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갤러리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팔로알토(Palo Alto)에 새로운 공간을 열며 실리콘밸리 진출을 공식화했다. 이는 뉴욕, 런던, 홍콩, LA 등 16개의 글로벌 거점을 보유한 이들이 선보이는 17번째 지점이자,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로스앤젤레스에 이은 두 번째 매장이다.
새 공간은 스탠퍼드 대학 근처이자 메타·구글 등 거대 테크기업들이 위치한 팔로알토 시내의 옛 우체국 건물을 개조한 약 280㎡ 규모로, 갤러리와 북샵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는 루이스 라플라스 건축사무소가 공간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다.
갤러리 공동대표 마크 파요트(Marc Payot)는 “북부 캘리포니아는 로스앤젤레스 못지않게 헌신적인 수집가들과 훌륭한 미술관의 본거지”라며, “세대를 거친 예술 후원자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에서 예술가들과 커뮤니티를 위한 새로운 에너지 허브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팔로알토는 과거에도 글로벌 갤러리들이 진출했다가 철수한 전례가 있는 지역이다. 페이스(Pace)는 2016년 팔로알토에 첫 미국 외 확장점을 열었지만 2022년에 철수했으며, 가고시안(Gagosian)도 2016년 샌프란시스코 지점을 열었다가 2021년 문을 닫았다. 당시 페이스 갤러리 대표 마크 글림처는 “베이 지역은 권력과 배타성을 소비하는 시장이 아니다”라는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우저앤워스는 테크 기반의 억만장자들이 밀집한 이 지역의 수집가 네트워크와 지역 문화 인프라에 주목했다. 실리콘밸리의 높은 구매력을 무기로 삼기보다는,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공공성과 예술성 중심의 프로그램 운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번 팔로알토 진출은 단순한 지역 확장이 아닌, 글로벌 갤러리 브랜드가 ‘로컬 수집가 커뮤니티’와 어떻게 접점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보인다. 특히 이전에 실패한 페이스와 가고시안과는 달리, 하우저앤워스는 호텔, 레스토랑,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까지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 모델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역시 대형 갤러리의 확장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단순히 ‘브랜드만 앞세운 진출’은 통하지 않는다. 커뮤니티와의 관계, 전시 콘텐츠의 진정성, 그리고 공간의 공공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껴안는 갤러리 전략,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이번 사례는 다시 한 번 증명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