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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시 '보이스 : 필립 파레노' (리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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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미학'으로 유명한 평론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의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개인전 '보이스 : 필립 파레노'가 2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리움 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에서는 주제 '목소리'를 표현하는 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파레노 작품이 소개되었다. 파레노의 전시는 항상 그렇듯, 작업 하나하나에 대해 분석하면서 감상하기보다는 전시 전체를 조망하면서 관람하는 게 좋다. 파레노 자신이 전시 자체를 하나의 미디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움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막(2024)'. 사진. 홍철기. 제공=리움 미술관 제공
리움 미술관 야외 데크에 설치된 '막(2024)'. 사진. 홍철기. 제공=리움 미술관 제공

전시장 밖에서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리움 미술관 야외 데크에는 송신탑 모양의 타워가 설치되었다. 길이 14미터의 타워 '막(2024)'은 전시장 바깥의 습도, 기온, 풍향, 오염도, 소음 등의 환경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데이터를 소리로 변환해 전시장 안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막'은 두 가지 의도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우선 '막'은 전시장 안과 밖에 구멍을 내는 장치로서, 파레노가 강조하는 예술 의도, 즉 작업을 맥락 안에 놓으려는 의도와 열린 전시장을 구성하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 또한 전시 진행 공간에서 펼쳐지는 소리 작업 중 일부가 '막'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변환시킨 소리라는 점에서 전시의 시작을 나타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적 기법을 통한 전시

M2 B1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M2 B1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본격적으로 건물 1층(M2 B1)으로 들어가면 극적인 공간이 관객을 맞는다. 물고기 모양의 풍선이 공간 안에서 유영하고 있고(내 방은 또 다른 어항, 2022), 다른 한쪽에는 인공 눈이 쌓여있으며 (눈더미, 2013-2024),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주황색 눈이 내리는 가운데 스스로 연주되는 피아노(여름없는 한 해, 2024)가 있다. 하지만 1층 전시를 극적이게 만들어주는 건 이 모든 작품 중심에 있는 빛이다. 피아노를 둘러싼 빛, 인공눈을  비추는 빛, 혹은  '움직이는 조명등(2024)'에서 나오는 움직이는 빛,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4)'을 비치는 석양빛(석양빛 만, 가브리엘 타드, 지저 인간 : 미래 역사의 단편, 2022)이 전시장 1층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으로 장식한 시각적인 모든 것은 간헐적으로 연주되는 ('막'이 수집한 데이터를 소리로 전환하는) 피아노 음악, 물 떨어지는 소리, '움직이는 조명등'에서 나오는 기계음 등과 합쳐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M2 B1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가운데의 작품이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중 일부이며 유리창으로 비치는 빛이 '석양빛 만, 가브리엘 타드, 지저 인간 : 미래 역사의 단편'이다.
M2 B1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가운데의 작품이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중 일부이며 유리창으로 비치는 빛이 '석양빛 만, 가브리엘 타드, 지저 인간 : 미래 역사의 단편'이다.

2층(M2 1층)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 작업을 선보인다. 입구의 스피커에서는 AC/DC의 강렬한 록 음악이 나오며, 스크린에서는 옛 건물의 사진들을 상영한다.(엔딩 크레딧, 1999) 그 오른편의 큰 스크린에서는 필립 파레노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안리(Ann Lee, 1999년 파레노가 피에르 위그와 함께 저작권을 사버린 캐릭터)'가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로 의미가 없는 말을 하고 있다.(∂A(델타 에이), 2024) 그 밖에도 일곱 개로 이루어진 패널(흰색 회화[일곱개의 패널], 1951, 라우센버그 작품 복사본)에서는 4분 33초마다 1분짜리의 짧은 영상(사물의 꿈, 2001)이 상영된다. 사실 2층은 전시 자체가 시간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콘서트처럼 각 작업이 순서대로 작동하며, 때로는 두 작업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A'와 '엔딩 크레딧'은 동시에 상영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마치 작업이 시간순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사람들이 직접 앉을 수 있는 설치 작업 '루미나리에(피에르 위구, 필립 파레노, M/M, 2001)는 '∂A'뒤에 숨어 있어서, '∂A'가 상영 중일 때는 보이지 않고, 상영이 끝났을 때만 빈 스크린너머로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상영 중일 때, AC/DC의 음악에 맞춰 '루미나리에'의 전구는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각 작업이 동시에 전개되지 않으며, 일정 순서를 따라 전개되는 방식 자체는 영화적인 전개 방식을 생각나게 한다.

M2 1층 전시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스크린에서 영상작업 '∂A'이 상영되지 않을 때만 스크린 너머 작품 '루미나리에'가 보인다.
M2 1층 전시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스크린에서 영상작업 '∂A'이 상영되지 않을 때만 스크린 너머 작품 '루미나리에'가 보인다.

필립 파레노의 문제의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1, 2층 전시를 보며 바로 '픽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막'에서 수집한 데이터의 감각적 언어로의 변환이 전시장 안팎의 구분뿐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조차 흐려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안리'포스터로 장식한 2층 벽 작업 '인간: 유령이 아닌, 그저 껍데기(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2000)'가 대표적으로 파레노의 '픽션'을 둘러싼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1, 2층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 자체가 영화적이라는 것이다. 1층 전시의 빛을 활용한 시노그라피가 서정적이며 주관적인 공간을 구성하게 하기에 영화적이라면, 2층 전시는 시간적이기에 영화적이다. 다시 말하면 1층의 소리는 공간을 통해, 2층의 소리는 시간을 통해 영화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M2 1층 전시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가운데 영상 작업이 '∂A'이다.
M2 1층 전시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가운데 영상 작업이 '∂A'이다.

 

비유적인 의미의 목소리, 그리고 관객의 참여

'픽션' 말고도 필립 파레노의 작업 의도를 지칭하는 표현 중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의 참여'이다. 방금 설명한 작업 중 '루미나리에'가 대표적이다. 파레노에게 '관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닌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관객이 없으면 자신의 작업은 언제나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M/M, 루미나리에, 2001. 사진. 이소이 기자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M/M, 루미나리에, 2001. 사진. 이소이 기자

'관객의 참여'는 1층, 2층 전시 외에도,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더욱더 강하게 요구된다. 그라운드 갤러리에 들어서면 천장에 붙어있는 투명한 풍선(말풍선(투명), 2017),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LED 불빛(깜빡이는 불빛 56개, 2013), 그리고 파레노를 상징하는 작업 '차양 연작'(2016-2023)이 있다. '말풍선'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만화 캐릭터가 말풍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관객도 자신만의 말로 말풍선을 채우라는 것이다.

이 전시의 주제 '보이스'를 유지하면서도 '관객 참여'라는 파레노의 예술 의도를 잃지 않는 작업이다. 게다가 '차양' 작업은 언제나 관객이 '차양'밑에 서야만 작업을 완성한다는 방식으로 소개된다. 어떻게 보면 전시에서 말하는 '목소리'라는 건 물리적인 '소리'뿐 아니라, 관객이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내는 비유적인 의미의 '소리'이기도 하다. '너의 목소리를 내'보라는 건 '너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동시에 '주도적으로 참여해'보라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도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는 담론인 '관계 미학'은 여전히 파레노의 작품 세계를 지배한다. 이런 시각에서 그라운드 갤러리의 전시를 바라본다면, 빛과 함께 방출되는 기계음이 관객의 조용한 혹은 잠재적인 목소리와 뒤섞여 다성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전경. 사진. 이소이 기자

엄밀히 말하면 리움 미술관 전시 '보이스 : 필립 파레노'를 요약하는 키워드는 여전히 '관객의 참여'이며, 굳이 주제를 말하자면 '관객의 참여를 통한 목소리의 재구성'이다.

1층에서 들리는 건 바깥 작품 '막'이 주는 데이터를 변환한 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뭔가 떠들썩한 소리, 기계음이며, 이런 소리의 경험을 가로지르는 건 빛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관객 각자만의 서정적 공간이다. 그렇게 소리는 관객의 주관적인 경험이 투영된 소리가 된다. 2층에서 들리는 소리는 만화 캐릭터 안리의 입을 빌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 혹은 다른 영상 작업의 소리이지만, 이 소리 너머에 있는 건 2층을 방문한 관객의 영화적인, 시간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이 영화적인 경험의 주체는 계속 자신의 경험을 새로 갱신하는 관객이다. 마지막으로 그라운드 갤러리는 드러내놓고 관객의 신체적, 정신적 참여에 방점을 두며, 이 참여가 작업의 완성, 다성음악 구성의 완성 여부를 결정한다. 요컨대 전시에서 구성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결국 관객의 목소리인 셈이다. 파레노의 리움 미술관 전시는 여전히 관계 미학에 충실하며, '참여'를 둘러싼 미술 담론을 바탕으로 한 파레노만의 작업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전경. 기둥들에 설치된 작업이 '차양'연작이다. 사진. 홍철기. 제공=리움 미술관 제공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전경. 기둥들에 설치된 작업이 '차양'연작이다. 사진. 홍철기. 제공=리움 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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