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미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서양에서 현대 미술을 정의하는 방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는 현대 미술을 ‘모더니즘의 거부’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로 표현하면서 모더니즘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서양의 모더니즘이 미술을 아름다움, 자기표현, 형식주의와 같은 단어로 한정 지었고, 현대 미술은 « Anything goes »라는 기치를 내세워 근대 미술의 틀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 케이리즈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 Beyond the Frame »은 한국의 현대 미술만이 가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틀’(Frame)이 서양 사상사와 미술사를 지배해 왔던 이분법적 난제를 의미한다면, ‘틀’의 초월은 이 문제 자체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박인혁, 백승수 두 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 미술은 틀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소한다고 말하려 한다. 서양의 근대적인 문제에 대한 한국만의 답을 소개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표 중 하나이다.
박인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내용이 명확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에서는 얼굴이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음영이 있는 색과 거친 질감을 가로질러 얼굴이 입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관객이 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그림과 밀고 당기는 놀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았을 때만 얼굴은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의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드러운 색감과 이와 상반되는 거친 파스텔, 오일 파스텔 자국, 손짓의 흔적이다. 관객은 파스텔 색조 위로 드러나는 역동적인 힘과 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얼굴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놀이를 제시한다. 그는 화폭 위에 여러 층을 겹겹이 쌓아두었고 바로 이 층이 놀이의 핵심 요소이다. 관객은 표면 뒤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을 찾아내면 된다. 얼굴 그림에서는 얼굴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시간성을 표현하며, 최근 그림에서는 작가가 제시한 층 놀이를 통해 관객 자신이 시간성을 구성한다. 이 시간성은 캔버스에 붙잡힌 작가의 육체적 노력임과 동시에 관객이 시선을 통해 창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박인혁 작가는 이 모든 것을 ‘풍경’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 풍경은 아니다. 이 풍경은 눈에 보이는 자연이라기보다는 풍경을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게 하는 어떤 힘이다. 어쩌면 초봄에 느껴지는 벌거벗은 나무에서 잎, 꽃이 날 거라는 예감, 자그마한 들꽃에 깃들어 있는 생명력에 대한 감탄 같은 것들은 사실 자연의 힘에 대한 느낌일 것이다. 박인혁 작가의 풍경은 자연인 동시에 자신인, 신체적인 힘으로써의 풍경, 그래서 다른 풍경이다.
많은 철학자가 존재, 의지, 삶의 약동이라는 표현들로 생명의 근원을 정의했다면 작가는 정돈되지 않은 기운, 신체의 기운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에서 느껴지는 힘을 포착한다. 작가의 작품이 내면의 풍경을 넘어서 자연의 풍경을 관객에게 보여줄 때, 관객은 작가가 보여주는 내부와 외부에 공존하는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자연의 움직임을 느낀다. 이로써 작가는 창작 행위의 근원이 바로 이 자연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인혁 작가의 작품은 스피노자가 말한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 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자연의 나타남, 즉 풍경을 통해 자아/비자아, 구상/비구상, 주체/객체, 자연/인공과 같은 이분법적 구별을 무너뜨리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