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 르네상스의 균형과 조화가 서서히 빛을 잃어갈 무렵, 유럽 미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톨릭 교회는 종교개혁으로 흔들린 신앙심을 되찾기 위해 예술을 선전의 수단으로 삼았고, 그 결과 감정적이며 극적인 표현이 가득한 바로크 미술이 탄생했다. 질서와 이성이 중심이던 르네상스와 달리, 바로크는 인간의 감정과 신앙의 열정을 화면 전체에 폭발시키며 보는 이의 심장을 직접 흔들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인물은 카라바조다. 그는 극적인 명암 대비를 통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그의 그림에서는 성인조차 인간적인 결함을 가진 존재로 등장하며, 신성은 하늘이 아닌 현실 속에서 표현되었다. 조각가 베르니니는 대리석 안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간의 열정을 담았다. 그의 작품 ‘성 테레사의 황홀경’은 신앙의 황홀함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북유럽의 바로크는 이탈리아와는 다른 내면적 흐름을 보였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는 개인의 신앙과 인간의 고독을 깊은 명암 속에 담았다. 그는 화려함 대신 사색과 빛의 서정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했다. 같은 시기의 베르메르는 일상의 고요한 순간 속에서 빛의 신비를 포착하며 정제된 감정의 바로크를 완성했다. 그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일상 속의 신비와 순수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바로크의 긴장감은 점차 느슨해졌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왕권의 절대성과 귀족사회의 향락이 결합한 새로운 미술, 로코코가 등장했다. ‘조개무늬’를 뜻하는 로코코는 가벼운 곡선, 파스텔톤, 장식적인 우아함으로 대표된다. 베르사유 궁전 이후 귀족들은 정치보다는 살롱 문화와 사교의 미학을 즐겼고, 예술은 그들의 일상을 장식하는 역할로 변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