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지지 않은, 그려지지 않은
붓질의 완성은 호흡으로부터
목적 없는 만남과 현재를 산다는 것
작가 이우환과의 사소한 인연 : 현재를 산다는 것과 예술 향유에 대하여
2023년 9월 말,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의 나오시마를 다녀왔다. 나오시마를 부르는 별칭은 '예술의 섬'으로,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건축미와 쿠사마 야요이로 대표되는 현대 미술의 다채로움이 섬의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섬 한 바퀴를 도는데 전동 자전거로 1~2시간 남짓, 작다고도 할 수 있는 나오시마 섬은 박물관과 미술관, 설치미술, 건축과 예술 프로젝트로 촘촘하게 짜여져,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저절로 느려지게 만든다. 그러니, 사실 그렇게 작다고 할 수도 없다. 공간의 물리적인 크기로 향유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섬 자체가 향유로 가득 한 그곳엔 한국 미술 거장 '이우환의 박물관'이 있다.
나오시마 이우환 박물관 전경/ 사진.강혜영
시작은 '관광객'답게 인증샷으로 시작했다. 작품을 감상할 새도 없이, 박물관 앞 광활한 잔디밭에 놓여있는 작가의 작품을 연신 스마트폰으로 담아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때를 떠올리며 나에게 어떤 기억과 감상이 남았나 돌이켜보니, 박물관 밖에서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은 크게 남아있지 않았다. 사진만이 나에게 남겨져 있었다. 반면, 박물관 내부에서 봤던 감상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듯한 기분과 발걸음이 느려지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 어떤 경험의 차이가 나의 기억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촬영금지. 이우환 박물관 내부는 엄격히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하지 않은 채, 온전히 두 눈에 가득히 담은 몰입의 순간은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았고, '저장'을 위해 연신 눌러댔던 버튼 속에 오히려 기억은 잊혀졌던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사진 찍는 행위 속에 내가 놓쳐버린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직감 속에서 이우환 박물관 바깥에서 내가 잃은 것과 이우환 박물관 내부에서 내가 얻은 것을 저울질 해보았다. 지금, 여기서 온전히 향유할 시간을 포기했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현재가 가지는 가치가 다시금 소중해졌다.
나오시마 이우환박물관 / 사진. studioleeufan.org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미래에 먼저 가 있을 수도 없다. 오로지 '지금, 여기'라는 현재 속에서 우리는 존재한다. 현재가 지나가면 과거가 남고, 현재를 지나치면 미래에 도착한다. 마땅히 내 몸과 마음으로 즐겨야 할 작품을 즐기지 못했기에, 현재를 추억할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명상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에 있는 그대로 비판단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것인데, 돌이켜보니 사진찍는 그 순간에는 '알아차림'하지 못했다. 박물관 내부에서 작품을 보는 그 순간에는 내가 보고 있음을 또렷히 '알아차림' 하고 있었다. 국어사전에 향유는 '누리어 가짐'을 뜻한다. 작품을 누리고 가질 수 있으려면, 나의 몸과 마음이 그 순간 작품과 함께해야 함을 말하지 않나 싶다. 명상적 태도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예술을 통한 심미적 기쁨과 내면적 풍성함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으리라.
외부세계와의 만남과 내면의 해석 : 평가와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우환의 예술은 '만남의 예술'이라도고 칭한다. 누구와의 만남이란 말인가? 이우환은 "예술가란 어떤 만남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 재제시 하는 자"라고 말하는데, 그 만남은 때론 자연이기도 하고 타인이기도 하며 사물일 수도 있으며 사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외부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글로, 말로, 작품으로 표현하기 이전의 감탄 또는 탄성, 반응이 있는데 그것이 만남의 순간이다. 외부세계는 나의 의식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 '건드릴 수 없는 부분', '책임질 수 없는 부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1971년 파리 비엔날레 전시 기간 중, 한 프랑스 미술비평가는 이우환에게 이러한 비평을 한다. "왜 만들지 않은 것을 가져다 놓았는가? 이것을 당신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가?" "돌부터 어디까지가 작품인가?" "돌들이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지껄이는 것이 당혹스럽다." 이우환은 그 '지껄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제멋대로 지껄이는 돌의 이야기는 즉, '외부세계'이다. 그리고 이우환이 만들어내지 않은 돌은 '반드시 그래야 하는 위치나 방식'이 없다. '있는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지점이다.
나오시마 이우환 박물관 / 사진.강혜영
우리는 모든 것을 내면에서 창조한다고 생각하지만, 외부세계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생성되지 못한다. 학문적으로 현상학과 해석학은 짝궁이라 한다. 현상이 있다면, 해석도 있기 마련이기에. 이러한 외부세계의 만남을 통해, 인간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때로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 받아들이며 현상과 해석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해석)을 사실(현상)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당신을 쳐다보았을 뿐인데, 노려봤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왜 쳐다봐?'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그저 초점없이 멍때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직장생활에서 상사의 잦은 부정적인 피드백에 '저 상사는 나만 싫어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프랑스 미술비평가는 돌이 '지껄인다'고 했지만 사실 그 돌은 그저 '존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무수하게 우리는 평가와 판단을 하며, 우리가 내린 결론을 사실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한 해석은 대부분 부정편향을 하며 '걱정거리'를 만들어내고 결국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식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끊임없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애쓰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할 수 없음에 분개한다.
외부세계는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세계이다. 고로, 책임질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표현 이전에 외부세계와 나의 의식이 만난다는 것은 그저 '돌'이 하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의식만을 앞세우면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볼 수 없다. 이우환 작가의 작품 속에 들어찬 외부세계는 편향된 우리의 의식을 깨운다.
붓 자국은 호흡이 필요하다 : 멈춤으로 완성된다.
보통 사람은 한 번에 몇 초나 호흡을 참을 수 있을까? 이우환을 주제로 아트 명상을 할 때면 의례 사람들에게 호흡을 참아보는 시합을 한다. 대략 30초에서 길게는 1분 10초까지 버티는 데, 그 순간 사람들은 자신을 시험해보기도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포기하기도 하며 경쟁에 매몰되기도 한다. 호흡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하고, 나의 생명이 달린 호흡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기려고 노력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우환, "From Line" 1978, Glue, stone pigment on canvas, 182 x 227cm / 사진. studioleeufan.org
한 번에 1분 30초에서 2분 가량. 이우환 작가는 호흡을 멈춘 채, 붓을 움직여 나간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이 순간에는 긴 수련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작품을 보다보면 반복되는 작품 속에 무한성과 또한 어느새 옅어지는 물감에서 유한성을 발견하게 된다. 호흡과 닮아있다. 호흡의 음률이 느껴지기도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호흡에서 드러나는 무한성과 들이마시면 결국 뱉어내게 되어있는 유한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우환 "From Point", 1976, Glue, stone pigment on canvas, 227x182cm /사진. studioleeufan.org
감정은 호흡과 함께한다.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은 얕고 거친 호흡으로 나타나며, 안정되고 이완된 평온감은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뿜어져 나온다. 1970년대 후반, 선과 점이 흔들릴 때마다 호흡이 요동치듯이 완전히 깨어지면서 몸과 마음의 불균형 속에 이우환 작가의 <바람과 함께>가 탄생한다. 마치 스트레스로 인해 긴장이 가득하고 불안한 우리의 마음과 닮아있다.
이우환 "With Winds", 1983, Oil, stone pigment on canvas, 227x182cm /사진. studioleeufan.org
명상을 찾는 사람들은 '평온한 마음'을 갖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어서 온다. 명상은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효과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마음을 편하게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명상은 나를 '알아차림'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왜곡된 시선 혹은 오해와 잘못된 평가, 판단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걱정은 줄어들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현재 나의 상황을 온전히 수용하면서 편안한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이우환 "Correspondance", 1995, Oil on canvas, 218x291cm / 사진. studioleeufan.org
이우환의 회화에는 '돌'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구성된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 즉, 외부세계를 표현하는 요소가 있다. 이우환 회화 속 외부세계는 '여백'이다.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자 통제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다. 이우환의 작품은 외부세계와 작가의 내면이 만나,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이러한 그의 회화 또한 마찬가지로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한다.
명상의 '알아차림'이 우리에게 평온을 가져다 주듯이, 이우환 작가의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은 그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세계의 일부로서 가치가 있다는 '위안'을 전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