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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시간을 조각하다...장미셸 오토니엘의 빛과 기억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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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짐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아름다움, 유리로 감정을 노래하는 조각가

유리로 시간을 조각하다...장미셸 오토니엘의 빛과 기억의 미학

프랑스 출신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1964~)은 유리와 빛, 그리고 기억의 언어로 예술을 펼치는 조각가다. 그는 단단한 물질을 다루지만, 언제나 그 결과물은 유연하다. 유리라는 재료를 통해 투명함, 반사, 굴절,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물질보다 감정이 먼저 느껴진다. 차가운 유리가 아닌, 인간의 마음이 반짝이며 흔들리는 듯하다.

오토니엘은 1990년대 초부터 유리, 황, 왁스 같은 불안정한 물질을 다뤄왔다. 불에 녹고 다시 굳어지는 과정 속에서 생명처럼 숨 쉬는 유리의 성질은 그의 예술세계의 핵심이 됐다. 그는 불완전한 재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부서짐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완성보다 과정에 가깝다. 녹고, 식고, 다시 빛을 머금는 순환의 미학이 담겨 있다.

대표작 ‘원더 블록스(Wonder Blocks)’는 투명한 유리 벽돌로 쌓은 구조물이다. 건축적인 형태를 띠지만 질서보다는 감정의 흐름이 중심이 된다. 유리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시간에 따라 색을 바꾸며, 관객의 시선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인다. 작품은 조각이면서 동시에 빛의 회화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오토니엘은 그 변화 속에서 ‘빛의 시간’을 조각한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트레저 가든스(Treasure Gardens)’ 전시는 그의 예술 세계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였다. 도시 속에서 정원을 만들고, 유리 조각을 나무 사이에 매달아 햇빛과 함께 움직이게 했다. 덕수궁 정원과 미술관 야외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사용해, 관객이 자연 속을 걸으며 예술과 마주하게 했다. 그는 이 전시에 대해 “정원은 인간이 만든 자연이며, 예술은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조각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다. 시간, 바람, 빛이 모두 작품의 일부로 작용한다.

오토니엘의 유리 작품은 화려하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그의 조형은 반짝임보다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유리는 빛을 받아 반사하지만 동시에 감춘다. 투명하지만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는 이 모순된 속성에서 인간의 감정을 읽어낸다. 그는 “유리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의 유리에는 미세한 기포가 있고, 균열이 있으며, 두께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균일함이 작품에 생명을 부여한다. 인간의 감정이 완벽하지 않듯, 유리의 불완전함도 오히려 진짜의 아름다움을 만든다.

벽면 설치작품 ‘프레셔스 스톤월(Precious Stonewall)’과 ‘오라클(Oracle)’ 시리즈는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유리 벽돌을 쌓아 만든 구조물이다. 각각의 벽돌은 기억의 단면처럼 서로 다른 빛을 품는다. 이 벽은 차단이 아니라 연결의 상징이다. 관객은 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투명함 속에 스스로의 감정을 투영한다. 작품은 말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비추고 있나요?”

오토니엘의 예술은 화려함보다 절제에서 힘을 얻는다. 그의 유리는 단단하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투명하지만 스스로를 숨긴다. 그가 빛으로 쌓은 공간은 명상처럼 조용하다. 보는 이는 유리의 반사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의 체험이 아니라 내면의 대화다.

그의 예술은 결국 물질의 세계를 넘어선 감성의 시학이다. 유리를 통해 그는 ‘깨지지 않는 투명함’이 아니라 ‘깨지면서 더 빛나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그에게 조각은 언어이고, 빛은 문장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이렇게 속삭인다. 모든 부서짐은 결국 다시 빛으로 돌아간다고.

장미셸 오토니엘은 파리에서 활동 중이며,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 퐁피두센터 등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와 서울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고, 최근까지도 세계 여러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은 예술과 자연, 인간의 감정이 만나는 경계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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