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피카소 사망 50주기를 맞아 피카소 미술관 측은 프랑스 아티스트 소피 칼(Sophie Calle)에게 자신의 미술관에서 전시해달라고 요청했다. 미술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피카소의 명성이 부담스러웠던 소피 칼은 처음에 요청을 거절했지만, 오랜 숙고 끝에 요청을 수락했다. 소피 칼… 그녀는 도대체 누구이길래 피카소 사망 50주기 전시를 하게 된 것일까?
소피 칼을 둘러싼 표현은 많다. 작가, 사진작가, 개념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등. 최근에 소피 칼이 출연한 방송에서는 그녀를 조형 예술가 (artiste plasticienne)라고 소개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조형 예술가는 부조 따위의 형태를 만드는 사람으로 특히, 회화나 조각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대 미술에서 조형 예술가라고 하면 다양한 종류의 메디움을 사용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언가는 형태가 고정적인 작품(그림, 조각 등)일 수도 있지만, 설치나 퍼포먼스처럼 형태가 자유로울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형태의 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예술 작업(travail artistique)’ 혹은 ‘예술 제안 (proposition artistique)’, ‘예술 의도(intention artistiqu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피 칼은 조형 예술가이다. 소피 칼에게는 사진 한 장이 작품이 아니라, 사진이 전시된 공간 혹은 주로 사진과 사진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모여 한 작업을 이룬다. 때로는 소피 칼의 작업을 둘러싼 이야기가 작업을 구성하기도 한다. 소피 칼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작업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 낯선 사람 미행하기 혹은 미행당하기
뭐라 해도 소피 칼을 유명세로 만든 작업은 베네치아의 추적(Suite vénitienne, 1980)이다. 소피 칼은 파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처음 보는 남자를 추적해 베네치아까지 미행하면서, 몰래 그의 사진을 찍거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다음, 글과 함께 사진을 전시했고, 나중에는 책으로 엮어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소피 칼은 자신의 어머니를 시켜 사설탐정을 고용해 자신의 일상을 사진 찍게 하고, 기록하게 했다. 탐정이 찍은 사진과 보고서 그리고 소피 칼 자신이 적은 자신의 일과를 ‘미행(La filature, 1981)’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 초대
소피 칼은 45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침대에서 같이 자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28명의 사람들은 차례대로 소피 칼의 방으로 와 8시간씩 잠을 잤다. 소피 칼은 참가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고, 자는 모습을 사진 찍은 다음, 사진과 자신이 적은 노트를 ‘잠자는 사람들(Les dormeurs, 1979)’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기도 하고,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에펠탑 정상에 작은 방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에게 자기 옆에 누워서 아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다.(‘전망 좋은 방 (Chambre avec vue), 2002)
1983년 여름 소피 칼은 파리의 길에서 우연히 전화번호가 적힌 주소록을 줍는다. 분실물 주인에게 수첩을 보내기 전 모든 주소록을 복사한 소피 칼은 주소록에 적힌 사람들을 만나 수첩의 주인에 대해 인터뷰한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토대로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수첩 주인에 대해 묘사하는 글 ‘수첩의 주인 (L’homme au carnet)’을 연재한다. 이를 알게 된 수첩의 주인이 사진작가를 시켜 소피 칼이 자기 집에서 벗고 있는 사진을 찍게 했고, 9월 ‘리베라시옹'에 ‘소피 칼에게 대답할 권리'라는 글과 함께 얼굴을 모자이크한 소피 칼의 알몸 사진을 개제한다. 소피 칼의 작업인 ‘수첩의 주인'은 신문 기사 그 자체 하나의 작업이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수첩 주인의 반격이 작업의 일부를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잠자는 사람들'이나 ‘전망 좋은 방'처럼 누군가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소피 칼이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전시한 작업 '건강하시고요 (prenez soin de vous)'에서도 그렇다. 이 작업은 소피 칼이 애인에게서 받은 이별 편지로부터 시작한다. 소피 칼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107명의 여성에게 자신이 받은 이별 편지를 보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원하는 대로 반응해달라고 부탁했으며, 그녀들의 반응을 사진과 텍스트로 전시했다. 여기서도 107명의 여성들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이 방식 자체가 작품을 이루었다.
'건강하시고요'에서도 자신의 이별을 소재로 삼았듯, 소피 칼은 자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물며 소피 칼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 마지막 숨까지 비디오로 촬영했다. 물론 이 비디오를 작업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이번 피카소 미술관 전시에서 관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했다. 그 옆에 “어머니의 사진을 찍지 말아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그래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시, '이젠 네 차례야, 내 귀염둥이야(À toi de faire, ma mignonne)'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열린 소피 칼의 전시 ‘이젠 네 차례야, 내 귀염둥이야(À toi de faire, ma mignonne)’ 도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소피 칼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인 ‘사라짐’, ‘부족함', ‘흔적’은 이 전시에서도 주요 테마이며, 사진과 글을 병치하는 배치도 자주 보인다. 또한 여전히 소피 칼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기도 한다. 전시는 ‘피칼소 (Picalso)’, ‘감은 눈 (Les yeux clos)’,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Ma mère, mon père, et moi)’, 이렇게 세 섹션으로 나뉜다.
‘피칼소’ 와 ‘감은 눈’ 섹션에서는 피카소 작품과 피카소의 말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업의 아이디어를 구상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피칼소'에서는 소피 칼 자신이 어렸을 때 직접 그린 그림(피카소만큼 잘 그렸다고 칭찬받았던 그림)을 전시하거나, 피카소 박물관에서의 경험을 작업으로 남기기도 했다. 예를 들면, 코로나 시국 때 방문했던 피카소 미술관에서 본 피카소의 작품, 즉, 보호를 위해 보호 용지로 쌓인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시하기도 했고(Picasso confiné : 갇힌 피카소), 자신이 피카소 미술관에 왔을 때 미술관 측이 다른 곳으로 대여를 해서 볼 수 없었던 피카소의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해 달라고 한 후, 그 내용을 하얀 커튼에 글로 남긴 작업인 “유령 피카소" (‘fantôme picasso’)시리즈를 전시했다. 하얀 커튼 뒤에는 묘사의 대상인 그림을 숨겨놓았다.
두 번째 섹션인 “감은 눈"은 시인 쟝 콕토가 이야기한 피카소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느날 피카소는 우연히 맹인이 아비뇽 교황청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옆에서 교황청을 설명하는 자기 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 후 피카소는 “화가란 맹인의 직업으로서, 보는 걸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한 것,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며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소피 칼은 자신이 맹인들을 주제로 했던 작업 ‘맹인들(Les aveugles, 1986)’, ‘마지막 이미지(La dernière image, 2010), ‘바다를 보다(voir la mer, 2011)’를 전시했다. ‘맹인들'과 ‘마지막 이미지'는 소피 칼이 맹인들에게 던진 시각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과 맹인의 사진, 그리고 답변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전시한 작업이며, ‘바다를 보다’는 맹인들이 바다를 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작품이다.
세 번째 섹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에 오면 소피 칼과 피카소와의 대화보다는 ‘사라짐', ‘흔적'이라는 주제가 더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 소피 칼은 부모님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 주제를 이야기한다. 소피 칼의 어머니는 “나를 작업의 소재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소피 칼은 개의치 않는다. 아니 어머니의 ‘부탁'조차 작업의 일부를 이루는 듯하다. 2층에 오면 사람들은 조금 전에 봤던 전시보다 미장센이 더 강하게 된 공간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관 사진을 비롯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관련 글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다. 너무도 엄숙한 분위기라서 사진찍기조차 부담스러운 공간이다.
피카소 미술관 ‘이젠 네 차례야, 내 귀염둥이야’ 전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섹션 전시장 전경. 이소이 기자
죽음에 대한 사색은 다가올 자기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이 전시된 공간을 지나치면 ‘파리 드루오 경매소’의 이름으로 소피 칼의 컬렉션을 전시한다는 광고가 붙어있다. 소피 칼은 이에 대해서도 벽에 텍스트로 친절히 설명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사후 자신의 컬렉션이 사라질 것이 두려우며,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감정인에게 컬렉션 목록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소피 칼은 감정인이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 상영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경매소의 방식으로 전시한다. 소피 칼은 부모님의 죽음에 관한 전시부터 자신의 컬렉션 전시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미장센 기법을 적극 활용한다. 그래서 앞의 두 섹션보다 더 이해하기 쉽고, 몰입 정도도 더 강하다.
피카소 미술관 ‘이젠 네 차례야, 내 귀염둥이야’ 전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나' 섹션 전시장 전경. 이소이 기자
세 번째 섹션의 마지막 전시 역시 미래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마지막 전시는 ‘완성하지 못한 작업 카탈로그 (Catalogue raisonné inachevé)’인데, 여기서 자신이 시작했지만 끝을 내지 못한 작업들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죽고 나면 이런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조차 알리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을까? 소피 칼 작업의 특징 중 하나인 텍스트와 사진을 같이 전시하는 방법이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한쪽에는 보고서 형식으로 끝내지 못한 작업의 내용을 적고, 다른 한쪽에는 진행 중이었던 작업을 찍은 사진을 전시한다. 작업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간색으로 전시를 끝내지 못한 이유가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티스트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소피 칼의 작업 스타일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이며, 아티스트에게는 소피 칼과 예술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작업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를 보면 소피 칼이 예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ophie Calle, ‘완성하지 못한 작업 카탈로그' 중 ‘마약(stupéfiant)'. 이소이 기자. 작업 프로젝트는 재미있지만 그 이상은 없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했다고 적혀있다.
피카소 미술관은 소피 칼의 전시를 주제별로 전개했지만, 이 전시는 소피 칼 삶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그린 것이기도 하다. 전시의 시작이 ‘미래의 피카소’인 소피 칼의 어릴 적 그림이라면, 두 번째 섹션에서는 소피 칼이 아티스트로서 했던 작업을 전시했으며, 세 번째 섹션은 소피 칼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현재와 미래는 죽음의 염려로 가득 차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소피 칼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소피 칼은 사실 ‘죽음’ 그 자체를 대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죽음'이라는 미래의 사건을, ‘예술’이라는 틀로 바라보고 있다. ‘죽음'을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곧 그에게는 예술 자체에는 죽음의 염려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다는 의미, 즉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의미이다. 소피 칼에게는 삶 뿐 아니라 죽음도 예술이다. 소피 칼에게 예술은 삶, 죽음 모두를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