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조은은 오는 3월 30일까지 백윤조의 개인전 <Every Little Step>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걷기'라는 주제를 통해 삶의 긍정성과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작가만의 유쾌하고 율동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갤러리에 있는 작품들은 백윤조 작가의 시리즈 중에 '일상적이고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걷는 형상'의 의미를 담은 Walk 시리즈의 작품 중에 총 26여 점의 최신작들이 선보인다. 작가에게 '걷기'는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것이고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였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백윤조 작가의 그림에 대한 포부를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이다.
백윤조(b. 1980) 작가는 동덕여대 회화과 석사 졸업 후 표갤러리, 아줄레주 갤러리, 장 디자인 아트 그리고 갤러리 조은까지 연이은 개인전을 가지며 활발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아트 파리, 아트 마이애미, 키아프 등 유수의 아트 페어 참여를 통해 국내 미술계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전시하는 Walk 시리즈 뿐만 아니라, 걷기의 리듬의 기억을 살려 자유롭게 반복적으로 표현한 Doodle 시리즈, 움직이면서 스스로 흔들거나 바람에 날리는 얼굴을 표현한 Face 시리즈 이렇게 총 3가지 시리즈가 있다.
백윤조 개인전을 연 갤러리 조은의 전경. 출처 갤러리 조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들을 보면 최소한의 선과 밝은 컬러로 심플하게 표현된 인물들이 단색 화면의 배경 위에 홀로 혹은 여럿이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곧고 시원하게 뻗은 선들로 표현된 인물들의 역동성과 건강한 유쾌함이 부드럽지만, 정교한 필치로 드러난다. 담백하게 표현된 인물들 곁에는 조그맣게 표현된 일상의 사물들이 함께 존재한다.
작품 속에는 인물들이 강아지, 고양이, 새 혹은 인형들을 들고 어디론가 걷고 있다. 이러한 소재들을 보면 작가의 작품에는 사물에서 인간의 믿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사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다루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선 예술적 경험을 창조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래서 작품에는 인간과 사물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려는 노력과 세계를 인간 중심이 아닌 더 폭넓은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작가는 딱히 모델을 정해서 보면서 그리지는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미지를 떠올려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드로잉을 남기고 이러한 이미지들을 다시 캔버스로 옮긴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요소들은 과감하게 축약되고 작가만의 감각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다시 구성된다. 걷는 이들의 목적과 동기는 전적으로 보는 이들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Thief (Walk series), 162.2cm x 130.3cm, oil on canvas, 2024. 출처 갤러리 조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Thief>는 그림 속 인형은 과연 누구에게서 훔친 인형인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목 뜻을 직역하면 도둑, 절도범을 말하지만, 작품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힌, 본질적 순수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도둑이 들고 있는 인형은 성인이 됨에 따라 잊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대상을 상징한다. 따라서 작가의 '도둑'은 부정적 의미가 아닌, 잊혔던 기억과 추억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긍정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작품의 밝은색의 배경은 제목과는 대조된다. 다소 부정적인 제목에 밝은 그림은 스토리에 반전을 주어 블랙코미디를 부여했다. <Thief>는 작가의 익살스러움이 작품 안에서 역설적으로 바뀌어 일상과 삶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Guide (Walk series), 130.3cm x 162.2cm, oil on canvas, 2024. 출처 갤러리 조은
<Guide> 작품은 노인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동행인은 과연 무엇인지 관람객들의 상상에 맡긴다.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지푸라기이다. 그래서 작가의 상상 속에서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놀이동산에서 지푸라기 가면을 쓰고 일하는 직원이 노인을 부축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 백윤조 작가만의 유머러스함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새로운 사람들이 가족, 우정, 추억의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전달한다.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단순한 관점을 재구성하여 관객의 편안함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가의 작품들은 즉시 식별할 수 있고 즉각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작품이 주는 친숙함과 긍정성은 대중들이 작가의 작품을 호의적이고 친근하게 탐구할 수 있게 해준다.
백윤조 개인전을 연 갤러리 조은의 전경. 출처 갤러리 조은
홍경한 미술비평가는 별것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작성하는 백윤조의 작품이 "구상이라는 테두리에 있음에도 평면성이라는 형식을 뚫고 공감과 공명이 작동하고 있다." 라고 말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내가 아닌 타인들이 마음껏 자신의 주관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