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에 위치한 아트센터 자인에서 6월 28일까지 《내 마음의 우주를 걷다 - '기쁨으로 가는 길'》 개인전을 진행 중인 박청용 작가를 다시 찾았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가능한 매일 전시장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는 박청용 작가는 평창동까지 걸음해 온 손님께 한 잔씩 차를 내어드리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세밀한 터치감처럼 차를 우리는 능숙한 손길에서 작가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기도하는 사람들, 명상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박청용 작가의 작품은 그 자체가 기도이고 명상이기도 하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존재의 근원을 찾고, 삶의 이유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의 여정을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Q1 ) 작가님의 작품 <기도하는 사람들>, <명상하는 사람들> 등 반복적인 동작을 그리는 작품에 이르기까지의 작가님의 여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이후에 서예를 배웠습니다. 서예 스승님께 붓을 세워서 그리는 법을 배우면서 미세한 움직임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작품을 보면, 그 형태나 제작하는방식은 다르지만, 언제나 작품의 중심에는 '마음 심(心)'이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몰두해왔던 것 같습니다.
내면에 품고 있던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탐구하고, 순간적으로 알아차림 하고, 때로는 깊은 고요함에 빠져들다가, 비워내고, 또한 간절함을 담아내는 과정이 반복적인 동작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거나 기도하고 명상하는 사람을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Q2 ) 특히 '절을 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2006년 스님들이 108배를 하시는 모습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캐릭터로서 절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2009년 지금은 사별한 아내가 폐암에 걸리면서, 삶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단전호흡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명상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현실 속의 나와 내적인 나의 존재, 생애의 마감의 순간들, 생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필코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알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 공부도 시작했고, 한 동안은 작업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책을 탐독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책에서 '문자를 떠나야한다'라는 말이 닿아서, 한동안 글도 그림도 그리지 않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절하는 모습'은 지속적으로 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Q3 ) 작가님의 '팔만 사천' 시리즈를 보면, 세밀하고도 끝없이 펼쳐지는 반복적인 붓터치에 경탄스러움을 자아냅니다.
기술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작게 그릴 수있을 것인가' 하는 마음에 2~3mm 정도의 크기로 그려보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제 내면에는 '나는 왜 태어났는가' 하는 물음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여전히 모르겠는 겁니다. 이 의문이 극에 달했을 즈음에 '팔만사천'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교에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 뜻을 찾아보니, 인도말로는 팔만사천이라는 수가 무한히 많은 수, 즉 무한대를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도 팔만대장경이라는 말을 들으면 와닿는 것이 있습니다. 이 무수한 마음, 모든 마음을 그려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한 작품이었습니다. 팔만사천을 다 그리고 나면, 무엇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다 그리고 나니 그저 '다 그렸다'는 끝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2~3일 정도 지나고 나니, 8~9년간 꽉 차 있었던 내 마음이 보였습니다. 그 꽉찬 나를 보면서 '비워낸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팔만사천 끝에 비움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태어난 이유를 찾지 말고 비우는 방법을 찾아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마음을 알고 나니까 마음 속이 비워지면서 힘들고 궁금했던 것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팔만사천 비움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후로 빈 종이에 도장을 찍고 <팔만사천 '여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팔만사천을 그린 후에 비움을 깨닫고 나서야 여백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누군가 부탁을 해도 작품에 여백을 둘 수 가 없었는데, 그 후부터는 작품에 여백도 생겨나고, 다양한 색이 들어간 작업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백이 생기니까,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나를 도와줬던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눈을 감으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기억 나는 사람들은 색으로 표현하고, 기억 나지 않지만 저를 도와줬을 사람들은 먹으로 표현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명상을 해도 끝없이 번민에 휩싸였다면, 비움을 알고 난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차분하고 고요함에 머무를 수 있었죠. 꽉 붙잡혀 있던 고민들을 열어버리고 나니 다 비워지고 나만 남은 듯 했습니다.
Q4 ) 꽉 찼던 마음을 비우고 나니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느껴집니다.
'감사하게 살아야겠다'는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팔만사천 단비>입니다. 8~9년 비가 오지 않던 마음에, 팔만사천의 궁금증 만큼이나 비움이라는 기쁨의 단비가 내린거죠. 그래서 이 작품은 기쁨을 표현하는 다양한 색상으로 그려졌습니다. 정말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에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쁨의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마음 담았습니다.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이예요.
Q5 ) 지금 이 공간에는 50여 점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 중에 한 작품을 고른다는 게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어느 날은 <자비>를 소개하고 싶고, 또 다른 날은 다른 작품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둘러보고 있으면 제 모든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는 결국 그저 하나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작품이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라보자면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작품입니다. 전시장 윗층에 자리잡고 있는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