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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광대·아나벨’, 생존의 절박함을 캔버스에 담은 화가,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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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출생 : 1928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 사망 : 1999년 10월 14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출생 : 1928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 사망 : 1999년 10월 14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출생 : 1928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 사망 : 1999년 10월 14일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출생 : 1928년 7월 10일, 프랑스 파리 ∼ 사망 : 1999년 10월 14일

피카소가 질투하고 앤디워홀이 극찬했던 천재 작가, 프랑스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전후 현실을 그려 스타가 된 화가, 바로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베르나르 뷔페는 피카소의 대항마라고 할 만큼 당대에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유명한 화가였지만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다. 그러다가 5년 전(2019년) 예술의 전당에서 ‘베르나르 뷔페’ 첫 단독전을 열면서 국내에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어를 기억해야 하는데 바로 ‘죽음’, ‘광대’ 그리고 그의 뮤즈이자 아내인 ‘아나벨’ 이다.

[죽음, 나는 오직 살기 위해서 그렸다]

욕실, 1947, Bernard Buffet, La salle de bain, 1947, Huile sur toile, 138x188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욕실, 1947, Bernard Buffet, La salle de bain, 1947, Huile sur toile, 138x188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베르나르 뷔페의 어린 시절은 가정에 관심 없는 아버지와 가난으로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다녀오면 혼자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를 자주 루브르 박물관에 데려가곤 했다. 어머니는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야간학교에서 미술을 배울 수 있도록 했고 그런 어린 뷔페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미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던 베르나르 뷔페는 15세 어린나이에 파리의 명문 미술학교 ‘데 보자르’에 조기 입학 해서 고전풍의 그림을 제대로 비우기 시작했는데 그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2차 세계대전과 미술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전쟁의 비극과 우울함을 몸소 겪게 된다. 더욱 큰 충격은 그에게 미술의 꿈을 안겨주었던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는 전쟁보다 더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당시 그는 ‘살기위해 그림을 그렸다’라고 했다

베르나르 뷔페는 이런 영향으로 ‘죽음’을 암시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또 가난 때문에 물감이 모자라 많은 색을 쓰지 못하고, 물감을 얇게 펴 바르며 어쩔 수 없는 무채색을 주로 썼다.

초기 그의 작품은 베르나르 뷔페의 시그니쳐라고도 하는 ‘뾰족뾰족한 검은 직선’과 ‘우울한 무채색’으로 인간의 절박함과 긴장감을 나타냈다.

앙상한 뼈, 공허한 눈빛, 날카롭고 뾰족한 선으로 표현된 젊은 화가의 그림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자 파리는 열광했다

두 여인, 1950, Bernard Buffet, Deux femmes, 1950, Huile sur toile, 125x125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두 여인, 1950, Bernard Buffet, Deux femmes, 1950, Huile sur toile, 125x125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베르나르 뷔페는 18세에 뉴욕 타임즈 신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 5인’으로 선정, 20세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 있는 ‘비평가 상을 수상’ 하며 일약 대 스타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27세에는 미술잡지 <꼬네상스 데자르>가 전후 화가 10인 중 1위로 선정 했으며, 28살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에 반열에 오른다.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광대일 것 같아요”]

광대의 얼굴, 1955, Bernard Buffet, Tê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광대의 얼굴, 1955, Bernard Buffet, Tê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그는 백만장자가 되자마자 라르크 성을 사고 비싼 차를 사들이자, 대중과 비평가들은 돈을 벌더니 사치를 하며 변했다고 모두가 그를 외면해 버린다. 그때쯤 그의 작품에는 화려한 꽃과 자동차가 등장하고, 여행을 다니며 풍경화도 자주 그렸는데 이에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달라졌다며 얘기 했지만, 뷔페는 초기와 같이 그가 본 세상을 솔직하게 그렸다는 부분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미술계는 점점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흐름이 변하고 있었지만 뷔페는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꿋꿋하게 고집하게 된다. 그러자 그에게 극찬을 보냈던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이 추상회화에 동떨어졌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비판하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뷔페는 자신을 향한 최고의 찬사가 최악의 비난으로 바뀔 때 쯤 광대를 그리기 시작했다.늘 익살스럽게 웃고 보이는 화려한 광대 분장 밑에 인간의 실제 모습은 불안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중성과 닮았기 때문이다.또 광대 그림은 그가 박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이면에 견뎌야 했던 뷔페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했다.

[평생의 동반자 뷔페의 영원한 뮤즈, 아나벨]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 1959, Bernard Buffet, Annabel en robe du soir, 1959, Huile sur toile, 195x10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 1959, Bernard Buffet, Annabel en robe du soir, 1959, Huile sur toile, 195x10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1958년 여름, 베르나르 뷔페에게 인생의 큰 사건이 일어났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던 아나벨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사랑을 하고 또 결혼을 했다. 샹송 가수이자 배우며 작가였던 아나벨은 베르나르 뷔페가 전시를 열 때면 늘 서평을 써주었고, 베르나르 뷔페 역시 아나벨이 책을 출판할 때면 그림을 그려줬다. 서로가 서로에게 뮤즈가 되었다.

뷔페는 아나벨을 무척 사랑했는데, 그녀를 모델로 한 수많은 초상화를 그려 ‘아나벨’만을 주제로 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아나벨,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아나벨,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아나벨에 대한 사랑이 또 얼마나 대단했는지 사람들은 아나벨이 없었다면 뷔페는 일찍 죽었을꺼라고 얘기 했을 정도였다.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은 아나벨을 만난 이후 뾰족뾰족한 검은선이 녹아내리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하게 변하게 된다.

샤노나, 호수, 오베르뉴 지방, 1974, Bernard Buffet, Chanonat, le lac, Auvergne, 1974, Huile sur toile, 89x13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샤노나, 호수, 오베르뉴 지방, 1974, Bernard Buffet, Chanonat, le lac, Auvergne, 1974, Huile sur toile, 89x13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그에게 아나벨은 사랑하는 아내, 가족, 뮤즈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우울과 고통의 나날 속에 유일하게 찾은 안식처와도 같았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차라리 나는 죽음을 택할 것이다]

베르나르 뷔페는 추상회화가 주류를 이루던 미술계에서 구상회화를 고집한다는 이유로 평단에서 외면 받을 때조차도 ‘오직 그릴뿐’ 이였다. 그는 그리기 위해 존재하고, 또 존재하기 위해 그렸다

그런 그가 1997년 파킨스병을 진단받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 어두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병이 악화 되자<브르타뉴의 폭풍>을 그린다. 브르타뉴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뷔페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인데, 과거 그의 작품에는 이곳 파도는 늘 잔잔했지만 병든 후 <브르타뉴의 폭풍>은 거센 폭풍이 몰아친다. 또 자신을 비유하는 노란 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가라앉고 있는 상태로 묘사된다.

또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한쪽 손을 부여잡으며 수개월 동안 몰두하여 그린 해골 25점, <죽음> 시리즈에는 그의 깊은 절망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한 그만의 통찰과 해석이 느껴진다.

기도하는 해골 , Bernard Buffet, Squelette en prière, 1998, Huile sur toile, 162x13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기도하는 해골 , Bernard Buffet, Squelette en prière, 1998, Huile sur toile, 162x130cm, © Bernard Buffet/ ADAGP, Paris - SACK, , Seoul, 2024

평생을 매일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생전 8,000여점의 어마 어마한 양의 작품 남겼던 베르나르 뷔페, 지독히 화기이기를 고집하던 그는 예술을 통해 전쟁과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그림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거장 중 한명 이다

베르나르 뷔페 전시는 국내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으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9월10일(화)까지에서 열리는데, 4미터 크기의 대형 유화 작품뿐만 아니라, 수채화, 드로잉, 판화 작품을 포함한 총 120여 점의 작품을 주제별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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