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하실을 뒤지다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고 하자.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고 마치 요즘 그린 듯 선명한 색상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의아한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최근에 그림을 산적이 없는데 이 그림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누가 가져다 놓은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궁금증과 의문이 머리에 가득 차게 된다. 마침 미술계에 아는 사람이 있어 감정을 의뢰했더니 상당히 잘 그린 그림이지만 화가는 알 수가 없고 오래된 그림으로 추정된다는 애매한 답변을 받았다면 궁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답답해질 게 틀림없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상황을 참지 못한 가족들끼리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 시작한다. 평생을 그림을 그린답시고 난봉꾼마냥 돌아다니던 할아버지 그림이 틀림없어. 아마 돌아가신 아버지가 꼴도 보기 싫어 지하실에 처박아 둔거야. 그 양반이 그림 하나는 재주가 있으셨다고 하더라. 등등.
이와 비슷한 일들이 미술사에서 발생했다. 1868년 스페인에서 한 사냥꾼에 의해 알타미라 동굴이 발견되었지만 11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섯 살 소녀에 의해서 동굴 속에 그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 그림들이 구석기 시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반응은 회의적이었고 심지어 가짜라고 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후일 과학적 연대 측정법에 의해 구석기 시대 벽화임이 밝혀졌으나 소녀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1914년 프랑스 아리게주에 있는 앙리 베구앵백작과 세 아들의 사유지에서 동굴이 발견되었다. 트루아 프뢰르(세 아들)라고 명칭된 이 동굴에서 브뢰이는 500점에 이르는 암벽화와 암각화를 발굴해 내었다. 이 미술품들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제의적 경험과 신화적 전승의 풍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1940년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마을 소년들에 의해 라스코 동굴이 발견되었다. 고고학자 브뢰유에 의해 800점 이상의 그림이 확인되었고 예수의 탄생마저 최근의 일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벽화들로 인해 구석기 시대의 시스틴 성당이라고 불린다. 그밖에 남 프랑스 및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포함하여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에 걸쳐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어 왔다.
구석기 시대 예술은 대략 3만 5,000년 전에서 9,500년 전에 살았던 크로마뇽인들과 관련이 있다고 하나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에 대한 논란이 있어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아베 브뢰이는 2만년보다 오래된 유물에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C-14 연대 측정법을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구석기 연대는 학자들의 논란 속에 대략 잠정적인 것으로 표현되었다. 연대의 모호함과 달리 발견당시 벽화와 암각화 등을 조사한 학자들의 결론은 거의 동일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냥감 증식을 위한 ‘주술적’행위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당대에 별다른 이론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대부분의 미술 사가들은 선사시대의 미술은 주술적 행위의 결과라고 기록하였다.
19세기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전에 수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던 목초지가 사막으로 변하는 시간동안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구석기 미술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다. 수백만 년에 달하는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마치 “열려라 참깨”를 외친 듯 일제히 동굴 입구가 열렸고 엄청난 금은보화가 눈앞에 펼쳐지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 어둡고 습기 차고 접근조차 힘든 동굴 벽화가 보여주는 경이적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신비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신비감의 원천을 제시하고자 했으나 부족한 과학적 자료, 미비한 연구 사례, 시대적 편견 등으로 인해 추론에 있어 상당 기간 고답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모르티에는 크로마뇽인들의 예술 활동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하며 순수하게 미학적인 관점으로 보았으나 브뢰이는 사냥의 성공과 사냥감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주술이라는 입장을 강력히 견지한다. 이 주장은 상당기간 받아들여지다가 1960년 이후에야 앙드레 르루와구랑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기능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를 받아들여 주술적 요소를 구석기 시대 동굴 내 상징물로만 한정하고 동굴 벽화의 세부요소들이 배치되는 양상을 관찰한 결과 구석기 시대 예술은 주술보다 훨씬 복잡한 종교적 행위라고 파악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저명한 미술 사가들도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곰브리치는 민족지적 연구물들을 토대로 원시인들의 미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효력이 발생했느냐 다시 말해 주술을 제대로 수행했느냐가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H.W. 잰슨은 선사시대 관련 제목을 주술과 제사라고 명시하고 구석기 시대 인간들은 그림과 실제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아르놀트 하우저 역시 구석기 예술은 심미적 목적보다 마술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예술은 아니라고 했다. 미술 사가들보다 구석기 시대 동굴에 더 관심이 많았던 조지프 켐벨도 신화학자로서 구석기 시대의 예술가이자 주술자라고 판단한 샤먼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초기 학자들 간에 선사 시대의 예술은 주술적 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결론 지워졌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남아있다. 아직 대부분의 미술사에서 이 결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1960년대를 기점으로 고고학적으로는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동안 연구한 데이터들이 축적되자 기존 이론의 허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새로운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런 점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에는 이르렀다고 본다. 따라서 기존 이론의 소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에는 새롭게 발견된 자료를 바탕으로 선사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