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t et la vie ne font qu'uin (예술과 삶은 하나이다), 2014
미스틱(Miss.Tic)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거리 예술가로서, 파리 길거리를 배경으로 작업 활동을 했다. ‘미스틱’이라는 이름은 만화 ‘미키 저널(Le Journal de Mickey)’의 캐릭터 미스 틱(Miss Tick)에서 차용한 것이다. 만화 속 미스 틱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삼촌, 픽소(Picsou)의 금을 훔치려는 마법사인 것처럼, 아티스트 미스틱은 어떻게든 자유를 쟁취하고자 했다.
Je domine ce qui me domine(난 나를 지배하는 자를 지배한다), 2023
미스틱은 1985년부터 파리 거리의 벽에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초, 프랑스의 젊은 아티스트사이에서 거리 예술(Street Art)이 하나의 작업 방식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미스틱 역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미스틱은 두꺼운 박스 위에 미리 그림을 그린 후, 칼로 그림을 따라 홈을 파는 방식으로 직접 제작한 스텐실을 사용해 작업을 했다. 스텐실의 장점은 한 번 만들어 놓은 박스위에 래커만 뿌리면 되기 때문에, 경찰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스틱은 스텐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문구를 남겼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
(좌) J’enfile l’art mur pour bombarder des mots cœurs, (가슴 속 말을 퍼붓기 위해 벽에 예술을 전개한다)의 스텐실 (우) 작업의 결과물 (거리 작업을 나무판 위에 재현), 1985
◆ 실연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미스틱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거리에서 작업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을 떠난 남자 친구에 대한 복수라는 것이다. 전 남자 친구는 미스틱에게 ‘더 이상 그림 속에서 너를 보고 싶지 않아.’라고 하며 떠났는데, 미스틱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래 ? 그러면 여기저기 그림 속에서 나를 볼 수 있게 해 주겠어.’라고 하며 거리에 자기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스틱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그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장난에 가까운 문장 혹은 시를 추가해 자기 생각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예를 들면, 슬픈 표정의 자신 얼굴을 그려 넣고, 그 옆에 ‘J’enfile l’art mur pour bombarder des mots cœurs’라는 문장을 썼다. 이 문장은 직역하면, ‘난 가슴속에 있는 말을 퍼붓기 위해 벽에 예술을 전개한다.’이지만, 여기에는 말장난이 숨어있다. l’art mur(벽 예술)은 l’armure(갑옷)과, mots cœurs (가슴속 말)은 moqueurs(비웃는 자들)과 발음이 똑같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나는 나를 비웃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갑옷으로 무장한다.’ 혹은 ‘나는 나를 비웃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 벽에 예술을 전개한다.’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1986년 작업들
이렇게 옛사랑에게 복수하고자 자신의 존재를 벽에 표현하던 미스틱은 점차 표현의 범위를 확장해 자기 모습이 아닌, 보편적 여성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미스틱은 대표성을 띠는 여성의 얼굴을 패션 잡지, 광고에서 차용하는데, 매혹적인 얼굴과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여성을 그림으로써 여성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미스틱에 의하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성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 자문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했으며, 자신의 작업은 처음에는 분노와 누군가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삶, 욕망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Je prête à rire mais je donne à penser (난 웃을 준비가 됐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2008
이로써 미스틱을 둘러싼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이 나뉘게 된다. 미스틱이 페미니스트라고 옹호하는 측은 미스틱이 그린 여성의 모습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지는 환상이 반영된 여성이라는 점, 그럼에도 여성이 오히려 남성을 사로잡아 남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남녀 지배 관계를 전복하고자 하는 미스틱의 의도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스틱이 반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측은 의도가 어쨌든 미스틱이 생각하는 여성상은 상품화된 여성, 남성이 욕망하는 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Séduire avant de tuer (죽이기 전에 유혹하기), 2000, 'Muses et Homme' 전시 작품으로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약 1598년)을 재해석한 작품
◆ 미스틱을 둘러싼 법정 공방
거리 예술 활동을 계속해 가던 미스틱은 1997년 큰 사건을 겪게 된다. 지금이야 프랑스에서는 그라피티 같은 거리 예술 활동을 관대하게 보지만, 당시만 해도 거리 예술 활동은 엄연히 불법인, 그래서 경찰이 엄중하게 단속하는 범죄였다. 미스틱은 항상 자신의 서명을 거리 작업에 남겼기에 이미 몇 번에 걸쳐 유치장 신세를 진 적이 있었지만, 1997년 사건은 단순 체포를 넘어 소송까지 가는 법정 사건이 되었다. 미스틱이 건물주의 허락 없이 작업을 남겼던 두 건물이 소송을 걸었다. 그중 한 건물 대표는 소송을 취하했지만, 다른 한 건물 대표는 소송을 이어갔고 결국 법원은 1999년 미스틱에 2만 2천 프랑(3,350유로, 한화 500만원)의 벌금형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은 각 신문에 대서특필되었고, 미스틱은 이후로 건물주나 시의 허락 없이 거리 작업을 하는 걸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기는 몰래 뭔가를 하는 데서 오는 재미 때문에 작업을 한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렇기에 몰래 하는 거리 예술에 뒤따를 수 있는 위험은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미스틱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오히려 그녀를 미술계에서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법정 다툼 이전에도 미스틱은 자신의 거리 작업을 평면 작업으로 만들어 갤러리에서도 전시하곤 했지만, 이 소동 이후인 2000년부터는 미스틱의 예술적 앙가주망이 인정되어 각종 시/국립 미술관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사들였으며,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출품하게 되었고, 아트페어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유명세 덕분에 각종 명품 브랜드, 영화계와 협업을 하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프랑스어 사전으로 유명한 ‘라루스(La Rousse)’불어 사전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미스틱이 만든 La fille coupée en deux (둘로 잘린 소녀) 영화 포스터 (2007)
◆ 미스틱에 대한 평가
2022년 5월 23일, 미스틱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은 트위터에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미스틱의 죽음을 추모했으며, 프랑스의 언론도 위대한 거리 예술 선구자의 죽음을 추모했다. 1990년대 후반 그를 유명세로 만든 법정 사건 덕분에 미스틱이 거리 예술의 ‘예술화’(artificialisation : 미술계가 한 장르나 한 작업을 예술로 받아들임)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 즉 미스틱 덕분에 거리 예술이 미술의 한 장르가 됐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이다. 또한 미스틱은 지금 활동 중인 뱅크시를 비롯한 거리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미스틱은 누구보다도 시대에 저항하고, 권력에 저항했으며 특히 여성 아티스트가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물론, 미스틱이 인정한 것처럼 아직 더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말이다.
Le pouvoir ne protège pas, il se protège (권력은 보호해 주지 않고 스스로 보호할 뿐이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