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edle Woman -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1999-2000) 영상 작품 중 한 장면 [사진=이소이 기자]
'보따리'로 유명한 세계적인 아티스트 김수자의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숨쉬기-무리)가 파리의 피노 컬렉션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Le monde comme il va'(흘러가는 그대로의 세상) 전시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김수자가 전시에 대해 전권을 가지는 '캬르트 블랑쉬(Carte Blanche)'의 틀에서 진행된다.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 전경 [사진=이소이 기자]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피노 컬렉션의 중앙을 차지하는 로톤드의 설치 작업 전시이다. 입구에 마련된 신발 싸개로 신발을 싼 후 작업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을 장식하는 24개의 유리 덕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걸 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관객은 뒤집힌 세계와 실재 세계 사이의 어디로 빠져든다. 슬그머니 열리는 거대한 환상의 공간에 빠져들때 쯤, 옆에 있는 관객의 잡담과 셀피 찍는 어수선한 모습때문에 저편의 세계는 다시 닫힌다. 거울이 주는 무한함과 나, 타인의 신체가 각인하는 유한함 사이의 재미있는 긴장이 설치 작업 안에서 열린다.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 전경 [사진=이소이 기자]
전시의 두 번째 부분은 로톤드를 둘러싼 쇼윈도에 진열된 김수자의 24개의 오브제, 사진 작품 전시이며, 세 번째 부분은 지하의 세 공간에서 전시된 작업 전시이다. 지하에선 4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진 비디오 설치 작업 'A Needle Woman -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바늘 여인, 1999 - 2000)과 보따리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다른 비디오 설치 작업이 전시되며, 오디토리움에서는 비디오 작업 'Thread route'(실의 궤적)연작 4개가 상영된다. 전시의 두 번째, 세 번째 부분은 김수자의 예술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들로 선별되었다. 김수자가 이민, 노마디즘, 이동 등의 문제 의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이번 전시는 이런 문제의 근원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 전경 [사진=이소이 기자]
김수자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문제의식 중심으로 해석된다. '이민, '노마디즘', '이동'과 같은 주제는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기 쉬운 주제들이다. 게다가 '보따리' 같은 작업에서는 '한국적인 것'이 강조되기도 하며, 그래서 은연중에 '주류', '비주류'와 같은 이분법적 시선 혹은 액조티즘(exotism)의 시선, 긍정적 차별주의(discrimination positive)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건 이런 사회, 정치적 주제 뒤에 감추어진 아티스트의 근원적 문제의식이다.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 전경
'A Needle Woman -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1999-2000) 영상 작품 중 한 장면 [사진=이소이 기자]
로톤드를 둘러싼 쇼윈도에 진열된 작업은 문제의식의 시작에는 그림의 평면성에 대한 질문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김수자도 미대생이었던 시절 그림으로 미술을 시작했고, '여전히 화가'이기 때문이다. 그림의 평면성에 대한 질문은 현대 미술보다는 근대 미술에 고유한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선입견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영향에서 기인한 것같다. 하지만 근대 미술이 점유하는 문제의식이라고 해도 현대 미술에서 이를 다루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다루는 방식이 가히 현대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평면적인 것이 어떻게 3차원 적인 것, 더 나아가 시간을 담을 수 있을까 ? 김수자는 여러 오브제를 사용해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를 하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따리'이다. 우선 '보따리'는 평면적인 것, 즉 이불보로 여러 가지 짐을 감싸안는 다는 점에서 평면이 더 이상 평면적이지 않게 한다. 다시 말하면, 보따리는 감싸는 행위를 담는다. 게다가 보따리 안에 있는 것들은 개인의 짐, 한 개인의 역사, 시간, 베르그손의 단어를 빌린다면 '지속'이다. 한 인간의 역사를 담으면서 보따리는 심리학적인, 형이상학적인 오브제가 된다. 쇼윈도에 진열된 여러 오브제 작업이나 설치 작업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각 작업은 시간을 담으려는 김수자의 노력으로 다가온다.
전시 'To Breathe - Constellation' 전경 [사진=이소이 기자]
지하의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Thread routes' 연작에서 보이는 반복해서 실을 꿰는 손, 물에 비치는 빛의 변화무쌍한 모습 등의 이미지는 단순히 아름다운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을 시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비디오 설치 작업과 영상 작업은 심리적인 시간, 우주적인 시간, 사회적인 시간을 담으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시간'을 중심으로 로톤드의 설치 작업을 보면 거울은 시간을 담으며, 시간을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A Needle Woman - Kitakyushu', 1999/2024,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사진=이소이 기자]
사실 이런 관점으로 작업을 보는 건 누군가한테는 지루한 일일수도 있다. 특히 '시간, '신체', '정체성'같은 철학적, 사회학적인 개념들이 낯선 사람에게 이런 관점에서 작업을 보라는 건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다. 하지만 'Thread routes' 연작 영상은 이런 가혹한 형벌을 감미롭게 만든다. 누군가는 '탐미주의'라 비판할 수도 있을 이미지로 이루어진 작업, 다른 누군가는 영상 끝 긴 크레딧을 보고 '기업이 된 아티스트의 작업'이라고 비판할 만한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Thread routes' 연작의 영상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서 자발적으로 이론적인 탐험으로 향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현대' 미술이 '미'와 거리를 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미'의 힘은 '이론'과 '감각'의 구분을 뛰어넘게 할 만큼 위대하지 않은가 ?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두드러지는 다른 하나는 감각으로 드러나는 것과 개념으로만 보이는 것의 보완 작용이다. 두 번째 부분, 즉 로톤드를 둘러싼 전시와 세 번째 부분의 관계가 특히 그렇다. 로톤드 주변의 전시가 말, 언어로 관객에게 설명한다면, 지하의 영상은 아름다움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렇게 개념은 감각 덕분에, 감각은 개념 덕분에 서로 결핍된 부분을 채우며 관객의 미적 경험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