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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무라카미 다카시, 귀여움의 미소에 겹겹이 숨겨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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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팝, 그리고 소비사회의 단면

영상=한국미술신문 윤혜현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APMA 캐비닛에서 열리는 다카시 무라카미 개인전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은 단순히 여름날의 화사함을 전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웃는 꽃, 만화경 같은 색감, 네온처럼 반짝이는 화면은 한눈에 ‘귀엽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무라카미의 예술은 결코 한 겹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는 전통과 대중, 심각함과 장난스러움, 희망과 불안을 끝없이 병치하는 ‘레이어드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대표작 〈Summer Vacation Flowers under the Golden Sky〉(2025)는 금박 바탕 위에 꽃들이 파노라마처럼 만개한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 곳곳에 해골 문양이 은근히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찬란한 금빛과 웃는 꽃 사이에서, 생명의 덧없음과 소비사회의 그늘이 동시에 읽히는 순간이다. 무라카미 특유의 ‘귀여움 뒤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Tachiaoi-zu, 2025 / 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frame / 152 × 190 cm 
Tachiaoi-zu, 2025 / Acrylic and gold leaf on canvas mounted on aluminum frame / 152 × 190 cm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Tachiaoi-zu〉(2025)다. 일본 전통회화의 거장 오가타 코린이 남긴 병풍화 〈국화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금박 바탕에 붉고 흰 접시꽃이 정갈하게 배열돼 있다. 그러나 전통적 장인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무라카미는 아크릴과 금박이라는 현대적 재료를 쓰고 팝아트적 색감을 입혔다. 그 결과 작품은 전통 병풍화와 팝아트 사이 어딘가에 놓인다. 표면적으로는 화사한 꽃 그림이지만, 그 속에는 일본 회화사의 뿌리와 동시대 시각 문화의 감각이 동시에 겹쳐 있다. 무라카미가 단순히 ‘팝 아티스트’로 불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ello Flowerian, 2024 /FRP, urethane paint, stainless steel, corian base /72.5 × 44.6 × 22.6 cm /Ed. AP 2/2 + Ed. 3
Hello Flowerian, 2024 /FRP, urethane paint, stainless steel, corian base /72.5 × 44.6 × 22.6 cm /Ed. AP 2/2 + Ed. 3

조각 작업 〈Hello Flowerian〉(2024) 또한 흥미롭다. 꽃 얼굴을 한 작은 인물상이 좌대 위에 서 있는데, 한 점은 무지개색으로 채색되었고, 다른 한 점은 반짝이는 금박으로 마감됐다. 귀엽고 장난스러운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전후 일본 사회의 불안과 집단 무의식이 켜켜이 얹혀 있다. 마치 아이의 미소처럼 보이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단순히 사랑스러운 이미지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무라카미의 세계는 언제나 다층적이다. 그는 도쿄예술대학에서 니혼가를 전공하며 전통 회화의 기법을 익혔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정통 회화가다. 그러나 그는 그 전통에만 머물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망가, 오타쿠 문화, ‘카와이’ 미학을 덧입히며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슈퍼플랫’이라는 이름으로 압착시켰다. 1990년대 후반 선언한 ‘슈퍼플랫’ 미학은 그가 세계 무대에 선명히 각인된 계기였다. 이후 루이비통과의 협업, NFT 프로젝트,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를 통한 젊은 작가 지원까지, 그의 행보는 늘 동시대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실험이었다.

화면 속 웃는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 전통 병풍화의 금박과, 만화적 패턴의 반복, 대량 생산된 상품 이미지와 장인적 수공의 섬세함이 겹겹이 쌓인 아이콘이다. 관객은 한 송이의 꽃을 통해 동서양의 미학, 소비문화의 흐름, 그리고 사회적 불안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다. 무라카미의 꽃은 미소 짓지만, 그 미소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꽃의 얼굴 뒤에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통찰, 일본 사회의 역사적 상처, 그리고 오늘날 글로벌 아트마켓의 복잡한 지형도가 포개어져 있다. 관객이 끝내 되묻게 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귀여움은 정말로 귀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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