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현재, 세계 미술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고금리 장기화로 고가 작품 거래가 위축되는 반면, 중·저가 작품 중심의 거래량이 늘며 시장 체질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UBS와 아트바젤이 공동 발표한 ‘2025 글로벌 아트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약 575억 달러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특히 1,000만 달러 이상 ‘트로피급’ 작품 거래가 급감한 반면, 10만 달러 이하 중저가 거래 비중은 확대되며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 둔화 속에서 소형 갤러리와 신진 컬렉터층이 새로운 수요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2025년 상반기 경매 매출은 22억 달러로 전년 대비 1%가량 하락했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영국은 24% 이상, 중국은 26% 가까이 감소하며 지역별 격차가 뚜렷해졌다. 고가 작품 매출이 줄면서 주요 경매사들은 프라이빗 세일(비공개 거래)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금리와 환율, 지정학적 요인이 겹친 영향도 크다. 미술품은 본질적으로 ‘사치재’ 성격을 띠기 때문에 금리 상승과 소비 위축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2025년 들어 인플레이션과 무역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컬렉터들은 가격 민감적으로 전환했고, 초고가 시장의 관망세는 더 짙어졌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정책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 6월, 미술품 부가가치세(VAT)를 기존 22%에서 5%로 대폭 인하했다. 이는 프랑스(5.5%), 독일(7%)과의 세율 격차를 해소하고 내수 시장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다. 현지 갤러리 협회는 “세제 완화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던 거래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페어 업계의 전략 변화도 두드러진다. 10월 14일자 파이낸셜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아트바젤은 “VIP”라는 명칭을 공식 폐지하고 대신 “Collector & Institutional Relations(컬렉터 및 기관 관계)” 부서를 신설했다. 이는 권위적 이미지로 굳어진 VIP 제도를 해체하고, 젊은 컬렉터와 기관 중심의 개방적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아트바젤은 내년 2월 도하에서 열릴 카타르 바젤을 새로운 실험의 무대로 삼고 있다.
한편, 같은 시기 프리즈 아트페어는 런던과 파리의 동시 개최를 통해 컬렉터 순환 동선을 극대화하며 “바벤하이머 효과”를 언급했다. 이는 예술 산업이 침체 국면에서도 관람 경험과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시장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결국 2025년 하반기 미술시장은 ‘고가 둔화·저가 확장’, ‘공개 축소·프라이빗 강화’, ‘폐쇄형 페어에서 관계 중심 페어로의 전환’이라는 세 축으로 요약된다. 세제 개혁, 금리 안정, 신흥시장 컬렉터 유입이 맞물릴 경우, 2026년 시즌에는 완만한 회복 국면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술이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문화적 관계’로 이동하는 지금, 시장의 미래는 더 이상 최고가 경매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미술은 다시 사람과 사회, 그리고 시대의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