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노트
환영적 공간의 몰입을 통한 불안치유
불안은 흔히 두려움이나 공포와도 비슷하지만, 두려움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으며, 불안에는 특정 원인이 없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불안은 인간이 깊은 동굴 속을 들여야 보았을 때 느끼는 현기증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불안은 본질에 있어서 자유로 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정의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의미를 시간성으로 파악한다.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염려하는 시간적인 존재로서, 시간의 유한함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미래에 대한 꿈이나 이상이 있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가능성에 의하여 유도되며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획하며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에 의하여 그 가능성을 실현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로 지향하는 자유 능력이 동시에 불안을 수반한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망설임이 먼저 앞서게 되고, 과거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불편한 감정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은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복적인 선들의 중첩된 이미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변화와 도전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며 이에 생명과 희망의 의미로 빛의 요소가 더해져 환영적 공간을 극대화시킨다.
선의 반복과 중첩
선의 개념은 영원히 이어짐을 의미하기도 하고 방향, 방위, 방향성, 운동감 등의 에너지를 갖는다. 반복적으로 겹쳐지는 형광 선들의 중첩은 끊임없이 변하고 도전하고 싶은 내면세계와 무한함을 표현한다. 선의 반복과 중첩은 무한함과 동시에 시간의 축적이기도 하다. 시간에 대한 집착과 불안은 선을 무한히 만들고 중첩해 가는 행위로서 본인에게는 불안을 해소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형광 빛의 환영적 이미지
환영이란 감각의 착오로 허위의 현상, 영상, 신념 등을 사실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현상으로 환상과 같은 뜻이다. 빛은 에너지의 근원으로 모든 활동을 위한 조건이 되고 다른 생명체를 활성화하는 힘이 있다. 형광 선의 중첩을 통한 착시는 무한한 깊이와 공간감을 형성한다. 어둠 속에서 밝혀지는 빛과 그 빛에 발하는 형광 빛 선들의 일루전 효과를 통한 환영적 가상공간은 환영의 간접적 경험을 가지게 한다.
몰입을 통한 불안 치유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어떤 일에 집중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내가 나 임을 잊어버리는 상태, 곧 행복의 신비스러운 상태라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거기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는데, 이런 몰입의 순간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도 잘 의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무한함을 형성해가는 작업 과정에서 몰입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이 아닌 환상이나 환영의 간접적 체험은 현재의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앞서 늘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극대화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더욱 힘들다. 끊임없이 미래를 꿈꾸며 도전하는 삶을 지향하지만, 꿈꾸는 정신은 항상 불안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멈출 수가 없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같은 시간 동안 지루함을 느낄 때와 어떤 일에 몰입된 상태일 때의 시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 지 모를 만큼 몰입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몰입된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이런 불편한 감정이 사라진다.
빛의 무한함은 환상이나 환영적 공간으로 나에게는 몰입의 상태를 갖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늘 작업 과정은 힘들기도 하지만 빛의 무한함을 표현하는 과정은 시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어린 시절, 마음이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면, 나는 늘 엄마의 따스한 등에 한참을 기대곤 했다. 그러면 금세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엄마의 사랑과 헌신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사랑의 깊 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할 것이다. 언제나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 아낌없이 한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이다.
지금도 힘이 들 때면 늘 그곳에서 품어 줄 둥지를 찾게 된다.
이 작품은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비둘기’를 읽고 소설 속 주인공의 불안과 치유의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보행은 마음을 달래 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힘이 있었다. 걷는 것은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떼어 놓고, ( ... ) -그런 모든 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 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없이 서로 조화로워지는 일련의 현상이었다.” P.95
불안함과 폐쇄성 짙은 주인공의 힘들었던 시간은 집으로 향하는 보행의 과정에서 마침내 마음의 자유를 얻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늘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불안은 대상을 알 수 없어서 느끼게 되는 초조함이나 두려움 같은 불편한 감정이다. 공간을 느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어둠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어둠은 빛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빛을 향해 걸어 나옴으로써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며 불안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빛이 없는 어둠을 싫어한다. 어둠은 공간을 인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어둠은 빛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다. 누구나 뚜렷한 미래가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마치 어둠 속에서 헤매는 듯하다. 하지만 꿈꾸는 미래가 없다면 불안함도 없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단순한 식물이나 동물과는 달리 일련의 가능성 및 그 가능성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가능성에 의하여 유도되며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획하며 그리고 창조적인 능력에 의하여 그 가능성을 실현해 나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으로 지향하는 자유 능력은 불안을 수반한다. 그는 불안을 두려움과 달리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마치 심연과 같아서 그 앞에 설 때 느끼는 현기증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작품은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동반할 수밖에 없는 불안의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로 중첩된 형광 선들은 평면의 입체적 확장 효과로 어지럽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자는 잠시나마 현실과 꿈의 경계선의 환영적 공간의 몰입을 통해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