이 진행 중이고, 4월에는 국내 아트페어 프리뷰, 6월에는 바르셀로나 2인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또 키아프 참여 가능성도 있고, 12월에는 부산에서 2~3인전을 계획하고 있어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장기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은 아닙니다. 대신 하루를 알차게 보내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가 쌓여 1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고, 그 안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전시전경 (사진. 최철림, 인가희갤러리 제공)
전시전경 (사진. 최철림, 인가희갤러리 제공)
현오 작가의 개인전 《새벽에 남은 새》는 용산구에 위치한 인가희갤러리에서 2월 25일까지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