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현정 개인전 《샐-카키-리프트 Sal-Khaki-Lift》, 증도의 소금 창고에서 자연과 예술의 새로운 변주를 선보이다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소금·갯벌·하늘을 모티프로 자연과 인간, 물질의 다층적 관계 탐구

신현정 개인전 《샐-카키-리프트 Sal-Khaki-Lift》가 전남 신안군 증도의 옛 석조 소금 창고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태평염전과 보글맨션이 함께 운영하는 ‘소금같은, 예술(Art Like Salt)’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되었으며, 작가가 두 달간 현지에 머물며 제작한 신작들을 공개하는 자리다.

신현정은 그간 주변 환경과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몸의 감각을 통해 흡수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감응을 예술로 치환하는 데 주목해 왔으며, 이번 증도 체류는 작가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강렬한 태양, 소금기 어린 공기, 끊임없이 부는 바람과 같은 증도의 자연적 요소는 그의 예술적 사고에 깊숙이 스며들어 전시 전반의 모티프로 자리 잡았다.

전시 제목인 《샐-카키-리프트》는 증도의 풍경을 구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에서 비롯되었다. 소금(Sal)은 정화와 물성의 변화를, 갯벌(Khaki)은 지상의 물질적 토대를, 하늘(Lift)은 비물질적 초월과 상승의 지향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이원론적 구도를 넘어서는 제3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이 맞닿는 접점을 예술적으로 제시한다.

작업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신현정은 붓이나 도구를 최소화하고 직접 손과 몸으로 물질을 다루는 방식을 선택했다. 증도에서 채취한 천일염과 펄을 활용해 천을 염색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선 수행적 행위였다. 물과 소금, 흙과 바람의 상호작용 속에서 색이 스며들고 무늬가 번져가는 과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작가가 말하듯 “자연에 몸을 내맡기고 주체를 내려놓는 행위”로 이어졌다. 이는 통제 대신 내맡김, 계산 대신 감각을 우선하는 태도로, 관객에게도 고유한 경험의 층위를 제공한다.

전시의 중앙 설치 작업은 증도 갯벌의 작은 구멍들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구멍 속에 살아가는 생물들은 땅과 하늘을 잇는 통로이자, 생명체의 상승과 초월을 향한 염원을 담고 있다. 신현정은 이러한 생태적 관찰을 바탕으로, 소금과 펄 염색, 그리고 천을 활용한 설치 작업을 통해 자연·인간·물질의 다층적 관계를 드러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조형적 아름다움을 넘어 생명과 환경을 매개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장소 또한 특별하다. 과거 소금을 보관하던 오래된 석조 창고는 오랫동안 기능을 잃은 공간이었으나,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신현정은 이 장소적 맥락을 존중하면서도 예술적 개입을 통해 공간을 재해석했다. 과거와 현재, 물질과 정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객은 단순한 작품 감상이 아니라, 장소성과 예술성이 맞물린 몰입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소금같은, 예술’ 레지던시는 풍부한 자연과 드넓은 갯벌, 국내 최대 규모의 염전이라는 증도의 환경을 기반으로, 작가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고 새로운 창작 방향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국제 공모를 통해 국내외 작가를 선정해 창작의 장을 열어주고 있으며, 이번 신현정의 전시 역시 그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이는 단순한 작품 발표가 아니라, 예술가와 지역, 자연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신현정은 그간 《림파 림파!》(갤러리 조선, 2023), 《멀베리, 락스, 아크릴의 상태》(인천아트플랫폼, 2022), 《우리 안의 공기》(갤러리 수, 2020) 등 개인전을 통해 꾸준히 자기만의 조형 언어를 탐구해왔다. 또한 아르코미술관, 일민미술관, 우란문화재단 등 다양한 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실험적 시도를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그가 오랜 시간 지속해 온 탐구를 증도의 맥락 속에서 확장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샐-카키-리프트》는 결국 인간과 자연, 물질과 영성이 맞닿는 접점을 탐구한 여정의 기록이다. 소금·갯벌·하늘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예술적 사고를 매개하는 상징으로 확장된다. 증도의 독특한 환경과 장소적 조건을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적·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며, 동시에 예술이 지역과 공동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갱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련 기사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 작성

0/2000

댓글은 검수 후 노출됩니다. 비방·욕설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