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창열미술관에서 관장을 만나다 …문화가 있는 날의 특별한 경험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작품 넘어 미술관 품은 이야기 듣기

 

작품설명중인 양은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관장
작품설명중인 양은희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관장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영화 할인으로만 기억되는 날이지만, 나에게는 미술관이 먼저 떠오른다. 국공립 미술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때로는 그날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열리기도 한다. 지난 수요일, 나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준비한 독특한 프로그램, ‘관장이 직접 들려주는 전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보통 미술관에서 해설을 맡는 이는 도슨트나 학예사다. 그들의 설명은 전문적이고 차분하다. 하지만 미술관의 수장이 직접 관람객 앞에 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 관장은 행정과 운영을 총괄하는 자리이지, 해설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이 더욱 궁금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오후 3시 반, 미술관 로비에 소형 앰프가 설치되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양은희 관장의 첫 인사와 함께 해설이 시작되었다. 로비에 설치된 작품 설명에서부터 중정에 놓인 작품의 탄생 과정, 그리고 미술관 건축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작품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가진 이야기들이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살아 움직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미술관은 건축 그 자체로도 작품이 된다”는 대목이었다. 김창열 화백의 작품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 어떤 건축적 장치들이 고려되었는지, 빛과 그림자가 어떻게 작품과 어우러지는지 들으면서, 나는 눈앞의 미술관을 다시 보게 되었다. 건축이 단순히 ‘전시를 위한 그릇’이 아니라, 작가의 세계와 호흡하는 또 하나의 예술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이야기는 한층 깊어졌다. 작품의 제작 배경과 작가의 삶, 시대적 맥락이 관장의 설명 속에서 풀려 나왔다. 그저 물방울로만 보이던 화면이 이제는 작가의 치열한 사유와 세월을 담은 세계로 다가왔다. 해설을 듣는 동안 나는 단순히 ‘작품을 본다’는 차원을 넘어, ‘작가와 대화한다’는 기분을 느꼈다.

이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특별전’을 다녀온 직후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본 작품과 제주에서 다시 마주한 작품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화폭이 지역과 공간을 초월해 확장되는 듯한 울림을 주었다. 서울에서 느낀 김창열의 물방울은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났다면, 제주에서는 관장의 목소리와 함께 잔잔히 번져나갔다. 같은 작품이 다른 맥락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문화가 있는 날’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할인 혜택을 누리는 소비의 날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경험하는 시간이라는 것.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공간을 넘어,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공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 관장의 해설은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었다.

미술관을 나서며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예술이란 결국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창열 화백이 평생 그려온 물방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삶과 철학을 알게 될 때 비로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문화가 있는 날, 우리는 그 울림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날이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휴식’이자 ‘배움’의 시간이 아닐까. 관장의 목소리가 전해준 이야기는 내 안에 하나의 맑은 물방울로 자리 잡았다. 오래도록 증발하지 않고, 삶 속에서 반짝이며 빛날 것이다.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