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루앙 대성당'으로 유명한 도시 루앙(Rouen)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열려
21세기 인상파화가 호크니를 상상으로 구현
9월 22일까지 전시 예정
Giverny by DH, 2023, Acrylique sur toile [사진 = 이소이]
영국 출신 팝 아트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전시 ‘노르망디즘’(Normandisme)이 프랑스 루앙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Rouen)에서 열리고 있다. 호크니는 2019년부터 노르망디 지방의 뵈브롱-언-오즈(Beuvron-en-Auge)에 정착해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미국과 영국을 무대로 활동을 해 온 호크니이기에, 왜 프랑스 노르망디에 살기로 결심했는지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여기는 꽃이 많으니까요." 전시 ‘노르망디즘’은 노르망디 정착 후의 호크니 작업을 소개한다.
Self Portrait, 22nd November 2021, Acrylique sur toile [사진 = 이소이]
화사한 호크니
전시장의 입구에 걸린 호크니의 자화상이 화사함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많이 알려진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와는 화법, 느낌이 너무 다르다. 서정적이면서 차가운 분위기, 현대인의 우울함을 표현했던 ‘수영장’ 시리즈 풍의 그림을 바라고 온 관객에게 첫 번째 전시실에 전시된 그림들은 유쾌한 놀라움로 다가온다. 소개된 작품은 캔버스 위에 밑그림 없이 아크릴로 드로잉처럼 그린 초상화들이다. 초상화 인물의 옷, 의자, 얼굴의 색과 공백으로 남겨둔 배경의 하얀색의 조화 덕분에 그림은 알록달록한 느낌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편안한 표정과 자세에서 관객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호크니 그림 속에 표현되었던 무거움, 우울함 혹은 반사, 물, 빛이 있던 자리를 미소, 화려함, 행복함, 친근함이 대신한다. 초상화의 인물들은 호크니의 프랑스 지인들이라고 한다. 노르망디에서의 삶이 주는 편안함 덕분일까 ? 호크니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호크니가 아닌 것 같다.
Lucie-Lune Lambouley and Louis-Martin Lambouley, 8th January 2022, Acrylique sur toile [사진 = 이소이]
Vincent Boccage with his Tractor, 1st February 2022, Acrylique sur toile [사진 = 이소이]
모네와 호크니
두 번째 전시실에는 호크니가 그린 풍경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호크니 전시 자체는 루앙 미술관의 상설 전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며 시슬리, 마네 등의 인상파 화가 작품이 상설 전시의 끝을 장식한다. 루앙 미술관 전시의 여정을 따라온 사람들이 모네의 그림과 호크니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걸 보았을 때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이다. 오히려 호크니의 그림을 관객 자신이 가진 인상파, 특히 모네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 바라보게 된다. 함께 전시된 모네의 그림은 호크니가 그린 연못이나 지베르니(Giverny)의 그림과는 색, 느낌, 테크닉이 전혀 다른 그림이다. 그래서 모네의 그림은 호크니만이 보는 자연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전시실 전경, 가운데 모네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 이소이]
Giverny by DH, 2023, Acrylique sur toile [사진 = 이소이]
‘모네가 살던 시대에 아이패드가 있었다면, 모네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호크니가 ‘밤’을 모티프로 그린 작품 15점이 전시되어 있다. 15점 중 두 점만 직접 캔버스에 그린 작품이고 나머지 13점은 아이패드로 그린 후 종이에 출력해서 전시한 것들이다. 제목들도 자신이 그림을 그렸던 날짜와 출력한 순서이다. 아이패드의 활용과 제목 덕분에 관객은 소위 말하는 현대 미술관에 온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건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출력한 그림들 덕분에 관객은 현대 미술만이 제기하는 질문들, 예컨대 ‘출력한 것도 작품인가?’, ‘이걸 엽서로 만들어도 동일한 작품일까’와 같은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호크니의 작품이 가졌던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현대 미술을 둘러싼 질문은 다시 한번 더 심화된다. ‘현대 미술은 작품 자체에서 발산하는 아우라를 가질 수 없는 걸까 ?’ 아이패드 작업으로 채워진 마지막 전시 공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현대적이다.
세 번째 전시실 전경 [사진 = 이소이]
전시된 작품 자체는 과거의 호크니 작품에 비해 긴장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시 전반을 본다면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인상파 화가’, 특히 ‘모네’를 강조한 데 있다. 사실 전시 '노르망디즘' 자체는 '노르망드 인상파 축제'(Festival Normandie Impressionnist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루앙은 노르망디 지방의 수도이며, 모네가 머무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지베르니(Giverny)도 노르망디 지방에 있다. 게다가 모네는 그 유명한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리기도 했다. 루앙 미술관은 어떻게든 모네와 호크니를 연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물며 호크니도 ‘지베르니’풍경을 그릴 정도로 모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빛’, ‘반사’도 그의 주요 테마이니 연결하고 싶었던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전시 의도는 명확하다. 21세기 인상파화가 호크니를 상상으로나마 구현해 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단서를 드러내놓고 보여줌으로써 호크니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거나 관객 자신이 주체적으로 작품, 전시를 해석하도록 놔두는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전시실에 쓰인 호크니의 말 ‘모네가 살던 시대에 아이패드가 있었다면, 모네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이 문구가 전시를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방해가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